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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빛반사
Jul 10. 2020
말을 놓는다는 것
"J씨. 우리 이제 말을 놓으면 어때요?"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전 직장동료에게
내가
무려
15년 만에 한 제안이다.
그동안 별로 불편할 것도 없이
지냈건만
갑자기
왜
말을 놓자는 것인지
내 말이 좀 황당했을 수도 있다.
그래선지
그
친구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언니, 전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말 놓는
거네요"라는
답변이다.
그렇다. 말을 놓는다는 건 나에게도 참 어려운 일이다.
물론 어릴 적, 아마도
대학생 무렵까진
그렇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는 처음 봤어도 말을 놓는 게
편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나 어른들은 알아서 말을 놔주길 바랐다.
그런데 사회인이 된 후 몇 년이 흐르면서 나는 좀 달라졌다.
첫 대면부터 말을 놓는 사람, 몇몇의 태도에서 불쾌감을 느끼면서부터다.
머리가 커진 건지
, 내 처지 때문이었는지
이제 더 이상의
하대도
지긋지긋했
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도 자연스레 나보다 어린
사람들의
입장을 돌아보게 됐고
그들에게 영 말을 놓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거다.
내가 혹시 그들에게 동일한 불쾌함을 줄 수도 있기에.
그러던 내가 전업주부가 되면서,
이제는 주변 사람들과 말을 놓고 싶어 졌다.
단지 종결어미 하나 달리 쓰는 것뿐인데
어느 순간, 반말이 존댓말보다 훨씬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J씨에겐 거절 아닌 거절을 당했으니 패스.
또 다른 한 명의 전 직장동료에게도 같은 제안을 했다.
나보다 9살이나 어린 친구지만 알고 지낸 3년여 시간 동안
그녀를 존대해왔다.
내 제안에 그 친구는 흔쾌히 좋다고 했고, 다만 자신은 좀 힘드니
나부터 먼저 시작하면 서서히 놓겠단다.
마침 이틀 연속, 그 친구와 만날 일이 있었다.
첫째 날, 나 나름대로는 반말을 쓰려 노력했는데,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에서 내리며 한마디 한다.
"언니, 오늘 실패하셨네요."
"아, 그러네요~ 아니, 그러네~ 알겠어~ 내일을 기대해!"
둘째 날, 그날도 난 모호한 어미처리로나마
나름대로 반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 노력했다.
그러나, 어김없이 또 실패다.
"언니, 전 존대해도 언니는 빨리 놓으세요."
"아. 아무래도 잘 안 되네. 한 2년만 기다려요. 그 정도 시간이면 될 것
같으니까
!
하하
"
우리 남편은 누가 말을 놓으라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시원하게 잘도 놓아버린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럴까?
아무래도 어느 순간부터는 존댓말이
내가 남들에게 그어놓은 경계선이 돼 버린 것만 같다.
지난날, 친구들에게 종종 그런 말을 들었다.
"너는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다가도 다시 멀어지는 것 같더라."
"너는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솔직한 것 같지만,
또 다른 부분에서는 너를 꽁꽁 감추려는 것 같아"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를 꿈꾸면서도,
한편으론 그 허물이 벗겨지지 않고 유지되기를 바라는
모순된 마음
.
내가
그렇게도
꽁꽁 감추고 싶은 허물 속 내 모습은 과연 무얼까.
알고 보니 별 볼 일 없는
속 빈 강정 같은 모습
?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실체
?
아니면 아직도 미처 승화되지 못한 분노와 수치심을 안고
사는 미련함
?
어쩌면
내가 다가가면 상대는 오히려 달아날 것 같은
조바심이
나와 타인을 가로막는 두터운 마음의 벽을 굳건하게 세워온 건 아닌지.
그래.
스스로의 경계심을 자각하는
바로
이 순간,
경계를 허물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드러내고자 하는 용기는
이미 시작된 거다.
내겐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던 숙제 앞에서,
내 마음이 내게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그저 너를 있는 그대로 힘껏, 더 크게 사랑하라고.
타인을 너의 삶에 초대할 준비는
그것 하나로 충분하다고
..
내일은 마음을 조금만 더 열고 다시금
말 놓기에
도전해
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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