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다정하고도 단단한 그들이 문을 열고 들어간 세계에서,

by 들레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png



종이접기,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내렸다. 세연, 모모, 소라는 함께 도서실 안을 지키며 틈틈이 종이접기 책을 보며 다양한 것을 접는다. 그래서 상상해 보았다. 세 명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종이를 접는 모양새를. 그 모습이 햇살 같기도 했고 바람 같기도 했으며 파도 같기도 했다. 그들이 무수하게 접어 나갈 세상이, 그리고 뻗어나갈 세상이 궁금했다. 그들은 대체 어느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을지 말이다.


도서부와 종이접기, 비슷한 듯 매우 다른 두 가지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 그리고 현대와 일제강점기를 오가는 시간 워프 설정까지. 흥미로운 것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낸다. 비 내리는 창밖에 나타난 정체 모를 아이와 복도에서 마주친 종이학 귀신. 그리고 길을 알려주는 초록 판다까지.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세연이 종이학 귀신을 만남 시점부터.

종이학 귀신에 대하여 파헤쳐 나가기 시작한다. 학교는 유래가 깊고 괴담이 무성한 곳이었다. 괴담은 알아내면 알아낼수록 미궁 속에 빠지기 마련이고, 그 미궁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우연히 세연보다 전에 종이학 귀신을 본 학교 선배가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3학년 강민혜 선배는 세연에게 지문 샘에게 물어보라는 조언을 던져준 채 홀연히 괴담에서 빠진다. 지문샘, 강민혜 선배, 그리고 괴담을 좋아하는 다른 학교 선배 장휘, 우연히 블로그를 통해 발견한 괴담에 대해 아는 즐거운 연꽃 님까지.

세연은 즐거운 연꽃 님과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이상한 일들이 따라올 것 같다며, 그래서 비밀에 대하여 찾고 있다고 말이다. 종이학 귀신을 조사하기 위해 도서실 지하 자료를 찾던 중 소라가 사라지게 된다. 세연과 모모는 캐비닛 뒤에 숨겨진 틈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소라를 찾으러 들어가게 된다. 그곳은 과거였다. 과거에서 삼정, 길순, 수이를 만나게 된다. 그들도 도서부였으며 거울회 단원이었다. 거울회는 일제강점기 때 학교 비밀 결사의 이름이다.

그리고 세연인 그곳에서 교실은 불타고 있었고, 아이들은 불길 속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다 정신을 잃고 현재로 돌아오게 됐다. 돌아온 후 자료를 뒤져가며 찾은 한 가지. “1937년 중일 전재 이후 일제의 황민화 정책이 강화되면서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압박도 극심해졌다. 풍영 중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일제의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시위를 하는 등 저항의 뜻을 굽히지 않다가 1937년 자진 폐교를 결정하고, 이후 다시 학교 문을 열 때까지 십여 년의 암흑기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의 폐교를 패배라고 볼 수는 없다. 자진 폐교 결정은 일제의 황민화 정책에 따르지 않겠다는 저항 운동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지문 샘에게 들은 또 다른 사실 하나. 윤경희 선생님은 지문 샘의 할머니셨다. 윤경희 선생님은 그들이 과거에서 만난 풍영 중학교의 선생님이셨고 그들이 정의한 종이학 귀신이었다.


1937년, 그 시대에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전쟁 때 군인으로 징병되었던 분, 전쟁에 필요한 군수품을 만드는 공장이나 광산 같은 곳으로 갔던 분들. 아주 많은 사람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험한 곳으로 가서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중에는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단원들과 또래였던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기다리기 위한 곳이 있었다. 바로 사당이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기다리기 위한 장소.


과거로 가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1. 백 년이 넘은 학교의 도서부원이 된다.

2. 도서실에 숨어 있는 과거로 가는 문을 찾는다.

3. 문으로 들어간다.


다시 돌아간 그 시절, 세연은 불이 난 게 아니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다. 내일 이 학교에서는 아무도 신사 참배를 하러 가지 않을 것이란 것도, 학교는 내일부터 휴교 상태에 들어가고, 8년 뒤에 일본 정부는 전쟁에서 지고 우리나라에서 물러간다. 그리고 5년 뒤에 우리나라 안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그로부터 3년 뒤 휴전. 거기서 2년이 흐른 뒤 학교는 다시 문을 열게 된다는 사실까지도.

세연은 수이와 함께 사당으로 향한다. 그리고 수이는 종이학을 이름이 적힌 나무패들 가운데에 있는 놋쇠 향로에 놓더니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세연은 종이학을 태운 것을 보며 자연스럽게 종이학 귀신, 윤경희 선생님을 떠오르게 된다. 종이학을 접을 때마다 한 명씩 떠올리면서 무사히 돌아오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비는 거라고 했다. 종이학을 태우면 날아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한테 말을 대신 전해줄 것만 같다고.

수이는 곧 떠난다는 비밀을 세연에게 털어놓았다. 배 타고 멀리. 어디 공장으로. 그리고 세연은 기다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그들은 다시금 만나게 되었다. 사당에서.


나는 글을 읽으며 어느 대목에선 웃음을 짓기도 했고 어느 대목에선 가슴이 찡- 하기도 했다. 당당하고 당찬 학생들이 하나씩 풀어나가는 괴담이 마냥 괴담으로만 치부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그들이 안쓰러우면서도 대단했다. 그들이 접는 종이들은, 그 마음들은 곧 과거로 이어졌다. 물론 그들이 과거에 불시착하여 역사를 바꾸지는 못했다. 역사가 역사인 데에는 곧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나 현재까지 떠도는 종이학 귀신, 윤경희 선생님의 오랜 기다림은 풀어주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길고 긴 모험이 세연, 모모, 소라에게도 무언가 하나쯤은 마음속에 남았을 거라는 것도. 무모한 일도 용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학생이라는 나이도 있을 거다. 그 나이대에만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 지레 겁을 먹는다. 너무 많은 것을 알아서, 깨달아서, 정의해서, 그 외에 이유는 많다. 그러나 청소년이란 나이는 때론 대단하고 멋지기도 하다. 청소년은 이렇다고 정의할 순 없지만,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독자로서 아주 큰 행복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성장을 멀리서나마 지켜본다는 사실 하나로도 어른인 내가 받는 무수한 깨달음이 있기에.

오래도록 소망한다. 행복하기를, 그리고 무너지지 말기를. 별거 아닌 소망이 그들에게 닿아 조금이라도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나도 오늘 밤에는 종이학을 접어야겠다. 그리고 그리운 이를 생각해야겠다.






인간의 시야각은 성가실 정도로 넓다 처음에는 들판의 맹수나 공룡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진화한 것이겠지. 현대에는 달리는 자동차나 자전거를 피할 때 쓸모 있기도 하고.
p.44


나는 종교는 없지만 신은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어차피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 가능성을 남겨두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없다고 생각하고 살다가 신에게 밉보이면 곤란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절박한 순간에만 신을 찾는 게 얄미운 짓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지극히 인간적인 발상인지 모르겠다.
p.62


"어쩌면 사람도 이 그림자 같은 게 아닐까?"
"그게 무슨 말이야?"
"신이 심심해서 우리가 종이접기를 하는 것처럼 별 생각 없이 뭔가를 만들었는데, 이렇게 그림자가 생긴 거야. 그런데 그림자가 살아서 움직이더니 신이 있는 곳을 떠나서 지상으로 내려온 거지."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움직이고 말하고 별의별 걸 다하면서 살다가도 어느 순간이 되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잖아.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도 그렇고."
모모가 내 말을 거드는데, 소라가 반론을 제기했다.
"그럼 미라는? 인간이나 동물이 죽으면 몸이 분해되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거잖아. 잘 보존하면 미라가 되는 거고. 만약 인간이나 동물 같은 생명체가 그림자라면 죽었을 때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몸이 썩는 게 아니라."
p.62-63


"제가 이상한 일들을 좇는 게 아니라, 무언가가 저를 자꾸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이상한 일들이 저를 따라올 것 같아요. 부끄럽지만 저는 그래서 비밀을 찾고 있어요. 그러면 이상한 일들도 멈출 것 같아서요."
p. 104


소라의 말을 들으니 정말로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다른 사람이 나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이.
문득 도서실의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일심상조불언중. 한마음으로 말이 없는 가운데 서로 비추고 있다. 액자 속의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처음으로 와닿았다. 한 마음으로 말이 없는 가운데 서로 비추어 주는 사이. 친구란 그런 관계를 뜻하는 게 아닐까.
"그래도 같이 가면 안 돼? 우린 한 팀이잖아.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무모한 일이든 용감한 일이든 셋이서 다 같이 하자."
p.189



.

.

.

.

.





추신. 세연에게는 아주 특별한 능력 같은 것이 부여되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정말 좋았고 그의 특별함에 반하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은 후에 저와 같이 놀라보시는 건 어떨지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고의 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