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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Jul 26. 2022

센터 없이는 못 살아, 정말 정말 못 살아!

치매도 육아처럼 22

 "아니, 올 때가 됐는데~  나가 있을까?"


 나에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구분하기 애매하지만 어머니는 12층 창 밖을 연신 기웃기웃하며 안달이 난 목소리로 센터 차를 기다리는 것이 분명한 말씀을 하시었다! (내 안에선 북한 아나운서의 고조된 억양으로 읽히고 있다^^)

 어머니가 센터에 가고 싶어 못 견디게 되다니!

 아~~ 정말이지 이 얼마나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순간이란 말인가!

 하루, 이틀이 일주일이 되고 그렇게 모인 날들이  한 달, 두 달이 되는 동안 매일 처음으로 리셋되던 센터 생활의 기억은 마치 더 이상 지우개가 말을 듣지 않는 짙은 연필 자국처럼  어머니의 뇌세포에 '센터는 즐거운 곳'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새겨 놓았다.

 심지어 어머니가 센터에 다녀와서 낮에 참여했던 몇 가지 프로그램을 기억하고 당신의 눈부신 활약상을 말씀하시곤 했는데 그 모습은  우리 아이들이 첫발을 떼던 순간처럼 감격스러웠다.


 "글쎄 그림 좀 그렸더니 그냥~ 다들 난리지 뭐야? 언제부터 이런 그림을 배웠냐고! 자기는 통 못하겠다나?   아 그래서 내가 조금 도와줬더니 역시 다르다나 어쨌다나! 호호호"

 "우와~다른 분들을 도와드리기도 하셨어요? 대단해요 어머니!"


 나의 찐 탄성에 어머니의 얼굴은 더없이 해맑은 아기 같아져서 하마터면 양볼을 비비며 남은 감격을 극성맞게 분출할 뻔했다.ㅎㅎㅎ



 주간보호센터에는 센터장님과 사회복지사님들, 요양보호사님들, 요리사님과 차량 운전기사님, 그리고  간호사님이 상주하며 어머니의 즐겁고 건강한 하루를 책임져 주셨고 그분들 뿐 아니라 프로그램을 위해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시는 강사님들과 이미용 봉사자님 그리고 부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학생봉사자들도 색다른 활력을 불어넣어 주니 혼자 적적히 지내던 어머니에겐 신세계가 아닐 수 없다.


 "어머나~ 00 어르신 오늘 어쩜 이리 고우세요?"

 "아유 오늘은 멋진 모자를 쓰고 오셨네?"

 "아침부터 우리 00 어르신 뵈니까 제 기분이 막 좋아져요!"


 어머니가 센터에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기분을 살펴 맞춤 밀착 케어를 하는 요양보호 선생님들은 각종 칭찬세례를 퍼부으며 지정된 자리까지 극진히 모시고 갔다.  오픈한 지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았음에도 금방 자리를 메운 여러 어르신들과 반갑게 아침인사를 나누며 프로그램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하셨고 점심식사 후 대부분의 어르신이 오수에 들 때조차 홀로 깨어 심심한데 뭐 할 게 없냐고 선생님들을 졸라대며 종일 지루할 틈 없이 보내고 오셨다.

 여태껏 돌보아 온 어르신 중 최강 에너자이저라는 어머니를 얼마나 성심껏 보살펴주시는지 늘 황송할 따름이었다. '성심껏'이라는 표현에는 그분들이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전문성도 당연히 포함된다.

 몇몇 잊히지 않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머니는  환갑을  갓 넘기고부터 10여 년간 수채화 공부를 하고 제법 규모 있는 미술전에서 입상을 한 바 있어 명실공히 화가이다.

 어머니의 칠순 축하로 열었던 개인전 때 선물이나 판매를 하고도 꽤 많은 그림이 남아 있었다.

 처음 상담하러 갔을 때, 새로 단장한 센터의 휑한 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리에 어머니의 작품을 걸면 좋겠다 싶어 조심스레 여쭤보니 대환영해주셔서 옛 고향마을이 떠오를만한 소담한 풍경화를 얼른 기증했다. 어머니도 자랑스러울 것 같고 어머니 그림으로 다른 어르신들도 마음이 포근해지기를 바랐다.

 

 "아니 여기 내 그림이 있네?"

 "네 어르신, 이렇게 좋은 작품 기증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호호호 이래 봬도 이 그림이 상 받은 그림이야."(사실 수상작은 따로 있다)

 "오! 상 받을 만하셔요! 너무 잘 그리셨어요!"

 "아이 참 이렇게 띄워주니 내가 저 하늘 높이 훨훨 날아가겠는데?"

 "우리 어르신 말씀도 정말 재밌게 하셔! 하하하"

 

 당시에 하늘을 가리키며 날갯짓을 하는 동작까지 시전 하시며 진심 기뻐하셨고, 처음 며칠은 이렇게 훈훈한 대화가 지속적으로 오갔기에 모두가 만족하는 그림 기증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무슨 영문인지 어느 날부터


 "아니 여기 내 그림이 있네?"

 "네 어르신, 이렇게 좋은 작품 기증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기증이라니? 나는 그런 적이 없는데?"

 "아~며느님이랑 같이 오셔서 기증하셨어요."

 "아니 무슨 소리야? 통 알 수가 없네? 이 그림은 상 받은 건데 내가 왜 남을 줘? 당장 돌려줘요!"


 분노 게이지 상승, 급기야 역정을 내시는 어머니께 차분히 설명하거나 화제를 전환하며 어찌어찌 무마해 보아도 어머니의 부정적인 행동이 강화되자 방법을 고민하던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보호자님 아무래도 그림을 다시 가져가는 게 좋겠어요. 오늘은 우리가 도둑이라고, 경찰에 신고하시겠다고 할 정도로 화를 내셨어요. 어르신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네? 경찰 신고까지!! 도움이 되기는커녕 난처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그럼 어머니 모르게 떼어 갈까요?"

 "아니오, 어르신이 계실 때 직접 떼어가셔야 '각인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확한 사실관계는 기억을 못 하셔도 장면이 어렴풋이 떠오를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남편과 함께 가서 어머니 진두지휘 하에 그림을 내리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어머니는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이건 상 받은 그림이라 나한테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가져가는 거야. 다음에 우리 집에 와서 다른 걸로 하나 골라봐요."

 "아유 감사합니다! 다음에 그림 관람하러 꼭 가겠습니다!"

그날 찍어둔 동영상이 아직 남아 있다. 어머니의 기억 속 어디쯤 웅크리고 있다가 불현듯 재생이 될 수도 있을까...



 그리고 얼마 후, 못질까지 한 빈 벽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언니의 작품을 기증받아 대신 걸어 두었다. 그런데 어렴풋이 각인된 기억은 그림을 떼기 전으로 돌아간 건지 그 그림도 당신 거라고 우기며 같은 행동을 반복하셨다.

 다시금  문제에 봉착한 선생님들이 이번에는 작가 사인을 확인시켜드리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어머니가 알파벳을 읽고 당신의 사인(영문으로 표기하심)이 아님을 인지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머니가 수긍하신다 해도 매번 그렇게 친절하게 응대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대수롭지 않은 듯 호탕하게 웃으며 그날의 에피소드를 전해 주시는 선생님들. 시간이 흘러 사인에 대한 인지가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도 그 상태에 맞는 적절한 응대로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셨다.


 한 번은 다른 어르신의 겉옷을 막무가내로 당신 거라고 우긴 적이 있는데 요양사님이 안감에 붙어 있는 제품 라벨을 찾아들고는

 "어디 보자! 우리 00 어르신 옷은 다 수입 명품인데.. 여기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되어 있는 걸 보니

  이건  어르신 옷이 아닌데요?"

 라고 하며 고급옷을 입는 사람으로 추켜세워드리자 다소곳해지며 수긍하셨다고 한다. 물론 어머니가 명품 옷만 입지 않지만 어머니의 주장을 무시하지 않고 자존심을 세워주며 문제 해결을 하는 모습에서 전문가의 노련함을 보았다.  


 선생님들 뿐 아니라 다른 어르신들과도 즐거운 시간을 나누고 오셨는데 그중 '교수님'들이 큰 역할을 해주셨다.

 센터에는 할머니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 7:3 정도?

 아무래도 여성의 평균수명이 높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옛날 소녀시절부터 모여서 환담하는 것을 충분히 즐겨온 할머니들에게 센터의 문턱이 더 낮은 게 아닐까 싶다.

 어머니는 센터에 나오는 서 너분의 할아버지들을 모두 '교수님'이라고 지칭하셨다.

 실제로 그중 한 분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신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모두 같은 직업은 아닌데도 어머니는  남자 어르신들은 모두 교수님으로 생각하고 점잖은 분들과 대화가 통하는 할머니는 당신밖에 없다 보니 언제나 당신을 둘러싸고 대화하기를 좋아하신다며 살짝 수줍게 자랑하셨다.

 짓궂은 나는


 "어머니, 그중에 좀 로맨틱한 분 안 계세요?"

 "아유 왜 없겠어? 하루는, 그 뭐냐, 내 가방도 넣어 놓고 신발도 넣어 놓고 그러는 데가 있어. 왜 이리 얼른 말

 이 안 나오냐?"

 "사물함요?"

 "아 맞다 사물함! 내 사물함에 꽃을 한 송이 뜨윽~ 넣어 놓고 간 교수님도 있지."

 "어머어머 그렇게 멋진 분이 계세요? 누군지는 아시고요?"

 "어 짐작이 가는 분이 있지. 호호호"

 "어머니도 호감이 있는 분이세요?"

 "큰일 날 소리! 집에 마나님이 계신데 무슨~"


 아쉽... 지어낸 이야기임을 알고도 진심 아쉽다.ㅎㅎㅎ

 목소리 변조까지 자유자재로 가미하며 스토리텔링에 능하신 어머니의 이야기는 흥미진진 그 자체다.

 특히 처음 듣는 사람의 경우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치매를 제외하면 팔순의 나이에도 흔한 노인성 질병 하나 없이 건강하고 부지런한 어머니는 특유의 상냥한 미소로 주방일도 솔선해서 도우려 하시고 식사시간에 어르신들 물도 챙겨드리면서 보람을 느낄 뿐 아니라 노래, 미술활동, 인지활동, 신체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재미를 붙이시더니 이내 센터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센터 없이 살 수 없게 된 또 한 사람, 바로 나!

 나에게 센터란 사막의 오아시스, 찐빵의 앙꼬, 고구마에 사이다...

 왜 이런 촌스러운 비유만 떠오를까! 촌스러움과 원초적 감정은 사촌지간인 걸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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