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현 작가의 SF 완결웹툰 <노네임드> 를 보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다. 이처럼, 흔히 생명이 누군가에게 특별해지는 순간은 이름을 가질 때 부터이다. 영어에서는 이름을 가진 명사 (사람, 장소, 물건) 을 '고유명사' 라고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이름이 우리를 고유하게 만들어 준다고 한들, 우리의 정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최근, 네이버 웹툰에서 <꿈의 기업>을 연재하고 있는 문지현 작가의 전작 <노네임드>를 감상했다. 완결된 웹툰을 결제해서 보는 것은 처음인데, SF라면 무엇이든 감상을 시도해 보지만 까다로운 입맛 탓에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적어 그런 설움이 컸었다. 최근 나를 달래주는 건 <꿈의 기업> 뿐이었다. 그래서 목마른 자가 우물을 찾는다고, 나는 <노네임드> 에서 다시 내 목을 축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훌륭한 선택이었고, <노네임드>는 멋진 작품이었다. 이름이 없음에도 고유해진 아이들의 이야기에 함께 떨기도, 긴장하기도 하며 쉴 새 없이 결말까지 함께 달렸다. 이틀 만에 작품을 완주하고 외치고 싶었다.
하고 말이다.
이야기는 기현상을 겪는 주인공으로부터 시작된다. 종종 엉뚱한 곳에서 단시간의 기억을 잃은 채 정신을 차리는 주인공은 어머니의 요구 하에 어울리지도 않는 명문 사립 고등학교의 '기부 입학생'으로 진학하게 된다.
첫 등굣길, 또 다시 닥친 그런 현상에 터널 속에서 헤매다 보니, 본인과 같은 처지의 기부 입학생을 만난다. (엄격한 학교의 입학시험이 아닌 기부를 통해 진학한 기부입학생들은 차별 대우를 받는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이름은 '이지은'이다. 그녀를 따라 무사히 등교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이 학교, 어딘가 이상하다.
반 학생 수는 30명이지만, 31번째 학생이 자꾸만 학생 데이터에 등록된다. 학교 내 주요 임원들과 행정실 직원들이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실종된 학생의 쪽지들이 학교 안의 이상현상들을 보고하고 있다. 그 학생을 알고 지내던 이지은을 필두로, 주인공은 해킹에 빠삭한 또 다른 기부입학생과 삼인조를 이뤄 학교의 미스테리를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주인공의 휴대폰이 세상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도, 31번째 학생이 그들의 기억을 지속적으로 삭제하고 있다는 것도, 자신들을 제외한 학생들이 학교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알아낸다. 미스테리는 해소와 동시에 발생되며, 이 연쇄는 긴박하고 짜임 있는 스릴러와 함께 끊임없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이 학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아이들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이 이야기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끊임없이 정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작품명과 같이, 이 작품에서 이름을 가진 것은 이지은이 유일하다. 주인공도, 해커 남학생도, 그 외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도 이름이 없다. 이름 뿐만이 아니다. 기부입학생 셋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은 이목구비도 없을 뿐더러 머리 모양도 전부 같다. 또한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그들의 정체는 모두 이지은에 비해 아주 하잘 것 없음이 드러난다. 결말부에 다다를수록 '모든 것을 해결해줄 단일 용사 이지은' 을 위한 소모품이자 들러리로 여겨질 정도이다. 과연, 이지은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그러한 신세를 깨닫고 커다란 절망과 비탄에 빠지기도 한다. 작품 중반부부터 댓글창에도 '사실은 주인공이 이지은이었군요.' 하는 말들이 도배되어 있고, 사실상 이 작품의 주연을 꼽는다면 지은이 맞겠지.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가 이지은 하나를 계몽시키기 위해 지어진 이야기가 아니라고 믿는다.
이 이야기에서 자신의 정체를 탐구하기 위해 투쟁한 것은 이지은 하나가 아니다.
모두가 그렇다.
작 초반부부터 꾸준히 이목구비 없는 학생들에게 이지은 삼인방는 오류와도 같은 존재였다.
자신들은 이미 고등 과정을 세 번이나 예습했지만, 교실을 절대 벗어나지 않고, 수업에 집중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것 외에 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다. 반면 기부입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자유롭게 밖을 돌아다니고 학교의 정체에 대해 의구심을 품으며, 현실에 도전하려고 든다. 정해진 체제와 시스템에 굴복하지 않고 자꾸만 의문을 품는다. 자신이 하는 것이 곧 자신이 된다는 말이 있듯, 이목구비 없는 학생들의 삶은 순응과 학습뿐이었고, '순종적으로 학습하는 학생들' 이 그들의 정체로 굳혀졌기 때문이었으리라. 기부입학생들의 자유로운 행위들은 그들의 정체에 대한 도전, 살아온 삶에 대한 부정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삼인방를 공격하고 방해한 것이다. 자신들의 삶을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러나 기부입학생 삼인방들의 끊이지 않는 기행 덕에 결국 시스템은 와해된다. 이목구비 없는 학생들마저 자신들의 진정한 정체를 깨닫게 된다. 큰 절망 후에 그들은 이지은 삼인방과 함께 싸우기를 결정하기도 하고, 삼인방에게 대척하기도 하고, 학교 밖을 나서길 시도하기도 한다. 알려고 들지 않았던 것들을 알게 되고,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던 스스로의 과거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그 의문은 다시 '앞으로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로 이어지고, 각자 다른 답변들이 그들의 새로운 삶이 될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개성'이라고 하고, 개성은 고유에게만 발현될 수 있다.
자신의 존재가 하잘것없음을 받아들인 순간, 그들은 새로이 태어난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안 순간, 새로운 정체를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체란 사명으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연쇄한 선택들이, 보낸 시간들이, 자기 자신의 의지로서 자기 자신은 만들어진다. 이야기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이지은 뿐이었지만, 그들은 자기 자신의 정체를 아는 순간 정체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니 이제 그들의 존재가 하잘것없다고 할 수 있을까?
작품은 마지막 순간 주인공의 이름을 공개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이름은 우리가 모를 뿐이었지 처음부터 공개되어 있었다. 이지은은 처음부터 자신이 알지 못하는 신분을 타고나 해결해야 할 미션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보류하려고 스스로의 기억을 지웠었다. 선택 앞에 다시 놓인 그녀는 이제 그녀의 정체를 안다. 학교 안에 갇힌 아이들은 영영 그 안에 여전히 갇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세상엔 이미 알아차리지 못한 수 많은 몸짓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의 정체를 들여다 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다시금 꽃이 되어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