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기 전에는 몸살 기운이 느껴지거나 어딘가 아플 때면 그냥 ‘어, 아프다. 좀 쉬어야겠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니면 ‘목이 따끔따끔 아프네, 병원 가야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랬겠지. 진짜 기억이 안 나네.)
그런데 요즘엔 몸에 이상이 느껴지는 순간 제일 먼저 이 말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어, 안 되는데!”
정확성을 위해 이 문장에서 생략된 말을 추가한다면 “어, (나는) (아프면) 안 되는데!”이다.
그렇다. 나는 아프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면 나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고 신랑도 힘들고 친정 엄마도 힘들어지는데, 그중에 제일 힘든 건 역시 나다. 아프면 몸이 아픈 것과 동시에 가족들에게 미안한 감정까지 합쳐져서 마음도 불편한 탓이다.
미안해하기 싫은데. 나 혼자 키우는 아이가 아니니까 필요할 때 가족의 도움을 받는 건 당연한 건데. 그래도 자꾸만 미안해진다. 침대에 누워 끙끙 앓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면 미안한 마음을 털어내지 못하고 괜히 아픈 몸으로 이 일 저 일을 하는데, 그러다 몸이 더 안 좋아지면 컨디션 회복을 더디게 해서 결과적으로 모두를 더 고단하게 한 나 자신이 또 싫어진다. 몸도 마음도 악순환의 쳇바퀴에 빠져버리는 거다.
그래서 이제는 뭔가 싸하다 싶으면 그냥 바로 병원으로 달려간다. 아무리 증상이 미약해도 일단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부탁한다.
“선생님, 저 빨리 나아야 하니까 주사 좀 놔주세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주사를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진짜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다. 임신/출산 과정에서 수없이 채혈을 하고, 팔뚝에 엉덩이에 척추에 골고루 사정없이 주사를 때려맞으면서도 나는 매번 주삿바늘이 너무 무서웠다. 전혀 익숙해지지도 무감해지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육아를 만나 주사를 먼저 요청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임신과 출산과 육아 중에 최고는 역시 육아이니라...후후후…)
비록 그렇게 주사를 맞을 때마다 속으로 ‘나는 애도 낳았다. 나는 애도 낳은 여자야. 무섭지 않아!’ 되뇌며 벌벌 떨지만 그래도 내겐 이게 정말 엄청난 변화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며 웃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스스로 주사를 요청해 맞고 집으로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는 나 자신을 보며 ‘아 이래서 엄마는 강하구나. 애 낳은 여자는 무적이 되는구나.’하고 느꼈다. 나의 눈부신 성장에 가슴이 웅장해진다. 크으으.
예전에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하기 싫은 일을 하는 힘>이라는 책의 소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메인 카피가 ‘모든 성취는 하기 싫은 일을 하는 힘에서 시작된다.’라는 문구였는데, 그 말이 몹시 마음에 들어서 수첩에 적어두고 오래도록 가슴에 새겨두고 있었다. 덕분에 아이가 다니는 소아과에서 주사 맞고 돌아오는 스스로를 이토록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것이다.
혹시 지금의 일상이 너무 진부해서 성취와 성취감 같은 단어가 들어올 틈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 무척 소중한 이 문장을 들려주고 싶다. 오늘도 하기 싫은 일을 꿋꿋하게 해나가는 당신의 시간은 분명 그 자체로 이미 성취이고, 나아가 훗날 이룰 더 큰 성취의 시작이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