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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전 Apr 03. 2024

혜화역

​​언제부턴가 혜화역에 병기역명이 붙었다. 이제는 혜화역이 아닌 혜화(서울대학교병원)역이다. 반가웠다. 내가 매년 혜화역을 방문했던 이유는 괄호 밖이 아닌 괄호 안에 있다. 한때는 야외에서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빛에 약한 눈 때문에, 언제 실명해도 이상하지 않았던 눈 때문에, 어려서부터 김해와 서울을 오가며 병원을 다녔다​.


큰 병원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의 표정은 외려 수심이 얕아 보인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손을 잡고 말없이 걷던 엄마의 표정과 똑같았다. 그리고 혼자서 서울을 돌아다닐 줄 알게 되었을 땐 엄마의 표정을 고스란히 가지고 병원을 오갔다. 매년 다른 행인들과 매년 같은 표정으로, 의연하고 조용히 같은 방향을 걸었다.


상경 후 친구들을 따라 처음으로 대학로에 갔다. 그때 대학로가 혜화역에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서울에서 가장 젊은 에너지가 넘치는 곳 중 하나인 대학로가 혜화역에 있었는데, 매년 방문했던 그곳에서 젊은 에너지를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이도행 지하철을 타고 혜화에서 내려 교통카드를 찍으면, 왼쪽을 향하는 사람들과 오른쪽을 향하는 사람들이 나뉜다. 오른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젊고 에너지가 넘친다. 왼쪽으로 가는 사람들은 '내 부류'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아니면 병원으로 갈 것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간 향하던 곳의 반대편에는 이렇게나 다른 세상이 있었다. 여기만 와 본 사람들은 혜화에 서울대병원이 있는 건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왼쪽과 오른쪽이 너무 다른 세상이었다. 빛을 잘 못 보는 나에게 대학로는 너무 밝은 햇빛 같았다. 이질감이 든다. 분수에 맞지 않게 너무 밝은 세상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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