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 맞이한 새해
첫눈,
첫사랑,
첫 열매...
뭐든지 처음 맞이하는 것은 그것이 실패라 해도 설레기 마련인데 요양원에서 처음 맞이하(게 하)는 생일과 새해는 설렘이 아니라 자욱한 슬픔.
정작 어머니에게는 그런 것이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퍽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온전히 '행'으로 삼을 수 없는 기막힌 현실.
2022년 12월 31일, 어머니의 86번째 생일.
그날따라 열차 선로에 장애가 발생하는가 하면 열차까지 고장이 나서 평소보다 1시간이나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요양원에서 기다리던 어머니를 친정식구들이 모시고 와 음식점에서 만났다.
낯선 사람들과의 동행이라 돌발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허둥지둥 음식점으로 들어가 먼저 도착한 어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이! 하이! 어머니~~"
"하이! 엄마, 아버지! 늦어서 죄송해요!"
반갑게 맞이하는 친정식구들에 둘러 싸여 멀뚱멀뚱 나를 보는 어머니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캔하며 외투와 모자를 벗겨 드렸다.
'요양원에서 외출준비를 잘해 주셨구나! 어머니는 2주 전과 다름없이 좋아 보이네? 오늘은 좀 덜 긴장하시려나?' 그런 생각을 하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 오늘 무슨 날인지 아세요?"
"오늘? 글쎄 오늘이 오늘이지 뭐야? 호호호."
"오늘이 어머니 생신이잖아요, 86번째 생일!"
"아니 누구신데 그걸 다 알아요? 호호호."
"저 어머니 며느리죠! 하하하."
"어? 그래요? 호호호."
알 듯 말 듯 내 얼굴을 집중하여 바라보며 정답을 갈구하던, 물음표로 가득 찼던 눈에 어색한 웃음이 번지더니 어머니는 내게 맥락도 문장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모호한 말을 건넸다.
나는 도무지 답할 말을 못 찾고 갸웃거리다가 얼렁뚱땅 식사를 권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한동안 드시는 일에만 골몰하던 어머니가 숯불 연기를 식탁아래로 흡입하는 장치에서 나는 소리가 궁금한지
"이게 무슨 소리지? 이 밑에 누가 있는 것 같애."라고 했다.
어쩐지 호기심 많던 어머니의 성향이 변하지 않은 것 같아 반짝 기분이 좋아졌다.
태어난 날이 12월 31일이라 애꿎게 한 살 더 먹게 되었다고 생일마다 억울함을 호소하다가도 동급생보다 작고 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창 시절 1등을 놓치지 않았다는 반전스토리를 수줍고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어머니였다.
수저 사용하는 법도 어려워하고 케이크접시에 입을 바로 갖다 대며 드시려고 하는 모습에서 예전의 총명함은 볼 수 없어도 어머니를 어머니답게 느낄 수 있는 개성의 한 자락을 발견한 기쁨은 1등 성적표를 받아 든 것 못지않았다.
간간이 아기처럼 떠먹여 드리면서 식사를 끝내고 생일케이크에 무수히 많은 초를 꽂고 모두들 손뼉 치며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당신이 주인공인 사실을 잊고 있던 어머니에게 촛불을 끄라고 재촉하자 후욱~ 후욱~두세 번에 걸쳐 촛불을 끄더니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 오백녀 언 살자느은데에 웬 서엉화아뇨오~"
하하하하
초가 너무 많아서 세월이 길게 느껴지신 걸까?
생뚱맞고 갑작스러운 노래에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렴 그렇지, 생일에 '한 오백년'이라니!
'낭랑 십팔 세'로 급히 전환해서 즐겁게 부르며 파티를 마무리했다.^^
생일 선물로 받은 헤어핀을 예쁘게 꽂고 어머니는 다시 요양원으로 가셨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는 일이 이젠 꽤 무덤덤한 일이 되었다.
어머니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들어가 버리니 감상에 젖을 새도 없지만 모처럼의 외출이 즐거운 한편 순간순간 긴장하는 것이 보여서 얼른 편안하게 해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어머니는 요양원 입소 후 증량했던 안정제를 이젠 드시지 않고 있다.
요양보호 선생님들이 어려움을 감수하고 어머니의 삶의 질을 높이는 쪽을 선택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정말 고맙습니다!)
2023년 한 해도 부디 어머니다운 명랑함을 유지할 수 있기를,
요양보호 선생님들과 요양원에 계시는 어른들이 모두 건강하기를,
어머니 돌봄에서 자유로워진 나의 삶도 의미 있게 꾸려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