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젊은 부부가 함께 시골로 이주한 ‘신화리 주택’ 공간 이야기
에디터. 박경섭 사진. 김주영, 최진보 자료. 에이라운드 건축 a round architects
집을 짓는 일은 어렵고 지난하다. 땅을 고르고, 기획과 설계의 단계를 거쳐 시공에 이르기까지 무엇하나 녹록하지 않다. 다 지었다고 해도 끝나지 않는다. 집에 사는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는지 틀이 잡히는 과정 역시 집을 짓는 일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집은 사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방향성을 깨치고 실행에 옮길 때 비로소 완성된다. 결국 집 짓는 일의 시작은 땅을 고르는 것도, 어떤 집을 지을지 형태를 궁리하는 것도 아닌, 어떤 이들이 살 것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분명한 것은 완벽한 집은 있을 수 없지만, 최선의 집은 가능하다는 점이다. 건축가에게 있어, 그 집에서 살아갈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혹은 살아야만 할지 최선의 방식을 찾는 일은 집의 규모, 예산, 대지 조건 등 여러 가지 요소와 제한 사항에 관한 고민만큼이나 큰 노력과 애정을 요하는 일이다.
문제는 두 집을 짓는 것은 하나의 집을 짓는 일과는 차원이 다른 세심한 숙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설령 동일한 건축 언어를 공유하는, 비슷한 모양새의 집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신화리 주택이 바로 그러한 경우다.
신화리 주택은 두 가족이 함께 살기로 하며 시작된 집이다. 대전에서 각각 아들 하나씩 키우던 부부는 오랜 친구로 비슷한 시기에 결혼과 육아를 하며 더욱 돈독해진 사이였다. 심지어 사는 곳마저 같은 아파트 단지였던 터라, 부부끼리도 아이들끼리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해졌다. 동갑내기인 두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에 대해 고민하던 두 부부는, 아이들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같다는 것을 확인하고 함께 집을 짓기로 했다.
양평에 대지를 구입하고, 집 지을 건축가를 찾는 과정에서 이들은 에이라운드건축과 만나게 되었다. 건축가에게 두 부부는 같은 땅 위에 지어질 두 집이 닮아 있기를 요구했다. 신화리 주택의 굽은집과 갈래집이 동일한 건축 언어를 공유하되, 두 가족의 각기 다른 삶을 품어낼 수 있는 곳으로 탄생한 데에는 함께 사는 일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며 두 부부가 공유하게 된 명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개인의 것을 잘 지킬 수 있어야 타인과 관계도 더 잘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두 부부는 같이 사는 일에 있어 무조건 함께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건축가는 아이들이 자유로운 정신의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집, 두 가족이 각자의 프라이버시와 서로 간의 교감을 모두 향유할 수 있는 집, 거주자의 선택 폭을 넓게 보장하는 집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면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형태와 성격의 집을 만들어 냈다.
독특한 매스와 건축 언어를 넘어, 자신을 개인주의자라고 말하는 두 부부가 신화리 주택에서 어떻게 주변과 일상을 나누며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집을 짓는 일, 같이 사는 일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굽은집과 갈래집, 그리고 에이라운드건축을 찾았다.
신화리 주택은 굽고 갈라진 두 개의 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굽은집과 갈래집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집 같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닮은 듯 다른 두 집의 차이점이 각자 매력을 드러낸다. 좁다면 좁고 넓다면 넓은 땅 위에서 한데 어우러져 균형을 이루고 있는 신화리 주택. 굽어지고 갈라지고 비우고 모음으로써 완성된 이 집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신화리 주택이 자리한 대지는 사면의 모양이 제각각이다. 필지 서쪽의 생김새는 직각이지만, 북쪽과 동쪽은 완만한 곡선의 형태를 띠고 있다. 독특하게도 대지 남쪽은 꼬리처럼 길게 뻗어 있는데, 이처럼 모나면서도 둥근 형태가 고스란히 집의 형태로 옮겨졌다. 곡선 형태의 대지 북쪽에는 굽어진 모양새의 굽은집이, 땅이 꼬리처럼 뻗어 나온 남쪽에는 삼발이 형태의 갈래집이 들어섰다.
같은 크기의 집이라고 할지라도 상이한 모양새는 전혀 다른 생활 패턴으로 이어진다. 내부 공간을 모으는 코어가 없는 굽은집이 보다 유연한 공간감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의 코어를 중심으로 세 갈래로 뻗은 갈래집은 그보다는 익숙한 공간감을 담고 있다. 대지와 대지 사이 관계성이 신화리 주택이 위치한 대지의 독특한 모양을 결정지었고, 그것이 대지와 집의 관계로, 집과 거주자의 관계로 이어지게 된 셈이다.
조경은 건축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지만, 중요성이 자주 간과되고는 한다. 시공 비용을 상승시키는 비효율적 법 규제라는 시각에서 조경은 부차적 요소로 취급된다. 설령 법 기준에 맞춰 조경 영역을 조성하더라도, 평당 얼마라는 기계적 산출을 바탕으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와 같은 조경을 둘러싼 오해와 단정은 건축과 자연 간의 관계, 공간과 사람 간의 관계에 관한 고민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환경미화가 아니라 환경으로서 건축이라는 관점에서 조경을 논의해야만, 조경과 건축 본연의 기능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은 인공 공간을 만드는 일인 동시에, 자연과 인공 사이의 접점을 만들어 가는 일이기도 하다. 접점이 많으면 많을수록 건축의 지속가능성은 커지고, 인공 공간은 그 자체가 새로운 환경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조경은 건축과 분리되거나 하위에 위치한 작업이 아니라, 건축의 연장선상에 있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조경을 통해 건축과 자연은 분리와 단절이 아닌 연결과 통합의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신화리 주택의 조경 영역은 명확히 맺고 끊기지 않는다. 끊길 듯 끊기지 않으며 굽은집과 갈래집을 살포시 품고 있다. 직선으로 이뤄진 집을 곡선으로 구성된 조경이 감싸 안음으로써, 전체적인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동시에 조경은 주택 주위를 둘러싼 논과 밭, 산과 들과 같은 자연의 영역과 집의 영역을 유연하게 연결한다. 이는 굽은집과 갈래집 사이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중앙 마당을 공유하고 있는 두 집은 조경 영역을 통해 이어지고 동선을 공유하며, 각자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신화리 주택에서 조경은 바깥과 안, 집과 집의 공간이 서로 우회하여 만나도록 하였다. 굽어진 공간 안에서 개별 영역은 다층적인 하나가 된다.
건축가는 거주자들이 촉각과 시각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고민했다. 굽은집과 갈래집의 현관문 손잡이는 절반씩 절반씩 가죽을 덧대었다. 기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가죽을 다듬고 꿰매어 만들었다. 설계 기간 굽은집과 갈래집을 윗집과 아랫집으로 불렀는데, 굽은집과 갈래집 현관문 손잡이 각각 윗부분과 아랫부분에 가족을 덧대어 마감했다. 가죽은 손길에 닳기 마련이고, 누군가의 방문은 가죽 손잡이에 남은 자국을 통해 기억된다. 손과 손으로 전해지는 추억은 시간의 흐름을 기억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굽은집과 갈래집의 내부 공간은 마 소재 텍스쳐로 덧씌어 졌다. 패브릭을 다루는 거주자들의 업(業)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이다. 그들은 마로 된 벽에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할 것이고, 손으로 가만히 쓸어내리며 홀로 시간을 보내기도 할 것이다. 집 바깥에서 흙을 만지며 논 아이들이 먼지와 흙을 묻힐지도 모를 일이다. 햇볕을 많이 받는 곳은 조금 더 바래질 것이고, 사는 이들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은 처음 집의 모습을 간직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모여 세월은 무심히 흩어지지 아니하고, 고스란히 벽에 남아 가족의 모습을 닮아갈 것이다. 시간과 함께 변해갈 거주자들의 삶처럼 집 역시 매일 달라져 갈 것이라는 사실은 이 집이 어떤 공간을 지향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대개 집을 짓는 일은 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선택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대지 위에 구획을 나눈 다음, 어디를 연결하고 막을지 결정하면서 집은 꼴을 갖춰간다.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신화리 주택은 이런 일반적 개념에 관한 의심을 바탕으로 내부 공간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굽은집과 갈래집은 링크 스페이스link space를 중심으로 공간이 결합해 있다. 굽은집은 집 내부 양 끝, 갈래집은 세 방향의 끝에 명확한 목적이 있는 공간을 배치하되 중앙은 특별한 쓰임새를 정해두지 않은 가변적인 공간인 링크 스페이스로 두었다.
링크 스페이스는 가구를 벽으로 몰아 붙박이장으로 만든 뒤, 가구의 문이자 집의 벽인 판이 움직이도록 설계하였다, 움직이는 판을 통해 링크 스페이스는 다양한 모양과 쓰임을 가진 공간으로 기능한다. 판을 통해 양 끝 공간과 링크 스페이스가 완전히 분리되면 별도의 공간이 탄생하며, 판이 모두 열린다면 집 전체가 하나의 공간이 된다. 별도의 기능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고안한 것이다. 링크 스페이스는 집의 변화에 조응하고, 뒷받침 함으로써 집이 가진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이 자람에 따라 링크 스페이스는 새로운 방으로 쓰일 수도, 가족 전체의 공간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가족들이 겪게 될 변화를 링크 스페이스는 예비하고 있다.
굽은집과 갈래집은 약 서른 평 정도 되는 아담한 규모의 집이지만, 집 안팎으로 숨은 공간을 짜임새 있게 집어 넣었다. 굽은집과 갈래집의 2층은 각각 휴식과 작업의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복층 구조를 통해 집 전체의 층고를 높이는 동시에, 공간의 활용성을 한층 높혔다. 굽은집의 2층은 화이트 톤의 1층과는 달리 나뭇결과 색을 그대로 살려 인테리어를 진행하였다. 러그와 1인용 의자, 책을 배치해 휴식과 환기의 공간으로 삼았다. 이와 같은 공간의 전환은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조성된 내부 중정이 뒷받침한다. 2층 계단 옆 중정에 심어진 두 그루의 나무 위로는 천창이 뚫려 있어 바깥의 빛과 바람, 비와 눈이 중정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온다. 중정의 풍경과 함께 2층에 올라가게 됨으로써 거주자는 같은 집 안에서도 새로운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갈래집의 2층은 작업실로, 아동복 브랜드를 운영 중인 아내를 위한 공간이다. 갈래집의 2층 작업실 역시 1층과는 다른 톤으로 꾸몄다. 바닥과 벽 마감 소재를 1층과는 상이한 것을 사용함으로써, 제품 촬영 장소로서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게끔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처음 세 개를 별도의 나무 계단으로 제작하였다. 덕분에 1층과의 단절을 통한 몰입이 필요한 상황에는 계단을 치움으로써 자연스레 공간적 분리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신화리 주택은 지붕과 집 외벽 공간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곡선의 조경 영역과 조응하는 모양새의 두 집 지붕에는 볕 좋은 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선베드가 자리하고 있다. 외부의 시선에서 다소 자유로운 공간이기에 누군가의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도 외부 환경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두 부부에게는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중한 곳이다. 갈래집의 경우 사선으로 설계된 침실 벽 너머에 스토브와 간이 의자를 배치했다. 자전거나 공구를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동시에, 밤에는 온기와 함께 바깥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이처럼 신화리 주택은 다양한 공간 활용을 고민함으로써, 일곱 명의 거주자들이 저마다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러 방식을 가능케 하였다. 숨은 공간은 함께 있되 독립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신화리 주택은 두 가족이 사는 곳이다. 이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함께 공간을 점유하고 시간을 보내고 일상을 나눈다는 점에서 식구라고도 할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이웃으로서 두 부부와 세 아이는 신화리 주택에서 함께 살고 있다. 굽은집과 갈래집의 공유하는 중앙 마당은 이와 같은 삶의 방식이 가능하도록 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두 집의 시선이 교차하는 곳이자, 아이들에게는 작은 놀이터이다. 만남과 놀이는 두 가족을 한 식구로 묶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구태여 연락을 하지 않아도, 집 안과 밖에서 두 가족은 마당 너머 서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상기하게 된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건너편에 켜진 불을 보며, 함께 저녁을 먹지 않겠냐고 전화를 하게 되는 식으로 말이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사람은 집의 모양새와 쓰임새대로만 살지 않지만, 모양새와 쓰임새에 큰 영향을 받는다. 두 가족이 함께 살되, 각자 잘 지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 신화리 주택. 일곱 명의 거주자들은 오늘도 저마다 편안한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책 자세히 보기 https://brique.co/book/vol-4/
<브리크 brique> 더 많은 사진과 원문 보러가기 : https://bit.ly/3jT8H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