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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Sep 01. 2020

벌레의 습격

대부분의 도시 사람이 그러하겠지만, 나는 벌레를 정말 정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소스라치게 싫어한다. 오래된 아파트의 꽃, 바 선생을 제외하고는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박멸해야 할 존재일 뿐이다. 너무 싫기 때문에 내 눈앞에서 즉시 사라져야 할 존재이다. (노파심에 거듭 말하지만 바 선생은 예외이다. 이 글을 읽는 지인들은 바 선생을 잡기 위해 나를 부르지 말 것. )


시작은 이삿짐 박스였다. 아빠가 사시던 곳은 충청도의 어느 농촌이었다. 아빠는 오랜 꿈이었던 귀촌을 위해 충청도에 내려가 계셨다. 고추를 키우고 감자를 캐고, 옥수수를 삶아 먹고 2년 남짓을 그렇게 보내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서울로 다시 올라오게 되신 것이었다. 아빠의 짧은 시골 생활은 파란색 플라스틱 이삿짐 박스에 포장되어 서울로 다시 보내졌다. 그리고 서울로 보내진 아빠의 시골 생활을 정리하는데 이상한 게 보였다.  초록색의 얇고 길쭉한 무언가. 꿈틀. 움직였다.


"으아아악! 이게 뭐야!"

"애벌레네!"

"애벌레? 애벌레가 왜 옷 박스에 있는데? 대체 왜?"


정확히 전말을 알 수는 없으나 예상하기로 공간이 부족해 밖에 보관했던 이삿짐 박스가 화근이었던 걸로 보인다. 나방인지 나비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알을 낳았고 그것도 모르고 짐을 쌌던 것이었다. 겨우겨우 옷들을 다 털어내고 다 사라졌을 거라고 이제 나와 엄마의 깨끗하고 벌레-free 한 집은 다시 유지될 거라고 생각했다. 웬걸 착각이었다. 어느 날부터 나오는 나방들. 나비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걔네는 예쁘기라도 하지.  나방은 하루에도 세네 마리씩 나왔다. 가끔 옷에서 보이는 하얀 고치까지 환장 대환장. 나방이 나올 때마다 나는 스트레스에 참을 인을 세 번씩 그리며 살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은 발생했다.


"어? 현진아 너 등 뒤에 나방!"

"뭐? 으아아악 너무 싫어!"

"뻥이야!"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너무 화가 난다. 어떻게 아빠는 나방으로 나한테 장난을 칠 수 있을까.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 모르는 건가. 이러다 그 나방들이 또 알을 까면 이 집을 떠날 때까지 아니면 떠나고 나서도 계속 나방이 나올 텐데. 아빠는 왜 그러는 걸까.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걸까.

다시는 그런 장난치지 말라며 화를 왈칵 내고 방에 들어가서 한참을 울었다. 사실은 울 일도 아니고 아직도 내가 왜 울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집안일도 너무 힘들고 학교도 힘들고 벌레도 너무 싫고 이 집도 싫고 아빠도 싫고 주변의 모든 게 싫었던 것 같다.


며칠 후 집에는 나방 잡는 트랩이 택배로 배송되었다. 집안 곳곳에 설치된 트랩으로 나방은 모여들었고 수십 마리의 나방이 잡힌 끝에 나방 소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지금도 베란다에 설치된 나방 트랩을 보고 가끔 울컥 화가 치밀기도 한다. 아빠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리고 '으아악 벌레' 하고 외치면 아빠가 쫓아와서 잡아주던 것도 떠오른다. 그 말도 안 되는 나방 거짓말도 벌레가 너무 싫어서 힘들어하던 딸내미를 농담으로 좀 풀어주려는 시도였던 거겠지. 결국 실패했지만.


아빠와 나는 이런 일들이 참 많다. 서로 위해서 하는 행동인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들. 그 마음들이 오해로 다가와서 상처가 되고 오해가 된 마음은 다시 상처로 돌아간다. 사람의 행동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그 속의 의도나 마음은 감춰져 있다. 그래서 본인의 잣대로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은 오도된다. 그렇지만 감춰져 있어도 확실한 것도 있는 법이다. 아빠가 절대 나쁜 의도로 나한테 그럴 리가 없다는 것. 아빠한테 조금 너그러워져야겠다. 마음을 꽁꽁 졸라매서 왈칵 화를 내기 전에 졸라맨 마음을 조금만 느슨하게 하고 생각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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