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것은 치명적이다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귀여움이라는 녀석

by 조이엄

메시지가 좋은 책은 많다. 그림이나 멋진 이미지를 보고 싶다면 잡지를 구독해서 봐도 될 것이다. 그러나, 동화책에는 이들이 갖고 있지 않은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귀여움'이다. '힘들 때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세 가지'는 귀여운 아기,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 귀여운 동화책이다.


귀여움을 느끼는 기준은 모두 다르겠지만, 내 기준에서 귀여운 그림책들은 하나같이 등장인물, 발상, 그림체라는 세 가지 포인트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귀여움을 내뿜고 있었다. 여기 내가 좋아하는 두 명의 동화작가가 있다. 따뜻한 시선과 참신한 발상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안녕달 작가와 이지은 작가다.



안녕달 작가, 출처: 인터파크도서 북DB / 이지은 작가, 출처: 채널예스




발상의 귀여움

이지은 작가의 그림책 이파라파 냐무냐무를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 기억난다. 이제껏 다른 그림책에서 느껴보지 못한 생경한 느낌. 장난스럽고 귀여운 그림체에, 아재개그 같으면서도 예상치 못하게 플롯을 꺾어 허를 찔려 웃게 되는 그런 내용이랄까. 아재개그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이 그림책의 참신하고 귀여운 발상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림책을 먼저 읽고 싶은 분들을 위해, 이제부터는 그림책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알린다.




마시멜롱들이 사는 숲 속 마을, 평화롭던 어느 날 갑자기 "이파라파 냐무냐무!" 하는 큰 소리와 함께 거대한 털숭숭이가 나타난다.




"이파라파 냐무냐무"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고민하던 마시멜롱들은 "우리 마시멜롱들을 냠냠 맛있게 먹겠다는 말이야!"라고 해석하며 집단 패닉에 빠진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먼저 공격을 개시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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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털숭숭이의 진심을 알아보려고 대화를 하러 간 마시멜롱이 진실을 알아내고야 만다. 다른 마시멜롱들이 털숭숭이를 공격할 때 그의 입 속으로 피신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털숭숭이에게 천천히 또박또박 이야기하라고 말하자, 털숭숭이는 '이빨이 너무 아프다'는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진실을 알게 된 마시멜롱들의 정성스러운 치료와 간호 끝에 털숭숭이는 드디어 외칠 수 있게 된다.

"아 나 파(안아파)"


이전까지는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는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그림책들을 읽었기에, 메시지보다 철저히 유희적인 요소와 귀여운 요소(ex. 존재 자체가 귀여운 마시멜롱)에 초점을 맞춘 그림책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혹시 이가 썩었는데도 아픈걸 꽁꽁 숨기는 어린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그림책을 만들고자 치과 협회 같은 곳에서 제작 지원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책을 구석구석 살피며 '대한 치과의사협회'나 'OO구 치과 모임'같은 이름이 적혀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결국엔, 말장난처럼 어이없으면서도 이 엉뚱한 발상이 귀여워서. 또 너무나 대범해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등장인물의 귀여움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 당근유치원도 내 최애 그림책 중 하나다. 이 책은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던 아이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선생님을 만나고, 선생님에게 느끼는 애정을 아이답게 표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이들의 순수한 애정은 가장 단순하고 직설적인 방식으로 표현될 때조차 사랑스럽다는 것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한다는 것을 역시나 귀여운 그림체로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주인공인 아이는 유치원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유치원 선생님은 목소리만 크고, 힘만 세며,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들은 유치하다. 열심히 율동을 가르치는 선생님 앞 아이들은 각자 할 말을 하기 바쁘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아이가 만든 코끼리를 칭찬해 준다.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한 아이는 자신이 바지에 실수를 하곤 "이거 흙이에요. 똥 아니에요."라고 성을 낼 때 선생님이 "그래, 흙이야. 어서 이거 먹으면서 바지 갈아입자. 친구들이 똥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해."라고 이야기를 해 준 것을 계기로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다.




유치원에 갈 때 예쁜 옷을 찾아 입고, 율동 시간에 앞쪽에 서서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한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는 자신의 그림도 봐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식사 시간에는 좋아하는 당근을 선생님에게 주기도 한다.


책의 말미에서는 아이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언어로 애정을 표현한다.

"난 선생님이랑 결혼해서 맨날맨날 같이 놀 거야!"


이 책은 직접 구매해서 읽은 후,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다시 새 책을 사놓을 정도로 애정하는 책이다. 책 속에서 주인공 아이가 하는 행동이 귀여운 이유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사랑의 표현 방법 때문이다. 주인공 아이뿐 아니라 함께 등장하는 다른 아이들도 같은 이유로 귀엽다.


그림책을 자세히 보면 주인공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저마다 뭐라고 재잘재잘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미술시간에 당근을 그리던 아이는, 선생님이 "왜 당근을 그렸어요?"라는 말에 "당근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순간 어렸을 때, 남동생이 "커서 경찰차가 되고 싶다"는 말한 것을 떠올리곤 작가님의 동심에 대한 통찰력에 깊이 감탄했다. 경찰도 아니고 경찰차가 되고 싶다니. 아이들의 애정 표현은 이 정도로 직설적이다.




귀여움의 치명성

귀여운 것이 치명적일 수 있는 이유는 심장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귀엽다는 뜻이랄까. 그런데 그림책에 있어서 귀여움은 또 다른 역할을 한다. 바로 메시지를 증폭시키는 역할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대답이 예상치 못하게 어른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수하고 귀여운 무언가는 우리 마음을 쉽게 녹여 깊숙이 들어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독서 모임에 서로의 책을 교환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가 가져간 것은 당근유치원』. 귀여운 표지 때문에 인기가 많았던 이 책은 금방 새 주인을 찾았고, 예기치 못하게 그녀를 울렸다. 바지에 실수를 하곤 '똥이 아니라 흙'이라고 우기는 아이를 감싸주는 선생님의 태도에서 진정한 사랑의 태도를 느껴서라고.


귀여운데, 치명적이기까지 하다니.


(발상이) 귀엽고, (등장인물이) 귀엽고, (그림체가) 귀여운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