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작년에 복숭아꽃이 지고 나서 이사를 왔기 때문에 우리 동네가 봄단장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얼마 전 뒷산에 올라 처음 본 진달래는 우와아아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장관! 숨이 멎을 듯한 꽃사태 현장 그 자체였다.
2024.03.21 원미산 진달래동산 2024.03.24 원미산 진달래동산 2024.03.25 원미산 진달래동산 2024.04.04 원미산 진달래동산
이른 봄에 산행을 하다 보면 아직 겨울옷을 벗지 못해 칙칙한 나무들 사이로 마치 등불처럼 환하게 숲길을 밝히고 있는 진달래를 한 두 그루쯤 만나기 마련이다.
여리고 고운 빛을 하고서 수줍게 살랑거리는 모습을 보면 가슴 한편이 저릿해지곤 했다.
그런데 산허리 한가득 진달래라니!
세상에, 이렇게 많이 모여서도 그저 조용하고 보드랍게 번지는 분홍빛이라니!
꽃이 다 질 때까지 원 없이 보리라 마음먹은 나는 스르르 그 빛으로 함께 빠져들 사람들을 초대했다. 풍경을 만나기 몇 걸음 전부터 그들이 탄복할 모습을 예측하며 살펴보는 재미도 얼마나 쏠쏠했는지 모른다.
"히햐!! 정말 이쁘다!! 기대이상인데? 이렇게 진달래가 많이 피어 있는 건 난생처음 봐!"
"그렇다니까!?"
내가 가꾼 꽃동산도 아니면서 의기양양하게 이쪽저쪽 안내를 하는데 불현듯 초대하지도 않았고 초대할 수도 없는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가 생각났다.
누구보다 환하고 고운 표정으로 감탄하며 이 풍경을 만끽하실 텐데...
2019.05.04 신구대학식물원
얼굴 가득한 주름들이 꽃잎처럼 펴지던 사진 속 장면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훌쩍 지났다.
그 세월 동안 병세는 쉼 없이 악화되어 식물원을 잰걸음으로 누비던 어머니는 짧아진 보폭을 맞추면서 천천히 부축을 해드려야 겨우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휠체어를 타면 얼마든지 외출을 할 수 있었던 친정엄마도 여러 차례 골절사고가 이어져 치료를 받았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서 지내야 하는 상태가 되었고 급기야 치매까지 앓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두 분 모두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호기심과 감동을 잃은 지 오래다.
치매는 줄 줄은 모르고 가져가기만 한다.
미세먼지 낀 대기처럼 뿌연 엄마와 어머니의 뇌세포들이 88년 치, 87년 치 봄기억을 왕창 소환해 주면 좋겠다. 너무 많으면 그래, 한 5년 치만이라도... 그래서 힘을 잃은 눈빛이 다시 꽃잎 위에 반짝이며 자리 잡고, 일자로 굳어진 입꼬리가 꽃향기 따라 일렁이면 좋겠다.
아... 이런 게 소원이 되기 전에 좀 더 많이 감동하고 감탄하게 해 드릴걸...
봄이 왔는데 내 마음은 겹겹이 후회를 껴입고도 한기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