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규 Jul 10. 2020

#아들마음읽기_4

자책과 성장

퇴근 후 승후와 함께하는 즐거운 목욕시간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승후가 태어나고 줄 곧 나는 당연하듯 승후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을 즐겼다.  

  

목욕을 하면서 다친 곳은 없는지 살펴보고

조금씩 알게 모르게 성장하는 아들을 보는 것은 승후의 하루를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며

신기하고 경이로운 성장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승후야 오늘은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었어?”

“승후야 오늘은 친구와 어떤 놀이를 했니”

아직 말이 트이지 않는 승후에게 많은 질문을 해보기도 하고    


“아빠 코좀 풀어줘”, “비누칠은 이렇게 양 손으로 쓱쓱 비벼서 하는거야”

함께하는 행동속에 오가는 많은 대화들이 나에게는 매번 고마운 시간이다.    

요즘에는 사방에 샤워기를 들고 뿌려대 목소리가 높아질 경우가 있지만

그래도 부자간 소통의 시간으로는 명실상부하다 

사실 엄마의 잔소리가 싫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해주지 않는다 등

승후에게 하소연하고 고자질하는 시간임에도 명실상부하다.    


목욕 후 

평소 비염으로 고생하는 승후의 코를 파주는 것은 매 번 무서운 일이다.

처음엔 엄마가 늘 상 해오던 승후의 코파기를 최근 내가 해주기 시작했다.    

울며불며 아등바등 코파기를 거부하는 승후의 콧 속에서 공룡만큼 큰 코딱지를 꺼냈을 때 그 느낌은

시대적 난제와 세계적 미스테리를 풀어버린 만큼 통쾌하고 시원하다    


하지만 간혹 코를 잘못 파 코피를 흘린적이 있었는데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그날 밤 잠을 설쳤다.(물론 지금은 절대 코피를 나지 않게 할 자신이 있다.)


가느다랗고 조그만한 코에서 피를 보았을 때 어렸을 때 코피를 달고 다녔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 갈때면 엄마는 주머니에 항상 휴지를 넣어주셨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연약한 실핏줄을 위해 나는 여러 작물?(정확한 명칭은 모르나 옛날엔 삐삐꽃이라고 불렀다. 이걸 꺾어 속살을 펼치면 하얗고 나름 달콤한 씹어먹는 간식이 된다)의 뿌리와 연근, 굼벵이가루 등 많은 것을 마시고 먹어야만 했다.   

 

이 녀석 

날 닮진 말아야 할텐데..

아참! 승후 코피는 내가 코를 너무 심하게 파줘서 생겼지?..승후의 건강성을 자부하며 위안삼아본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승후가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고는 승후의 코를 파준 후 전혀 예기치도 못한 상황에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났다.

거사를 치르고 승후가 면봉을 바닥에 쏟아 버렸다.    


쏟아진 면봉을 줍고 있는데 어디서 보았는지 승후가 미소지으며 면봉을 양 쪽 귀에 꼽고는

자기를 봐 달라며 장난을 친다

생전 처음 보는 모습에 그게 위험한 행동인지 알면서도 제지하지 못했고

잠깐 넋이 나가 쏟아진 면봉을 줍고있는 사이

눈 깜짝할 사이에 옆에 탁자에 부딪치며 귀 쪽을 다쳤다.

   

얼음이 된 승후가 난생처음 느꼈을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손이 떨리고 마음이 떨린다.

울음이 그치지 않는 승후를 들쳐업고 엄마와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왼쪽 귀 안에서 피가조금 났고 다행히 응급실에 가는 차 안에서 승후는 차츰 진정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승후야 정말 미안해.. 어서가자 어서가서 치료받자

응급실로 향하는 찢어지는 마음과 스스로 행동을 제지하지 못한 자책감으로 나는 내내 말을 잃었다.    

승후의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결과 고막 쪽 상태는 보지 못했다. 

승후의 귀지가 고막상태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응급실에서는 귀지를 제거 할 수 없으니 외래진료를 권했다.

피가 나는 쪽은 다행히 깊지 않은 곳이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다음 날 아내와 함께 반차를 쓰고 대학병원 이빈후과를 찾았다.    

외래진료결과 귀지가 많아 귀지를 없애는 약을 처방 받고

다음 진료일을 예약했다.    

허무하게 끝나버린 진료에 너무 속이 상했다. 


귀지를 제거하고 승후의 고막상태를 보고 마음을 놓아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목소리를 높여 진료를 요구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병원을 제 집인마냥 뛰어다니는 승후의 활력과 

엄마아빠를 외치며 자판기 음료수를 사달라는 승후의 넉살에 허무함을 숨겨본다.    


당장 고막상태를 보아야 하기에

이번주에는 귀지제거 약을 꾸준히 넣어주고 주말에 소아이빈후과에 가기로 했다.

마음이 놓이기까지는 아직 몇 일 남았다.    


그 동안

처절하게 나의 행동을 반성하고

아들에게 충실한 눈길을 쏟아주어야겠다.     


사실 승후가 응급실을 간 경우가 몇 차례 더 있었다.

높은 거실책상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쳐 얇디얇은 실핏줄에 주사바늘로 마취제를 투여해 CT를 찍었었고

원인모를 고열에 입원신세까지 진 적이 있었으며

명절에 고열로 시골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응급실로 달려가 A형 독감 판정을 받은 적도 있다.    


위중을 떠나

아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였을텐데 이제는 부쩍 성장한 남자아이답게 

능숙하게 진료를 보고 이겨내는 모습에

지난 시간이 고생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성장'했음을 느낀다.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 나갈수록 앞으로의 아들의 모습이 놀랍고 경이로울것에

미리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자책은 성장을 동반한다. 경험 또한 성장의 밑거름이다.


혼자 크는 것이 아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갈 세상은 더더욱 아니다

성장하면서 소요되는 많은 자책과 경험, 반성, 그리고 계획과 실천, 다짐을 기반한 수 많은 행동들은 내 옆에, 

그리고 내가 베풀고 자각한 사실의 절반이라도 실천으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성공이라 생각한다. 


아들에게 모든걸 주고싶은 아비의 마음같이 승후가 성장하는 주변의 가치는 본인을 시작점으로 한다.

나는 승후와 함께 올바른 ‘성장’의 의미를 바르게 소통 해 나가고 싶다.

(물론 나도 그러하지 못했음을 자책하고 반성하면서..)

작가의 이전글 #아들마음읽기_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