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도 육아처럼 27
'의식주'를 '식의주'라고 표현한 것을 처음 접했을 때 아주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짐짓 '의식주나 식의주나 아무렴 어때' 하고 넘기려는 찰나
'내가 너무 생각 없이 사나?' 싶으면서
'인간에게 과연 뭐가 가장 중요하지?' 하고 슬그머니 자문해 보고는
'식이지!'라고 바로 답했던 기억.
셋 중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인지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나로선 체면을 위해 입는 옷보다 생존을 위해 먹는 음식이 더 중요하니까.
그렇담 식의주라 말하는 것이 맞나?
하하하 그야말로 뭣이 중헌디!^^
그저 말 한마디라도 신중하게 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가상할 뿐이다.
어머니가 가까이 와서 살게 되어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식사였다.
아침은 빵이나 떡, 과일 몇 조각이랑 마실 것 조금으로 간단히 드시고 점심은 단체급식이니 아무래도 저녁만큼은 영양식으로 드려야겠다는 마음은 확고한데 입맛이 민감한 우리 아이들 덕분에 요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큰 고민거리인 데다가 시어머니 입맛까지 고려해서 메뉴를 정하고 식사를 준비해야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한 아파트에 살면서 서로 매일 드나드는 자매들에게 조차 하다못해 새우젓 풀어넣고 달걀찜이라도 얼렁뚱땅 내놓아야 직성이 풀리고, 그 누구라도 밥상에 수저 하나만 더 놓으면 되니 신경 쓸 것 없다고 하는 자가 있다면 언제든 "그 입 다물라!" 하고 일갈할 준비가 되어 있던 내가 아닌가!
아니, 수저 하나만 더 얹으면 되는 식탁은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지냔 말이다.
두 번 내는 음식은 손이 잘 가지 않아서 되도록 한 끼에 먹고 끝내려는 바람에 반찬을 넉넉하게 만들지도 않을뿐더러 아무리 편한 관계라 해도 어디까지나 손님은 손님인데 대접하는 입장에선 밑반찬만 덩그러니 내놓기가 영 민망한 일이다.
손님... 어머니는 손님이었다.
내가 차린 식탁에 앉으며 손님처럼 어찌할 바 모르는 어머니에게 그러지 마시라고 말씀드리면서 나야말로 어머니를 불편한 손님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 스스로에게도 주문을 걸었다.
'그냥 편하게 준비해! 하루이틀로 끝날 일이 아니잖아, 롱런하자고!'
어머니가 국을 그다지 즐겨 드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국이나 찌개를 꼭 끓이고 메인으로 육류나 생선반찬 하나, 나물이나 야채무침, 밑반찬 두어 가지 정도로 차려 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 식성도 알게 되어 잘 드실 수 있게 요리하는 노하우도 생기고 수월하게 한 끼 해결하는 요령도 생겼다. 일요일 점심에는 외식이나 남편의 라면요리(얼마나 정성껏 끓이는지 요리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그러나 나는 요리가 끝나기 전에 면을 미리 덜어내는 만행을 일삼곤 했다. 탱글탱글한 면발취향인지라^^; )로 식사준비에서 해방되기도 했다. 막상 아이들 입맛에 맞는 음식도 잘 드셔서 메뉴 선정의 어려움도 별로 겪지 않았다.
당신이 늘 자랑삼아 말씀하는 대로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드시고 맛있게 먹었다고 해주시니 그간 아이들로부터 받은 혹평의 상처마저 지워지는 듯했다.
그렇게 어머니를 위한 식사준비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하루 일과에 스며들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것 위주로 드시려 하는 건 신경이 쓰였다. 아무래도 고른 영양섭취가 어려워지니까. 특히 멸치볶음이나 건오징어채 무침 같은 달짝지근하고 짭짤한 반찬을 좋아해서 그것만으로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려 할 때도 있었다.
어머니가 계속 인생 최고 몸무게를 갱신 중이고 혈당수치가 오르고 있어서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김치 양념을 그릇에 문질문질하면서 털어내거나 반찬을 뒤적뒤적해서 원하는 재료만 골라 드신다거나 하는 행동으로 함께 식사하는 가족들이 불쾌해지는 일도 잦아졌다.
그래서 고심 끝에 개인 그릇을 쓰기로 했다.
각자 자리에 놓인 그릇의 음식은 싹 비우기로 하니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새로울 것도 없는데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었다.
우선 각자에 맞는 식사량대로 준비하니 잔반이 생기지도 않고 좋아하지 않는 반찬도 별 수없이 먹게 되고
음식에 여러 사람의 수저가 닿지 않으니 위생적이다.
1인용 나눔 접시가 움푹하지 않아서 설거지도 한결 수월하니 이 방법 강력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