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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반사 Jul 14. 2020

마흔, 불혹? 미혹!의 나이

예전에 알던 어떤 언니가 

서른을 앞둔 스물아홉 자신의 생일, 

촛불을 불며 모두가 박수를 칠 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던 기억이 난다.


당시 스물여섯이던 나는 그 장면에 어리둥절했다.

왜 울었을까. 생각해보니 곧 서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서른이면 잔치가 끝난단 말 때문인가.


그런데, 나는 서른이 돼도

그 눈물을 온전히 공감하지 못했다.

내가 서른을 어떻게 맞이했는지,

나의 스물아홉 생일은 어떠했는지 기억조차 안 날 만큼

나는 서른에 대한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스물아홉, 결혼으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았기 때문인가 보다.




그런데 지난해 마흔을 앞두었을 때, 그 언니의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 그 언니가 눈물을 터뜨린 데는,

아직 남자 친구가 없어서 혼자라는

외로움도 있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 부분은 다르지만, 어차피 외로움은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고민이니 그건 차치하고


아마도 그 마음의 중심에는

지금까지 해놓은 게 없다는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나는, 지난해 마흔을 앞두고 그러했다.


지금까지 해놓은 게 없다는 생각과 함께

지난날의 나는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을까라는 생각에 서글펐다.


30대 때도 아니고 이제와 20대에 대한 생각을 한다.


남들의 20대처럼 멋진 도전도 없었고,

남들의 20대처럼 금지된 사랑 뭐 그런 멋들어진 사랑도,

한 번쯤 나만을 위한 근사한 식사나

갖고 싶던 비싼 물건을 사는 등의 사치도 없었다.

아니 갖고 싶은 게 뭐인지 조차 몰랐다.

불교신자도 아닌데 무슨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 마냥.


내 삶을 즐기기보다는 그냥 하루하루 때우고 있다는 느낌, 남들처럼 치열하지도 못했던 어정쩡 20대였다.


누군가 그게 되겠어? 그걸 왜 해?라고 할까 봐.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해 도전하려다가도 포기했다.


실패할까 봐, 우스워질까 봐, 헛수고할까 봐, 힘들까 봐.


핑계도 가지가지였다.





지금도 가끔 남편이 나에게 답답하다는 말을 한다.


남편은 사업가적 성격으로 자신이 원하는 게 있으면

앞뒤 안재고 돌진하는 스타일인데,

나는 일단 안 되는 이유부터 찾을 때가 많다.


나도 모르는 나 자신의 모습을 남편이 일러줄 때면

겉으로는 무슨 소리냐고 버럭 하지만,

속으론 귀를 기울이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은 나도

나 스스로가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내 나이를 잊고 살다가도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어이쿠, 불혹이시네요"라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놀릴 때가 있다.


맞다. 나 마흔이다.


그런데, 벌써 세상 유혹에 끌리지 않는다는 뜻의 불혹이라 하기엔 나는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많다.


이제는 그냥 누가 봐도 바보 같은 40대를 살고 싶다. 


나이 마흔에 왜 그래?라는 지탄을 받을 만한 일을 골라하고 싶다.


학창 시절 이후 외면했던 춤도 20년 만에 다시 추고,

좀 유치한 얘기들이 많더라도 계속 계속 글을 써야지.


악보 보는 것도 잊었지만 이제부터 피아노 연습을 해서

언젠가 친구들을 불러놓고

멋진 옷 차려입고

나만의 연주회를 한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머리도 한번 아주 힙한 색으로 염색해봐야겠다.


2,30대 때 못한 걸, 주책이라 해도 지금 하면

스스로에게 덜 미안하지 않을까.


법이 허락하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건강한 일탈...

또 어떤 게 있을까? 생각만 해도 설렌다.


.. 근데 집이 왜 이리 정신 사납지. 슬슬 현타가 온다.

40대 주부답게! 일단 집안 정리부터 하자.





사진출처:https://m.blog.naver.com/lolmore/221377225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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