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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Feb 05. 2024

목마름

상처 입은 영혼과 동행하기


이번 여행이 동생한테 어떤 의미였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동생이 얼마나 좋아하고 행복해했는지, 돌아오고 나서도 매일 전화를 걸어 한 시간 넘게 흥분된 목소리로 여행 얘기를 하는 그 마음을 표현하기도 어렵다.

여행이 너무 좋아서 매일 너무 행복해서 다시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싫어서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을 보는 게 어떤 마음인지 말하기도 힘들다.

어쨌든 여행은 끝났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동생은 방 안이 너무 고요하다고 했다.

다시 갈 수 있을까? 를 내게  묻고 또 물었다.

가족은 여행이 끝난 후의 일상을 염려했다.

여행 후유증으로 동생이 힘들어하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우리는 여행 중에 이 얘기를 여러 번 나눴다.

여행이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지루한 시간을 견딜 힘을 주는 게 아니고 그 반대라면 다시 여행을 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했다.

동생은 이해했고 노력하겠다고 약속했고 나는 네가 노력하면 다시 여행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약속했다.


과거 우리의 여행은 늘 힘들었다.

동생은 종종 내 말을 듣지 않았고 친구들끼리 여행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불평을 했고 바쁠 때 느리고 굼떴고 짜증을 내고는 했다.

이번 우리의 여행은 달랐다.

나는 여행의 모든 일정을 동생이 좋아하는 걸로 채웠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을 같이 하고 가고 싶은 곳을 데리고 가고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먹게 하고 체험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찾아줬다.

동생은 내 말을 기꺼이 들었고 부지런하게 따라왔고 매 순간 행복해했고 있는 힘을 다해 즐겼다.

너무 몰두해서 몸이 아파도 모를 정도였다.

동생이 가장 좋아할 거라고 예상했던 워터파크에서 얼마나 열심히 놀았던지 중이염이 생겨 다녀와서 이비인후과에 가야 할 정도였다.

좋았다는 말을 고맙다는 말을 또 오고 싶다는 말을 여행 중 이번만큼 많이 들었던 적이 없다.


동생은 어느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한 번도 채워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늘 영혼이 허기져 있다.

아무리 주고 또 줘도 바닥 없는 항아리에 물 붓듯이 빠져나간다.

줘도 줘도 배고픈 사람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일은 내 영혼의 일부를 떼어줘야 하는 일이다.

힘이 들고 같이 허기지는 일이다.


이번 여행에서 동생은 아주 조금 채워졌다.

정말 아주 조금 영혼에 찰랑거림이 생겼다.

그게 너무 귀하고 소중해서 동생은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그리고 그 오랜 세월 나의 노력에도 잘 안 되었던 우리 둘 사이에 진정한 의미의 라뽀가 형성되었다.

이제 동생은 내 말을 믿고 내 조언을 듣고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동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이제야 깨달은 듯싶다.


여행 중 동생은 코끼리와 호랑이, 말과 곤충들, 비둘기 떼와 매, 개와 고양이, 염소와 토끼와 기니피그, 원숭이와 도마뱀을 만났다.

동생이 얼마나 동물을 좋아하고 교감하고 싶어 하는지 알았다.

쿠킹클래스에 참여하고 배를 타고 쇼를 보고 라이브음악을 들었다.

바다에 들어가고 천 미터 산에 오르고 마차를 타고 말을 타고 78층 건물 꼭대기에 올랐다.

동생이 얼마나 무언가를 하기 좋아하고 직접 체험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내고 싶은지 알았다.


좋은 시간이 흘러 마음에 고여 작은 샘을 하나 만들었다.

일상이 지루할 때 가만히 옹달샘을 들여다보고 목을 축였으면 좋겠다.

이제 조금 채워진 그 샘에 물이 마르지 않도록 조금씩이라도 더 물이 채워지게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한다.


매일 같이 있다가 옆에 없으니 허전하다는 동생 말에

내 마음이 진동한다.

잘 견뎌보자. 하루하루의 삶을. 그리고 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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