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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May 14. 2021

악몽을 꿀만큼 커버린 너


처음엔 그냥 별일 아닌 줄 알았다. 아기가 자다 깨서 우는 건 흔한 일이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르다. 우선 시작이 잠꼬대라는 점부터 그렇다.      


아이는 요즘 부쩍 잠꼬대가 늘었다. 자다가 불쑥 “하늘이가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가 하면, “아니야, 하늘이 거야...” 하고 울먹이기도 한다. 가끔 남편이랑 둘이 세트로 퐁당퐁당 돌 던지듯 주고받으며 잠꼬대를 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참 혼자 보기 아깝다.     

 

그러니까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아이가 곤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침대 발치에 앉아 가만가만 그날의 피로를 스트레칭으로 풀고 자리로 돌아와 누웠는데, 갑자기 아이가 벌떡 일어나 앉아서 중얼거렸다. “여기 뭐가 너무 많이 있어...”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처음엔 아이의 눈이 잠에 취해있는 듯 텅 비어있었는데, 나를 확인한 순간 눈에 공포가 서리더니 냅다 내게로 달려왔다. 그러곤 내 배를 가리키더니 “엄마 배 속에 뭐가 있어?” 하고 물었다. 나는 살짝 당황해서 “으음...오징어랑 감자랑...커...커피 있는데?” 하고 아무 말로 얼버무렸다. 그랬더니 아이가 마구 울면서 “엄마 배 속에 뭐가 너무 많아!” 하고 소리쳤다. 순간 ‘두...둘째가 보이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가 ‘그럴 리가 없지...’하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아이의 감정은 더욱 격해져서 “여기 뭐가 너무 많아서 그랬어. 엄마가 닦아줘!!!” 하고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몸짓은 마치 바닥에 뭔가가 가득 있어서 발을 디딜 수 없는 사람처럼 내 품에 안겨서도 발을 높이 들어 올리느라 작고 작은 발가락 끝까지 힘이 다 들어가 있었다.      


그 상태로 한참이나 무슨 짓을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우는 내내 눈을 꼭 감고 뜨지 않았다. 나는 당황한 와중에도 그럴 땐 차라리 베란다에 데리고 가서 찬 바람을 쐬어서라도 잠을 깨우라고, 그렇게 한 번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라고 했던 친구의 말을 기억해냈다. 바로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갔다. “하늘아, 꿈이야. 일어나. 눈 떠. 엄마 여기 있어. 괜찮아.” 하고 계속 말해주면서 손발을 주물렀더니 다행히 아이는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 뒤로 다시 자는 건 극심히 거부해서 (계속 침대에 뭐가 있다고 했다.) 그날 밤을 꼬박 새우고 해 뜨는 걸 보고서야 둘 다 기절하듯 쓰러져 잤다.      


아이는 그 뒤로도 사흘이 넘도록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며 밤에 안 자고 울었다. 남편이 계속 침대 닦는 시늉을 하며 “아빠가 닦았으니까 이제 됐다! 없다!” 하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배 위에 아이를 올리고 “엄마 배 위에 올라오면 바닥에 안 닿지. 엄마가 지켜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엄마 위에서 자.” 하니까 그제야 잠을 잤다.      


며칠을 그렇게 배 위에 아이를 엎어 재우다 보니 허리가 무척 아팠다. 아이는 잠결에도 내가 자세를 고치려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깨서 울었다. 고문이 따로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데 아이가 너무 그러니까 ‘혹시 귀신 같은 게 보이나. 아니면 시력에 문제가 생긴 건가. 내가 물티슈로 바닥을 너무 닦아서 결벽증이 생긴 건가. 이게 야경증인가.’ 별생각을 다 했다. 결국 닷새째 되는 날 그로잉맘 육아상담권을 결제했다. 그리고 언제든 아이가 잠들면 심각하게 상담을 좀 해야겠다 다짐했는데 딱 그날부터 아이가 아주 평화롭게 잠들었다. 여전히 “여기 뭐가 많아서 하늘이가 그랬었는데, 아빠가 닦아줘서 이제 없지. 엄마 배에서 자면 엄마가 지켜주지.”하고 말하면서 배 위로 올라오긴 했지만... 어쨌든 아침까지 안 깨고 자긴 잤다.      


덕분에 나도 거의 일주일 만에 푹 잘 자고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책을 펼쳤다. 60년간 2,800명의 아이들을 돌본 92세 보육교사 오카와 시게코의 <아이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이미 한 번 읽었지만, 좋은 책은 여러 번 읽으면 더 좋기도 하고... 그간의 일로 헝클어진 마음을 좀 다잡고 싶기도 해서 다시 찬찬히 읽어나갔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역시 이번에도 나는 책에서 답을 찾았다. 그녀는 아이의 문제 행동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하는 부모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이의 ‘문제 행동’은 성장의 궤적입니다. 치아가 없는 갓난아기는 사람을 깨물 수 없습니다. 안정적으로 걷지 못하면 손으로 때릴 수도 없습니다. 말을 잘 못하는 아이는 거짓말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예상과 다른 행동을 보이며 문제 행동을 하면 우선은 ‘아, 이런 행동을 할 만큼 컸구나’ 받아들입니다. ‘죽을 만큼 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다’ ‘괜찮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아이를 대해야 합니다.  

엄마, 아빠도 아이의 ‘문제 행동’에 직면하면 일단 ‘괜찮다’고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떤 행동을 할까’ 생각해봅니다. 성장 과정이니 긍정적인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는 자세가 늘 필요합니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아, 우리 아이가 악몽을 꿀만큼 컸구나. 그 꿈을 며칠이 지나도 생생히 기억할 만큼 자랐구나. 아무리 본인이 무서운 상황이어도 엄마에게 오면 괜찮다고 안심할 만큼 나와의 애착이 안정적이구나. 어머나, 생각해 보니 온통 긍정적인 것뿐이잖아? 하하하! 육아는 하면 할수록 정신 승리가 답인 것 같다. 하하하!     


앞으로 어쩌면 아이가 악몽을 꿀 때마다 그 여파가 좀 오래갈 수 있겠다. 조금 더 크면 일어나서 돌아다니거나 더 큰 행동을 할 수도 있겠다. 그때마다 너무 놀라지 말고 이번 일을 다시 떠올리며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도록 노력해야겠다. 아이가 돌발 행동을 하면 당황하지 않고 큰 소리로 외쳐야지. 


‘와! 우리 아이가 이번엔 또 어떤 성장을 하려고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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