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라는 그림자
상처 입은 영혼과 동행하기
사람들이 나보고 좋은 누나라고 할 때마다 스스로 묻는다.
과연 나는 남동생에게 좋은 누나일까?
남동생에게 큰 누나는 넘을 수 없는 큰 산 같은 존재이다.
너무 크고 거대해서 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큰 누나는 항상 가족들의 칭찬을 듣는다.
언제나 옳고 언제나 바르고 늘 남동생을 위해 희생하고 애쓰는 사람이다.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주고 경제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다른 누나들이 해줄 수 없는 것을 해주며 동생의 행복을 바라는 좋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동생은 항상 큰누나 말을 잘 듣고 잘 따르고 시키는 대로 노력해야 한다.
반면 동생은 늘 지적을 받고 잔소리를 듣는다.
잘하는 것은 별로 없고 늘 말썽을 일으키고 나쁜 말을 하고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만족할 줄 모르고 불평만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동생의 행동이나 말, 살아가는 태도와 마음가짐, 이런저런 사고와 말썽에 대해 가장 많은 지적을 하는 사람이 큰누나다.
나와 동생은 서로 감정이 격해질 때는 카톡으로 몇 시간씩 싸우고는 했다.
동생은 변명을 하고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합리화를 하고 일부러 내 속을 뒤집고 욕을 하거나 거친 말을 했다.
나는 차갑고 냉정하게 동생의 행동을 야단치고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사정했다.
누나의 말은 언제나 옳았지만 동생은 옳은 말을 듣고 싶은게 아니라 먼저 이해를 받고 싶어했다.
아무리 이해를 해줘도 무력할 정도로 소용없는 날들이 아주 길었다.
그리고 나는 이해보다 먼저 인정을 요구할 때가 많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에 집중해서 살기를 부탁했지만 우선순위가 틀렸을 것이다.
지금도 동생은 내 눈치를 보며 말을 할 때가 많다.
혹시 혼나지 않을까? 누나한테 야단맞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누나의 인정을 받고 싶어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사실을 왜곡한다.
더 이상 혼내거나 야딘치지 않는데도 움찔한다.
오랫동안 동생은 무엇으로든 나를 이기고 싶어 했다.
날 넘어서고 극복하고 싶어 했다.
어떤 걸로도 안 된다고 판단했을 때 동생이 선택한 것은 나이다.
젊음. 누나보다 젊고 어리고 앞으로 살 날이 많이 남은 청춘의 삶을 보내고 있다는 것.
그것만이 누나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매일같이 나는 어리고 나는 젊고 나이 든 사람들은 다 죽어야 하고 등등의 말들과 씨름을 해야 했다.
논리도 맥락도 없는 공허한 말들과 씨름하면서 나는 수시로 내 바닥을 응시했다.
검고 어둡고 축축하고 폐허처럼 버려진 내 영혼의 바닥.
그 음침하고 시커먼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고 살던 날이 하루도 없을 정도였다.
내가 얼마나 잔인하고 냉정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내가 얼마나 비겁하고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 수 있는지.
얼마나 인내심이 없고 얕고 빙퉁그러진 마음을 가졌는지.
그건 정말 종이 한 장의 차이였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나는 언제든 그런 사람이 되었고 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동생과 함께 하면서 때로 내가 어떤 생각을 품었었는지 어떤 상상을 했었는지 차마 고백할 수 없다.
다만 동생 때문에 삶의 무게 추 사이에 균형을 잡으며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며 나 자신의 양면을 지각하며 살려고 무진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남동생보다 훌륭하지 않다. 더 나은 사람도 아니고 더 좋은 사람도 아니다.
그저 노력을 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내 동생은 나쁜 사람도 아니고 못난 사람도 아니고 항상 실수나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부족하고 느릴 뿐이고 상처를 입고 한 번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행복하려고 무던 애를 쓰는 사람이다.
동생도 나름 있는 힘을 다해 노력 중인 거다.
어는 순간 나는 동생에게 방향을 제시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말들은
동생이 그런 말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지능과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지만 그건 언제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동생은 그저 조금 위로를 받고 이해를 받고 싶은 거다.
다만 마음에 너무 큰 구멍이 나 있어 조금이라도 채워지는데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사람들의 삶은 모두 다르고 다 저마다의 우주를 갖고 산다.
동생의 우주는 조금 거칠고 메마르고 황폐하지만 그
나름대로 아름답고 그 나름대로 빛나는 별이다.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으니 나는 동생의 우주를 그냥 품기로 했다.
진작에 그랬어야 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동생은 매일 내게 전화를 한다.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좋았던 기억, 즐거웠던 추억.
그저 아무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거다.
나는 주로 듣는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