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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 Jul 10. 2020

노인을 위한 국가는 있다

제론테크, 노년의 퀄리티를 고민하다


©unsplsh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자원이다. 사회적 지위나 부를 가진 자라고 해도 흘러가는 시간을 임의로 멈출 수는 없다. 누구나 한 번 태어나면 그 순간부터 늙고 병들고 죽는다. 누구든 죽을 수밖에 없어서 인간은 '어떻게 값지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다. 지금처럼 기술도, 의술도 부족했던 시절에는 한 사람이 채 오십 년을 사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 시절 육십 해를 넘게 산 노인들은 '환갑' 잔치를 열었다. 환갑을 맞이한 노인은 61년 만에 자신이 태어난 해의 간지와 같은 해가 돌아왔음을, 다시 태어났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육십 이후의 삶은 하늘에게 선택받은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했다.


2020년, 우리는 생로병사를 예측하는 시대에 들어서 있다. 100세 시대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사람들은 퇴직 이후에도 일을 구한다. 구직 등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중장년층의 수는 이제 청년층만큼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병을 미리 '예방'하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다.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운동을 한다. 발전된 의료 기술은 수명 연장에 힘을 실었고, 나아가 교육 수준과 네트워킹의 발달은 나이가 드는 과정을 완료가 아닌 '진행형'으로 바꾸어 놓았다. 기술의 발달은 나이듦에 대처하는 자세를 변화시켰다. 우리에게 '아직 더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준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령화 사회에도 여전히 한계는 있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 심리적으로 변화는 어려워진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은 탄성을 잃고 경직되기 쉽다. 실제로 저출산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체감하는 고령화 속도는 훨씬 빨라지고 있다. 우리는 이 고령화 사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기술은 인간의 노년을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 수 있을까?



제론테크와 스마트리빙,
노년의 퀄리티를 고민하다



© MabelAmber, 출처 Pixabay



'제론테크Gerontology'란 과학과 노인학을 접목한 학문으로 여기서 'Geron'은 ‘old man’을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1990년대 네덜란드에서 확산되기 시작한 제론테크는 노인이어도 '인간다운 삶을 지속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건강, 주거, 노동 등 생활에서 노년층에게 필요한 기술들을 '예방과 보완' 두 가지 측면에서 접목하고자 했다. 발전된 제론테크는 신체 뿐만 아니라 정신의 웰빙(Well-being)도 함께 고민했는데, 이러한 고민은 액티브 시니어, 유니버설 디자인 등 실제 정책에 반영되기도 했다.


제론테크가 발전하면서 IoT 기술 분야에서는 '스마트리빙'이 등장한다. '스마트리빙'이란 '스마트홈'의 확장 개념으로, 주로 '웰에이징'을 위한 생활 IoT 시스템 전반을 다룬다. 쉽게 말해서 IoT의 적용 범위를 가정에 국한하지 않고 대중교통, 병원 등에도 적용시킨 분야로 볼 수 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고령자 복지지출 규모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미리 시니어 시장, 경제에 주목했다. 현재는 ‘Smart Living Environments for Ageing Well’이라는 주제로 활동적 노후와 IoT를 연구 중이다.


EU가 추진 중인 'ACITAGE 프로젝트'는 EU의 또 다른 프로그램 'Horizon 2020'의 IoT 생태계 구축 제1차 사업 프로젝트 중 하나로, 7개 국의 49개 기업이 참여하는 이 대규모 Pilot 사업에는 국내 기업인 삼성도 포함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는 새로운 IoT 플랫폼 개발보다는 기존 플랫폼들의 서비스 제공을 통합한 것이 특징이다. 공공기관 및 개인이 이 통합된 서비스를 사용하면, IoT 센서에 남겨진 사용자 정보가 플랫폼들에 간편하게 업데이트된다. 즉 이 범국가적인 공동 프로젝트는 사용자(노년층/고령자)와 IoT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일반인과 같은 생활을 유지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국내에서는 SKT의 AI 스피커 '누구(NUGU)'의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가 사회 취약 계층의 정서와 안전을 지원한 사례가 있다. 실제로 '돌봄' 서비스는 어르신들의 정서 케어에 크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위급 상황 시 ICT케어센터와 담당 케어 매니저, ADT캡스를 연계해 주는 시스템을 선보이면서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가능성 역시 입증했다. Iot가 집, 병원, 지방 등 한정된 공간에 노인들이 '고립'되거나 소외되는 현상을 방지하는 가교가 되어준 셈이다.



전 세계 고령화 속도 1위,
일본과 스마트시티



©unsplsh


이웃나라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고령화 사회이다. 일본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 고령화가 가져올 사회적 문제들에 일찌감치 대비를 시작했다. 서울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집약적 산업 경제화를 이끌어 온 한국과 달리, 일본은 지리적/역사적으로 47개의 전국 현이 각자의 현을 중심으로 발달해 온 역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지방 도시가 대도시보다 먼저 스마트시티 제도를 추진해 노인 인구 증가에 대비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 이시카와현, 후쿠이현, 오키나와현, 이바라키현에서는 고령자 대상의 소형 카트 및 버스 자율주행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그중 일본 북동부 이바라키현 히타시 시(市)는 실제로 최근까지 운영하지 않던 철길을 재정비해 자율 주행 버스를 운영할 계획을 도입했다. 2018년부터는 소프트뱅크 등과 협업해 2021년 실제 운행을 목표로 주행 실험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자율주행 서비스 시행되면 고령자들은 병원을 방문하기 쉬워진다. 긴급 상황시 이송 인프라도 안정적으로 구축/확대할 수 있다. 시설투자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의료비와 간병 부담을 줄여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정책 뿐만 아니라 노년층을 위한 '시니어 비즈니스' 역시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일본의 시니어 산업은 1990년 330조 원 수준에서 2030년에는 약 770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달된 로봇 산업이 시니어 산업과 접목되면서 나타난 시너지가 꽤 크다. 생산되는 제조품 역시 근력부족·장애로 일어설 수 없는 시니어를 위한 스탠딩 휠체어부터 원터치로 입고 벗을 수 있는 간편 파자마까지 그 폭이 매우 넓다. 중증 질병을 지닌 노인부터 액티브 시니어까지, 노년층도 특성별로 세분화해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제도, 산업적 기술 발달이 아니어도 일본 내부에서는 IT 기술을 활용해 활기찬 노년을 맞이하려는 개인적인 움직임 역시 크다. 스마트폰, 태블릿 등을 소유하는 노년층의 비율 역시 최근 10년 사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90세의 아마추어 사진작가 니시모토 키미코(西本喜美子)는 독특하고 재밌는 사진들로 유명하다. 칠십 대에 접어들면서 거동이 불편해진 이후 '나이 든 자신도 쓰레기 봉투처럼 사회에서 버려져야 되는 존재로 인식되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뇌리를 스친 것이 계기가 되어 사진을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니시모토 씨는 첨단 기술을 거꾸로 활용해 자신 만의 유쾌한 노년을 맞이했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출간한 사진집의 이름은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이다.


instagram by @kimiko_mishimoto



당신은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입니다



무병장수 불로장생은 인간의 오랜 염원이다. 실제로 의료기술의 발전은 그 꿈의 실현을 점진적으로 앞당겨 왔다. 그러나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더' 오래 살아 있는 것만이 좋은 나이듦일까?


앞서 말한 ioT 스마트리빙과 자율주행 등의 스마트시티 사례는 기술 발전이 노년의 신체적 제약 뿐만 아니라 정서적 고립을 극복하게 도와주었다. 이러한 기술들은 노년의 삶을 일반적인 삶과 같은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시도 속에서 탄생했다. 고령화 시대에 노년이 단순한 '여생'으로 느껴지지 않게끔 사회적 유대감과 안정감을 심어주는 것이 기술적 측면에서도 중요해진 셈이다. 황혼을 맞이한 노인들에게 기술은 생물학적인 '생존' 그 자체보다 '쓸모 있음'을 인식하게 돕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람을 뜻하는 한자 '사람 인'人은 서로가 서로를 기대고 있는 모양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글자가 생겨나던 시절부터 사람은 '서로'에게 '서로'가 있을 때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 맥락에서 '무엇이 인간다운 삶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어떻게 늙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은 오히려 답이 쉬워진다. 아무도 나를 호명해 주지 않는 삶은 건강한 백 세를 살아도 무용하다. 어쩌면 우리는 기술이 만들어낸 소통을 계기로 노인들에게 예기치 못한 다른 기쁨을 선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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