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비행운을 읽고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과연 깨닫게 되면서 소설 쓰는 일이 불현듯 존나 두려워진 서소 씨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연애의 행방 따위처럼 아무렇게나 갈겨쓴 소설이 또 베스트셀러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 다시 소설 구상에 몰입하였다.
다음 소설은 좀 특이한 설정-시바신, 오대존 명왕, 리어카, 외국계회사가 나온다-이라 첫 문장 쓰는 게 두려워 며칠째 미루고 있단 차였다. 아이 씨 괜히 이런 괴랄한 설정을 해가지고. 서소 씨는 스스로를 타박하며 일단 키보드에 손을 올려 보지만, 금세 고개를 가로저으며 머리를 마구 쥐 뜯었다가, 다시 한 번 손을 올려 보았다가, 벌떡 일어나 괜히 개를 만지며 괴롭혔다가, 염세주의자 흉내를 내며 창밖 어둑한 하늘을 한 점 밝히는 인공위성의 발광을 별빛으로 함부로 착각하고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며 우주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공상하다가, 어차피 이 세상 따위 인 황 철 규소 산소 탄소가 제멋대로 묶였다 풀렸다 그뿐아닌가 개소리를 뇌까리다가, '작가님 힘내세요' 뭣도 아닌 신인에게 아득한 응원을 전하는 누군가의 말을 문득 상기하며 정신차리라는 의미에서 제 뺨을 한 대 후려 갈기고는 다시 책상 앞에 자세를 고쳐 앉는다.
그러할 때, 모든 것에 관심없는 지구는 고요히 자전하며 심야를 더욱 깊은 심야로 이끌었고, 앞으로는 니가 해 처먹으라는 친근한 말과 함께 서소 씨의 엄마가 담가준 겉절이는 밤이 깊어가는 만큼 깊게 또 깊게 익어가며 스스로 맛있어 지고 있었다. 어떤 인스타그래머는 침을 됫바가지 흘리며 쿨쿨 냠냠 자고 있었고, 또 다른 인스타그래머는 오지 않는 잠을 회유하는 차원에서 이 글을 읽으며, 혹은 읽지 않으며 일단 좋아요를 눌러 본다.
또는 누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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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런 느낌입니다.
너무 좋은 소설을 읽으면 거기서 좋은 점을 쏙 뽑아 먹고 치워야 하는데 아, 나는 이런 굉장한 소설은 쓸 수 없을 거야 하는 마음이 자꾸 들면서 잠식당합니다. 그걸 이겨내고 또 아무렇게나 쓰다 보면 가끔씩 맘에 드는 글이 나오기도 하는데 거기까지 가는 게 쉽지 않은 거죠. ㅎㅎ
하여간 멋모르고 내키는 대로 써내 유치하면서도 날것의 맛이 물씬 나는 산문집이 슬금슬금 팔리고 있고, 장편과 중편과 단편 하나씩 써낸 것들이 연말 공모전을 기다리며 숨죽여 이를 갈고 있습니다. 여태까진 그저 쓰는 즐거움에 추동되어 재밌게 썼는데 요즘은 어우 갑자기 쓰기가 좀 두렵고 힘드네요. 연말까지 단편 세 개 정도 더 써내는 게 목표인데 아무튼 잘 이겨내고 써 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뭐가 되었든 제가 함부로 가늠하기 어려운 가열한 고난과 한창 싸우고 다투고 계실 터인데 부디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외면하지 않고 뭐라도 꾸준히 했다면 아마 대체로 승리일 것입니다. 일단 제 경험으로는 그랬습니다. 이 점만큼은 함부로 가늠코자 합니다.
글 쓰기가 무서울 땐 이렇게 일기라도 써보라고 손원평, 김영하, 김승옥, 김연수, 박형서 작가님께서 말씀하시어 그렇게 해 보는 중입니다.
참고로 저는 구병모 작가님을 가장 좋아합니다.
#회사원서소씨의일일 #소설 #도전 #challe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