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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May 14. 2021

식탁에 화병을 두었다

   

봄이다. 우리 동네 학생들이 교복 치마에 맨 다리로 다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겨우내 피부처럼 입고 다니던 후리스를 벗었다. 봄이구나. 겨울이 갔구나. 나는 잠시 멍해졌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거의 네온 핑크에 가까운 철쭉이 천지에 피어있다. 지난밤의 졸음이 남아 흐릿한 시야가 쨍ㅡ 하고 깨어나는 기분이다. ‘아, 꽃은 참 예쁘구나.’ 새삼스레 감탄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우리 집에는 식물이 제법 있었다. 뱅갈 고무나무부터 이레카 야자, 몬스테라와 보스턴 고사리, 아몬드 페페와 이오난사 등등... 모두들 무럭무럭 잘 자라주어서 때마다 분갈이하는 게 내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출산과 동시에 일상이 재개편되면서 하나씩 하나씩 말라죽었다. 내가 말라죽게 생긴 상황에서 식물을 챙길 겨를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은 했지만 사실은 꽤 서운했다. 그러다 작년 봄에 이사를 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화분도 모두 처분했고, 지금 사는 집은 1년째 ‘식물 제로’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봄이 왔다. 아이는 작년에 비해 많이 컸고, 내 마음속에선 ‘이제는 다시 식물을 들여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싹텄다. 아이가 말도 알아듣고 간단한 의사소통도 가능하니까 전처럼 화분의 흙을 마구 만지거나 막 봉오리가 생긴 꽃을 다 따버리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 나는 시도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근처 화원에 가서 프리지어 한 뭉치와 물망초 화분 2개를 사들고 왔다.      

식탁 위 화병에 꽃을 꽂고, 화분은 아이 주방놀이 위에 올려두고 나니 생각 보다 훨씬 더 큰 행복이 밀려왔다. 화병이라니! 화분이라니! 그동안 나도 모르게 ‘아이 있는 집에 꽃이라니, 아무래도 위험하지...’라고 지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꽃을 들이고 나니 아이는 생각 보다 화병에 긴 시간 관심을 두지 않았고 (다른 모든 것에 그런 것처럼) 내가 우려하던 상황, 그러니까 예를 들면 화병의 물을 다 엎어버린다거나 꽃을 모조리 뜯어버리는 사건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기회에 아이에게 식물도 생명이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게 되어 좋았다. 아이는 예상 보다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오히려 문제는 내게 있었다. 화병에 물을 갈아주는 걸 깜빡해서 물에 이끼가 끼게 되거나, 화분에 물 주는 걸 잊어서 흙이 말라버리는 일들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아이 있는 집에 꽃이라니!’라고 생각했던 게 핑계였다는 걸. 아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내가 아이를 돌보며 식물까지 돌볼 깜냥이 안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번 일로 나와 식물과 아이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게 되었다. 예전엔 아이가 얼마나 크면 다시 화분을 들일 수 있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다면 이제는 내가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가늠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더불어 다른 생명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지에 대한 감각도 아이에게 함께 알려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내 결론은 이거다. 시각적인 즐거움을 위해 인위적으로 잘라서 구경하다가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화병은 치우기로 했다. 대신 크고 작은 화분을 조금 더 들여서 아이가 집 안에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집이 아주 넓지는 않지만, 식물을 위해 다른 것을 비워야 한다면 그러고 싶다. 다시 1년이 지나 내년 봄이 되면 아이와 함께 분갈이를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상상만으로도 벌써 입가에 물망초처럼 작고 예쁜 웃음꽃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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