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배낭여행
영사관은 주말에 문을 열지 않는다.
새로 만든 여권은 사흘 만에 이스탄불에 도착했지만 주말이 껴서 별수 없이 월요일 오전까지 기다려야 했다.
해외여행 중 주말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없는 나라에서 여권을 분실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는 건지 몹시 궁금했지만 결코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밖은 덥고 사람들 사이로 휩쓸려 다니는 것이 싫어 이스탄불 현대미술관을 찾았다.
비싼 입장료에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미술관은 놀랍도록 쾌적하고 세련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물렀다.
그러다 어느 사진 앞에 발이 붙들렸다.
사람과 짐을 가득 싣고 위태위태하게 앞으로 가고 있는 트럭사진이었다.
트럭은 금방이라도 옆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여동생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여전히 과호흡 증세를 겪을 때가 있다.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나 어떤 원인이 뇌에 잠재된 무의식 속의 불안과 두려움을 건드리면 과호흡 증상이 찾아오는 것 같다.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꼭 죽을 것 같은 공포라면 과호흡으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도 얼마나 무서울까?
삶의 균형이 크게 한번 휘청이고 나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든 법이다.
일상은 우리가 인지하든 못하든 늘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있다.
한순간의 휘청임으로도 평범한 일상이 깨지는 경우를 수없이 보면서 내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15년 배낭여행 중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내게 불쑥 일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15년간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과도한 불안을 안고 살 수는 없다.
일상의 균형이 절대 깨지면 안 되고 모든 것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흔들리면 같이 흔들리고 휘청이면 다시 균형을 잡으며 그저 담담히 충실하게 하루하루의 삶에 집중해야 한다.
동생은 조금 유연하게 불안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같이 살아가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불안이 없는 삶은 없다. 평온함만이 지속되는 일상도 없다.
흔들리지 않는 삶은 어디에도 없다.
위태로워 보이는 삶도 계속되는 한 어찌어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여행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 여행이 이렇게 진지할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