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을 다녀온 아들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시커먼 옷을 입은 채 '나 건들지 마라.'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춘기 중1아들.
거무튀튀한 큰아들 얼굴 코밑이 거뭇거뭇하다.
자세히 보니 검은색 잔디들이 살을 뚫고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아들, 너 수염 나나 보다."
라고 말하니 큰아들은 원숭이처럼 코 밑을
길게 하고서 나한테 얼굴을 쑥 내민다.
"맞네!!, 수염 나네!!"
하얀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그 자리가
이제는 연탄재를 뿌린 잔디밭으로 변해 가고 있다.
나도 그때쯤 까만 잔디들이 올라왔던 것 같다.
힘없이 흐물대는 잔디들을 자주 깎으면
빳빳한 잔디로 된다는 말에
아빠 수동 면도기로 긁어내고는 했다.
면도날 사이를 픽픽 쓰러지면서 피하는
잔디들을 열심히 밀었다.
아빠 수염 나면 빨리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런 잔디들이 다시 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코밑이 거뭇거뭇해져도,
배고프다고 밤에 소시지 구워달라고 하고
똑같은 파란색 잠옷을 입고 둘째를 쿡쿡 찌르며
함께 노래를 들으며 고개를 흔드는 큰아들
오늘따라 스머프처럼 보이는데,
아들의 머리끝은 내 눈까지 올라왔다.
몇 년 후면 올려다보느라 목이 아플 듯하다.
그런 아픔은 기쁨과 같은 뜻이겠지.
내 코밑에는 눈 내린 하얀 잔디가
듬성듬성 머리를 내밀고 나오기 시작했고,
아들 코밑에는 검은색 잔디가 올라오고 있다.
아들에게 면도기를 사줘야 할 때가 오겠지만,
가능하면 아주 아주 늦게 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