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라는 제목에서 이미 짐작했겠지만 그렇다. 또 가고시마 이야기다. 징글징글할지도 모를 가고시마(전편의 그 짧은 글에서 '가고시마'란 단어만 25번이 나온다) 여행기를 또 쓰는 까닭에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
수많은 독자님들로부터 '어젯밤, 가고시마에 대한 글을 읽고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에 밤을 꼴딱 새우고 말았습니다, 계속해서 2편을 써주지 않으면 전 영원히 잠들지 못할 거예요. 그땐 작가님이 저의 숱한 밤들을 책임지셔야 해요. 부끄부끄'와 같은 거센 항의들이 빛발 쳐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을 맞이 했다면 거짓말이고(상상이 현실이 되는 마법은 여행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애초부터 가고시마에 대해 끄적여보고자 마음먹었을 때 번쩍하고 나의 온몸의 세포들을 자극하며 떠오른 단 하나의 이미지가 바로! 지금 쓰려는 이 두 번째 가고시마 여행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식전 애피타이저에도 못 미치는 글에 불과했으니 행여나 '너 따위가 작가냐!' '이 따위 글을 읽는 건 시간낭비야'라고 비난한다 해도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라고 하고 싶지만 솔직히 아직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소리를 신뢰하진 않음으로 자비를 베풀어 주심이...
대망의 <가고시마 여행기 에피소드 2>을 집필하기에 앞서(요즘 스타워즈에 빠져있다, 정확하게는 나탈리 포트만 누나에게 빠져있다), 가고시마의 매력을 간략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선 가고시마는 흑돼지, 고구마, 어묵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이런 재료들을 활용한 흑돼지 돈가스와 고구마 소주가 유명하고, 온천도 물론 유명하고, 모래찜질도 유명하고, 골프 여행지로도 유명하고, 누구는 해산물도 유명하다고, 누구는 녹차도, 누구는 흑우(검은 소)도 유명하다고 읊조리지만, 그 무엇보다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것은 가고시마의 랜드마크, 바로 사쿠라지마라는 거대한 활화산이다. 가고시마현 180만 인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명물 하면 사쿠라지마 아니겠어' 라며 엄치를 척하고 지켜 올릴 수준이랄까. 하지만 일본 열도 천하를 사로잡은 사쿠라지마의 유명세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유명하여 동북아시아를 벗어나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끝판왕이 있었으니,
바로 가고시마 출신의 아이돌, 아이즈원의 미야와키 사쿠라다...(라고 하면 욕할 건가요)
본격적으로 가고시마 여행기 2편을 써보려 한다. 첫 가족여행으로 가고시마를 다녀온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나는 친구 두 명을 데리고 가고시마를 재방문하였다. 일본이 처음인 친구들을 위해 삭막한 도시의 잿빛 풍경보다는 아름다운 대자연의 초록빛을 발산하는 가고시마를 선택했다고 피력하고 싶지만, 양심에 손을 얹고 얘기하자면 가고시마 비행기 삯이 제일 저렴했다.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를 외치던 친구 놈들도 비행기 가격을 보고는 '음, 꼭 가고 싶을 정도로 정말 매력적인 곳이군'이라 말하는 듯 군말 없이 야릇한 미소만을 띠었을 정도니... 역시나 가고싶은 가고시마였다.
첫 번째 가족여행은 앞서 쓴 바와 같이 상당히 뜻깊은 여행이었다. 내 삶의 작은 변화였고, 작은 용기였으며, 작은 행복을 촉발하는 신호탄 같은 여행이었다. 하지만 온천지대에만 고립되어 있다 보니 다소 따분한 면도 없지 않았다. 가고시마 시내를 둘러보긴 했지만 흑돼지고기가 들어간 라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수족관을 관람한 것이 전부였다(그래도 집채만 한 고래상어는 멋있었다). 그런 이유로 두 번째 여행은 다채롭게 준비하여 가고시마 시내 1박, 기리시마 온천지대 1박(유황냄새는 맡아야지, 킁킁)으로 결정했다.
가고시마 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 숙면을 취하고 나면 가고시마 시내가 나온다, 곧이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레일을 따라 지상 위를 달리는 노면전차인데, 이번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 지으려 한다. 서론에서 보유하고 있던 기력을 다 쏟았는지 온 몸에 진이 빠져버린 느낌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가 3년 2개월 14일 16시간을 무작정 달리다가 갑자기 멈춰 선 후, 추종자들을 향해 '아임베리타이어드(난 몹시 피곤해요)' 라고 말하는 명장면이 일순 뇌리를 스칠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태이다. 이실직고하자면 글을 쓸 여력이 없다기 보단 가고시마, 가고시마, 가고시마, 를 계속 쓰다 보니 가고시마에 질려 버렸다(여기까지 전편과 마찬가지로 '가고시마'를 25번이나 썼다).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가로질러 우후죽순으로 날아드는 249개 국의 다양한 언어로 구성된 독자님들의 성난 목소리가 두려워 간담이 서늘하기도 하지만, 더 이상은 가고시마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다소 민감한 작가의 심중을 헤아려주시길.
그래도 인간이라면, 아니 작가라면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기에 간단한 핵심만을 간추리는 것으로 마무리해볼까 한다.
친구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해외여행이 처음인 친구도 있었으니 놀랄 만도 하다.
'나카하라 벳소'라는 료칸식 온천 호텔의 다다미방을 처음 접하고는 오호~라고 외쳤고,
가고시마 도심 한복판에 버젓이 솟아 있는 큼지막한 '관람차'를 보고는 우와~라고 외쳤으며,
'야타이무라'라는 이자카야촌에서 닭 사시미의 감칠맛에 감동하고는 우왓!이라 외쳤고,
바로 옆에 위치한 꼬치구이집에서 돼지 혓바닥을 꾸역꾸역 씹어 삼키고는 우웩!이라 외쳤다.
여기까지가 가고시마 여행기의 종착점이다.
가고시마여, 이젠 정말 사요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