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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감성

몽글몽글한 밤

언니의 항소심 선고가 이틀 뒤로 다가왔다. 고의와 악의가 없으므로 무죄를 기대하는 것을 보고 나는 실소가 나왔다. 언니에게 웃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주며 면회를 마칠 만큼 나는 어느 정도의 여유를 되찾은 것 같다. 피해자도 나만큼은 회복이 되었을까.


어지러운 나라 시국에 파면이라는 큰 산을 넘어 한시름 놓게 되었고 개나리와 벚꽃, 그리고 나무 들은 겨우내 앙상하게 가지만 있던 것이 무색하게 서로 앞다퉈 새 잎과 꽃을 틔운다. 어느새 작은 잎들이 푸릇푸릇하게 덮인 산을 보면 내 마음도 몽글몽글 해지고 설레인다.


4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내가 살아온 인생 전부를 꺼내 가지런히 정리한 뒤 앞으로는 긍정적인 감정들과 친해지겠다고 다짐을 했다. 보육원이나 유기견, 유기묘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좋은 기억을 남기는 일에 내가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그렇다면 그 아이들도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어렸을 때의 그 좋은 기억으로 살아가는데 힘을 얻겠지. 한 사람의 인생에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된다면 굉장히 값진 일이 될 것 같다.

어린 시절 형성된 기억들은 성장 후에 고스란히 나의 생활에 반영된다.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기도 해야겠지만 과거의 기억 속을 살펴봄으로써 과거의 나에게 위로를 하는 과정도 필요한 것 같다. 좋은 기억이라면 위로는 필요하지 않겠지만 좋지 않은 기억이라면 그 조금의 위로가 현재의 나를 변화시킨다.


거의 대부분 좋지 않은 기억들로만 채워져 있던 나에게 위로를 건네며, 앞으로 펼쳐질 긍정으로 가득한 내 인생을 응원한다. 너는 어두운 환경에서 잘 이겨냈고 잘 컸고, 앞으로 더 잘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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