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도 육아처럼 29
쿵쿵!! 쿵쿵!!! 어머니! 문 좀 열어 주세요!!!
으... 입주민의 거의 대부분이 출근과 등교준비를 하며 아직 집안에 있을 시간인데 아파트에 쩌렁쩌렁 울리는 내 목소리라니!
투박한 경상도 억양과 큰 목소리의 소유자로서 교양 있게 소리 칠 재간 따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최선을 다해 덜 부끄러운 목소리를 내려 애쓰며 애절하게 어머니를 불렀다.
제발 제발 응답 좀 해 주세요 어머니이~~~~
그날 아침 사건 개요는 이랬다.
아이들 등교를 위해 자동차 열쇠를 들고 막 나서려는데 어머니와 마주쳤다. 센터 차시간보다 한참을 일찍 나와서 서성이던 어머니를 경비아저씨가 친절하게 우리 집으로 모시고 온 것이다. 그런 일이 몇 차례 있었기에 늘 하던 대로 어머니에게 아침방송을 켜드리고 내가 올 때까지 시청하고 계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우리 집 TV가 안방에 있었던 것이 사달이었다.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돌아와서 삐삐삐삐 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문이 열리다 말고 '덜커덕' 걸리는 게 아닌가!
내가 떠나자 어느새 다시 나와 현관문 안전고리를 야무지게 걸어놓고 들어가셨나 보다.
어머니집 안전고리는 이사한 날 바로 철거했는데 아뿔싸! 우리 집은 괜찮겠거니 방심하고 말았다.
텔레비전 소리를 어마하게 크게 하고 계신 건지, 오늘따라 깊이 몰입하고 계신지, 아니면 잠이 드신 건지,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못 듣고, 목청껏 어머니를 불러도 못 듣고, 부서져라 문을 두드려도 못 듣는다.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집전화도 쓰지 않은 지 오래니 현관문 지나 안방문 넘어 어머니에게 내 소리를 전달할 방법은 없다. 눈물이 다 나게 기가 막힌 상황인데 시간은 흘러가고 내 출근시간뿐 아니라 어머니 센터차가 올 시간도 다 되어갔다.
그나마 이웃주민이 조용히 하라고 하거나 무슨 일이냐고 나와 보지 않아서 다행으로 여기며 반 뼘 가량 열린 현관문 틈으로 줄기차게 어머니를 부르고 또 불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안방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아무도 없나?' 하며 나오셨다.
"어머니!!!"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이리 기뻤을까!
화들짝 반가워하며 어서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데도 어머니는 어리둥절 그 자리에서 꼼짝을 안 하고 우두커니 서계셨다.
도무지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치매를 앓고부터 부쩍 집중력과 이해력이 떨어져서 TV프로그램을 끝까지 시청하지 못하시더니 아마도 지루함을 참다가 견디지 못하고 안방에서 나오신 것 같다.
가뜩이나 남의 집이라 얼떨떨한데다 조금 전에 내가 나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가 문밖에서 절규하는 내 모습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늦게까지 어머니가 나오지 않았다면 그날 나는 굳게 닫힌 문 밖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로 꼼짝없이 감옥살이를 하며 어떻게 하면 문을 열 수 있을까 생각하느라 골머리를 싸맸을게다. 안전고리를 밖에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란 건 애초에 있어서도 안될 텐데 말이다.
그날 당장 우리 집 안전고리도 철거했지만 혼자 집을 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번엔 아예 어머니를 차에 태우고 함께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그렇게 또 사고를 겪고 나서야 겨우 비책 하나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