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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반사 Jul 15. 2020

신애라처럼 신박한 정리를

나에게 정리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를 버리지 못했다.

편지를 모아놓은 박스가 세 개가 넘었고

그 속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에게 받은

일반적인 편지는 물론이고

친구와 같이 쓰던 교환일기,

수업시간 받은 자잘한 쪽지까지 들어 있었다.


책상엔 보지 않지만 버리진 않는,

언젠가 볼  것 같은 프린트물들이 쌓여가다

용량 초과 상태에 이르러서야 한꺼번에 버려졌다.


나의 사랑도 그러했다.

정리되지 못하는 감정은

시간을 끌고 끌다

기어이 나를 새로운 사람에게로

자유롭게 데려가지 못했다.


머릿속은 또 얼마나 자주 뒤죽박죽인지

다양한 생각들로 넘쳐나다

이내 드라이 빗에 휘휘 감긴 머리칼처럼

엉클어진 상태가 되곤 했다.




전업주부가 된 지 1년이 지났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만

나에게 정리는 여전히 힘든 일이다.


나름의 노력이 쌓여

조금은 달라졌지만

내 상상만큼 드라마틱하진 못했다.


가끔 집에 와서 실망감을 내비치던 친정엄마의 한숨이

조금은 줄어든 정도라 할 수 있겠다.




마침 반갑게도 가까운 동네 복지관에서

정리수납전문가 과정을 연다기에 신청하게 되었다.


"버리자. 버림으로 자유를 누리자.

추억은 물건이 아닌 마음에 간직하자.

버림으로 생긴 공간에 꼭 필요한 것을 채우자."


뻔한 얘기들 속에서

"모든 물건에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생각이 머문다.


언제나 그, 제자리가 문제였다.

내 책상 위 물건들도

복잡한 머릿속도 제자리가 없어

그리도 방황했던 것이다.

제자리가 어디인 지 몰라 놓일 곳을 찾다가,

이내 아무 곳에나 비집고 들어가

두 다리를 제대로 뻗지 못한 채

옆으로 웅크려 눕게 되는 것이다.

때론 어디쯤에 간직했는지 몰라 여기저기 뒤적이다,

시간만 흐르고 찾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이 수업을 듣기 시작할 무렵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 중 한 명인

신애라가 한 정리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연예인들의 집에 찾아가 정리정돈으로

숨통을 틔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신애라는 내가 그리 좋아하는 연예인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사랑이 뭐길래'에

이재룡의 상대역, 통통 튀는 새침한 약사 역을 할 때는 아예 관심 대상도 아니었다.

그 후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 나왔을 때는

차인표에 푹 빠져

그를 앗아간 그녀가 몹시 얄밉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그녀는

말간 표정과 명랑한 눈빛,

분명하고도 다정한 말투로 빚어진

참 예쁜 그릇 같았다.


그 그릇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분명 단 한 가지의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그토록 화사하게 만드는 매력 속에

정리의 힘도 꽤 좋은 목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진 않을지.


명료하고 단순하게

밝고 명랑하게,

나도 그녀처럼.

몸도 마음도 나의 물건들도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마음껏  있도록

하나하나 제자리를 마련해줘야겠다.



방해꾼이 있을지언정^^



커버사진출처 : http://stoo.asiae.co.kr/article.php?aid=6558534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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