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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빛반사
Jul 17. 2020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J를 처음 만난 건.
아마 13년 정도 전이었을 거다.
나랑 띠동갑 정도 차이가 나는 그 아이는
교회에서 언니 오빠들을 잘 따르고 순하기로 유명한
중학생이었고 항상 얼굴에 함박 미소를 띠고 있었다.
청소년
찬양단 반주를 하겠다고
어른들의 연습 시간에 찾아와
수줍게 웃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아주
매력적인
아이
였다.
시간이 흘러,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던 그녀가
대학을 간다고 했다.
영문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영어학원에서 일을 했다.
마주칠 때마다 간간히 서로의 소식을 전했고
아주 가끔 밥을 먹기도 했다.
그러던 그녀가 얼마 전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짠, 하고 다시 나타나 또다시 특유의 환한 미소로 웃어 보이는 그녀.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심경에 변화가 있냐는 내 질문에,
"언니, 저 그냥 막살려고요"
하면서
해사
하게 웃는다.
그 후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하더니,
금방 색이 빠졌다며 회색으로 변한 머리색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우리 교회에서
그녀의 머리를 보고 있으니 왠지 내 속이 다 후련하다.
언젠가의 힙한 염색을 꿈꾸는 나도..
'좋아. 초록색 너로 정했어!'라는 생각이 스친다.
며칠 후 그녀와 따로 만나 밥을 먹었다.
다녀와서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하며
방밖에도 못 나왔던 얘기,
징역살이하듯
엄마가 하루 세끼
들여보내 주는 사식?만 먹다 살 빠진 얘기.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캐나다에서도
트랜스젠더를 주먹으로 강타하는 아저씨를 봤단 얘기.
길가다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기물을 파손하는 걸
몇 번은 봤단 얘기.
코로나로 캐나다까지 가서 온라인 수업 들은 얘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역시나
이길로 가나 저길로 가나 마지막엔 '사랑'에 대한 얘기로 끝이 난다.
20대의 가장 큰 이슈는 언제나 '사랑'이니까.
J는 누구보다 솔직하고 행복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아닌 순간에는 쿨하게 헤어졌다.
물론 아파했겠지만, 잠시 아파하고
후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사랑을 하는 데 머뭇거림이 없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적어도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나
권태 따위는
없어 보였다.
"언니, 전 그냥 만나봐요. 그래야 알 수 있잖아요"
있는 모습 그대로 단순하게
생각한다며
또다시
환하게
웃는 모습에
내 마음도 폭포수에 씻기듯 시원해진다.
그 시절
나의 사랑은 어땠는지 잠시 되돌아본다.
모양과 색은 다르지만
나 역
시 사랑을 꿈꾸고
사랑으로
행복하고
사랑에 아파하고 사랑으로 배웠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해도 된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J는
두렴없이, 지체 없이,
새로
운 사랑을
꿈꾸고,
아니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언니,
이번
사람은
정말
뭔가 달라요. 잘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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