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나서
1년의 희비를 결정하는(?) 담임반 뽑기를 하고, 내가 맡은 학급 명단을 눈으로 읊던 선생님들의 안쓰러운 눈빛을 잊지 못한다. 모든 선생님들이 힘들어하는 아이의 담임이 되었다. 말 그대로 골치 아픈 아이이다.
예의가 없다, 성격이 좋지 않다, 보호자가 비협조적이다 등과 같은 단순한 원인을 떠나서 선천적으로 발현된 정신적 어려움과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 그리고 가족 구성원이 정서적으로 모두 아파서 말 그대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아이의 담임을 맡았다. 아니, 담임교사 선에서 손을 본다고(?) 나아질 수 있는지도 판단이 어렵다.
아무래도 이 아이를 맡은 담임선생님들은 모두 나와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아이와 상담을 해보면 담임선생님들이 고군분투한 약 8년 간의 교육적 처치의 흔적이 아이의 생각과 행동에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선생님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의 선천적인 공격성과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으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안쓰러웠다. 잘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는데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어 항상 손해를 보고 따돌림의 표적이 되어 학창 시절을 보낸 아이가 안타까웠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을뿐더러 매년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어야 하는 보호자에게 강한 연민을 느꼈다.
'골치 아픈 아이의 부모'로 살아야 하는 보호자의 마음은 어떨지, 어릴 적부터 정신과 진단을 받고 약을 먹으며 상담을 다녀야 한다는 말을 듣는 보호자의 삶은 어떠할지를 생각하면 갑갑했다. 그래서 어쨌든 이 아이의 새로운 담임이 되었으니 지레 겁먹지 말고 아이의 긍정적인 면을 보면서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달이 지난 지금은 마음이 착잡하다. 이 아이의 공격성은 교사이자 불완전한 인간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몰라 불안해하는 같은 반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담임교사로서 최선일까를 매일매일 고민해야 했다.
다른 선생님들도 작년에 이 아이에게 지독하게 데인 듯하다. 부장님들은 나에게 그 아이를 "바꾸려고 하지 말라"라고 하셨다. 아이의 공격성으로부터 다른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논의를 시도하였지만 헛수고였다. 대부분의 구성원이 사안이 생길 때의 행정적 처리에만 최선을 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심한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끼고 지금은 진지하게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선천적인 특성으로 인한 것이든, 가정환경이 원인이든, 학창 시절 8년을 이 동네 트러블 메이커이자 학교폭력 가해자 및 피해자로 살아온 아이는 자신이 받은 상처만 기억하고, 자신이 타인에게 준 상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다. 자기 중심성과 공격적인 성향이 이 질환의 특징이라고 이해하려 해도 담임으로서 화가 날 때가 있다.
문제는 보호자도 똑같다는 점이다. 보호자는 매일 담임교사에게 "우리 아이는 건드리지만 않으면 얌전하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사회생활이라는 것 자체가 수많은 사람들을 건드리고, 건드림을 당하는 환경에서 자신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아닌가? 아이를 위해서라도 보호자는 생각을 바꾸어야 하지만, 불가능해 보인다.
아이의 선천적인 특성, 설득이 불가능한 보호자, 아이에게 지친 학교 구성원, 이 친구의 눈치를 보며 학습권을 뺏기는 다른 아이들을 생각하며 내린 결론은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였다. 아이에 대한 마음을 비우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문서만 잘 남겨두자는 다짐을 했다. 교직생활을 계속 이어나가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이런 착잡한 다짐을 하고 주말에 노트 정리를 하다가 예전에 적어놓은 글귀를 보았다.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남긴 메모였다.
"의학과 교육학은 인문학적인 측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환자의 병세가 어떠하든, 학생의 심리 상태 또는 학업 성취도가 어떻든, 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의 삶을 정형화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 분류한다면, 사람을 위한 의료, 교육이 아닌 '일처리'가 된다.
글쓴이가 투병 생활 속에서도 죽어가는 환자의 마음을 이해한 것처럼 교사 역시 아이들과 보호자의 마음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수업 방법 및 수업 환경의 혁신이 얼만 놀랍게 이루어지든 간에,
진정한 교육의 시작은 '내가 맡은 학생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서 시작된다는 점도.
언제 쓴 건지 기억도 안나는 구석에 적힌 메모에 이끌려 '다시 그 아이를 이해해보자'는 마음을 가지고 출근 준비를 한다. 이게 정말 나를 위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벌써 내일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