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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Sep 10. 2023

가족애로 안되면 인류애

치매도 육아처럼 30





 1. 내가 하고 싶은 일

 2. 내가 해야만 하는 일

 3. 싫어도 나밖에 할 사람이 없는 일

 4. 나는 절대 하기 싫은 일


 내가 감당하는 일을 이렇게 네 가지로 분류해 보았다. 

 뭐 서로 뒤섞일 여지도 많고 딱히 무슨 논리적인 기준으로 분류한 것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내가 하는 일은 이 네 가지 중 하나다.


 1번, 2번에 해당되는 일은 저항 없이 바로, 3번의 경우는 되도록 빨리 태세를 전환해서 일에 착수하려고 하는 편이다. 일단 시작한 일은 성공하든 못하든 마음과 지혜를 모두 모아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가며 열심히 수행한다. 정성 어린 마음과 정신력, 이 모두가 충분하면 종종 신박한 묘수가 떠올라 어려운 일을 척척 해내기도 한다. 그런데 둘 중 하나라도 부실하다 싶으면 진행도 지지부진하거니와 결과물도 어디 내놓기가 민망한 수준.ㅜㅜ 그래도 어떻게든 하기는 한다.


 그런데 4번, 이유 막론 너무너무너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경우엔 그 소중한 마음 에너지와 가뜩이나 모자라는 지혜를 일을 맡지 못할 이유를 찾는데 온통 쏟아붓는다. 화내고 원망하고 트집을 잡으면서... 그러니 그저 속수무책.


 그나마 전체에서 4번의 비중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는데 어머니의 치매발병 이후 절대 하기 싫은 일의 카테고리에 어머니와 관계되는 일이 하나 둘 리스트업 되면서 그 무서운 성장속도에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사실 한정된 시간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의 총량이란 게 얼마나 커질 수 있을까... 

 일의 가짓수나 양이 늘어난다기보다 할 만하던 일이 하기 싫어지는 게 문제가 아닐까?

 예를 들면 음식물쓰레기가 뒤섞여 초파리알과 벌레가 우글대는 쓰레기봉투 처리하기 같은 일이나 어머니 말벗 되어드리기 같은 일을 거뜬히 해내다가도 어느 순간 딱 하기 싫어지면서 미련 없이 4번-절대 하기 싫은 일로 자리를 바꿔버리는 식이다. 


 몸이 피곤해서 그럴 땐 쉬면 되는데 미움과 원망으로 마음이 팍팍하게 굳어져서 그럴 때야 쉬어도 소용이 없으니 그저 내 마음을 촉촉하고 말랑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마치 바짝 말라 굳은 찰흙에 물을 붓고 따듯한 온기로 한참을 주무르면 뭐라도 빚을 수 있는 상태가 되듯이... 그래야 어머니를 안쓰럽게 여겨 보살펴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나고 그러면 1번은 아니어도 2, 3번 카테고리 정도로는 옮길 수 있다.


 아주 가끔은 어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나 혼자 집으로 향하는 짠한 뒷모습에 마음이 녹기도 하지만 대체로 어머니는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이 득도의 길로 내 등을 떠미는 분. 휴...

 그러니 내가 바뀌는 수밖에 없는데 고맙게도 감동적인 드라마나 영화, 책을 통해 극적인 전환이 가능한 것을 알게 되었다.

부끄러움을 들키지 않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 여겼는데 실은 혼자가 아니었다 

 어머니에겐 우러나지 않던 애틋한 감정을 극 중 주인공이나 실화 속 타인의 가족에게는 세상 다정하게 이입하다 못해 눈물 콧물 훌쩍이며 감정과잉으로 치달은 적도 여러 번.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그렇게나마 순해진 마음으로 다시금 어머니를 보듬을 수 있었다. 우리 어머니도 저랬겠구나, 다른 간병인들 보니 내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면서...

 예상하고 그 마음을 불러오려고 일부러 노력한 건 아니고 어쩌다가 알게 된 방법인데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여러 번 경험했으니 제법 힘주어 권하게 된다.

 

 실은 '어쩌다 알게 된 방법'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눈물 콧물로 씻어 내린 내 마음 창에 부드럽고 따뜻하게 후욱 입김을 불어놓고

'가족애로 안되면 인류애는 어때?'라고 뽀드득뽀드득 선명하게 새겨 넣는 일은 내 의지로 할 수 없음을,

그 거역할 수 없는 사랑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도 신의 은총 없이 거저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이제는 알아차렸으니까.


 운 좋게 발견한 만능열쇠 하나면 어떤 고난의 문이라도 열어젖히고 탈출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의기양양한 나는 이제 없다.  

 

 


치매도 육아처럼 30  특별히 더 큰 감동을 받은 작품도 있지만 이모저모 내게 도움이 되었던 작품들이라 차별 없이(^^) 열거했습니다.

**영화&드라마 추천

 눈이 부시게/한국드라마
 더 파더/영국&프랑스 합작영화/감독 플로리앙 젤러
 아무르/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 합작영화/감독 미키엘 하네케
 노트북/미국영화/감독 닉 카사베츠
 스틸앨리스/미국영화/감독 리처드 글랫저
 그대를 사랑합니다/한국영화/감독 추창민
 로망/한국영화/감독 이창근
 디어 마이 프렌즈/한국드라마 

**책 추천

*간병 보호자가 쓴 책
장모님의 예쁜 치매/김철수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윤이재
나는 치매할머니의 보호자입니다/박소현
천일의 순이/김난희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노부토모 나오코

*의사나 전문가 쓴 책
사라지고 있지만 사랑하고 있습니다/장기중
할매 할배, 요양원 잘못 가면 치매가 더 심해져요/나가오 가즈히로
치매와 싸우지 마세요/나가오 가즈히로
뇌과학자의 엄마 치매에 걸리다/온조 아야
치매 노인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오이 겐
치매 그것이 알고 싶다/양영순
치매, 걱정 마/니이미 마사노리
행복한 수다가 치매를 예방한다/신동명
존스 홉킨스 의대 교수의 치매일문일답/피터 V. 라빈스

*만화 
헬프맨/쿠사카 리키/학산문화사
웰캄 투 실버라이프/솔녀/naver 웹툰(11화 나, 한양순)
그대를 사랑합니다/강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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