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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다 Dec 02. 2022

내 아이가 손목을 그었다 6

일상을 지켜야 해

아이는 내 손을 꼭 잡고 돌아오면서 병원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거나 ADHD는 예상 못해서 놀랐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소곤거렸다.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것 같았다.


아이는 약을 거부감 없이 복용했다.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특별한 부작용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여전히 피곤하다고 했고 학교를 다녀오면 지쳐서 한낮부터 잠을 잤지만 더 이상 문을 걸어 잠그고 방 안에 틀어박히지는 않았다. 깨우면 일어나서 저녁을 먹고 다시 잤다.

좋은 것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아이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씻고, 학교에 가고, 제시간에 하교하고, 저녁도 먹고 있다. 핸드폰도 다시 시작했다. 긍정적인 신호들이었다.

사실 나는 조현병일까 봐 겁먹고 있었다. 조현병은 대부분 남자는 20대 초반, 여자는 20대 후반에 발병하지만 청소년기라고 발병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형적이지 않은 시기에 발병하는 경우 우울증 같은 증상으로 표현되기 시작할 수도 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추측은 할 수 있지만 판별할 수는 없다. 나의 어설픈 지식은 우울증과 만나 최악 중의 최악을 예상하면서 스스로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조현병은 일상생활이 무너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씻지 않고, 먹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을 가지고 일상생활을 한다. 조현증이 아니라 우울증이나 조울증, 공항 등 다른 정신과적 질환이라도 중증으로 가게 되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들어진다. 그러니 내 아이가 먹고 마시고 움직이는 일상적인 것들을 해내고 있는 건 중요한 신호들이다.


주말이 되면 아이를 붙잡고 산책을 갔다. 장을 보러 가자거나 카페 구경을 가자거나 하는 핑계를 댔지만 아이에게 산책을 시키는 게 목적이라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아이는 꼼짝도 하기 싫다고 짜증을 내다가도 엄마가 애원하면 마지못해 따라나서곤 했다.

사람이 몸이나 마음이 아프면 꼭 해야 하는 게 세 가지 있어. 제 때 자고 일어나기, 제 때 먹기, 하루 20분 햇볕 아래서 걷기. 이게 안되면 건강하던 사람도 아프게 돼. 엄마도 아파서 치료받을 때 꼭 하루에 한 번씩 산책 갔었잖아. 억지로라도 밥 먹었고. 중요한 거야, 기억해.

아이는 버틸만한 날에는 제법 30분 넘게 걷기도 했고, 어떤 날은 집 앞에 나서자마자 짜증을 내면서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일상을 지켜야 해. 네 사춘기는 언젠가는 끝이 나. 지금 죽을 것 같고 아무것도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끝이 나. 모든 사춘기는 다 지나가. 끝나고 나면 돌아갈 곳이 있어야 해. 집에서는 괜찮아. 하지만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무작정 모든 연락을 다 씹거나 갑자기 폭발해 버리면 안 돼. 그럼 니가 모든 힘든 시기가 다 지나갔을 때 관계를 회복할 수가 없어져. 중요한 일상들은 힘들어도 지켜내야 해. 돌아갈 곳이 있어야 하거든.


아이는 납득했다. 그러나 우울한 무드는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는다. 아이는 사람이 많은 곳에 있는 것만 해도 지치고 진이 빠져했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에게 자기가 제대로 대꾸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평소에 활기찬 아이라서 더더욱 자신의 무기력함을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노력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는 엎드려 자거나, 그래도 힘들면 보건실로 숨기도 했다. 하교시간까지 학교에 있고 친구들이 보내는 SNS 메시지 들에 답을 하려고 애썼다. 내 아이는 버텨내는 중이었다.


남편도 버텨내는 중이었다. 남편에게는 아내의 암도 딸의 자해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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