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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ul 14. 2021

육아, 불확실성의 끝판왕


“그거 알지, 태국은 군대 갈 때 제비뽑기하는 거? 별이라면 어떻게 할 거야?”     


운전을 하고 있던 남편이 문득 생각난 듯 내게 물었다.      


그럼 알지. 케이팝에 관심이 많고, 아이돌을 좋아하는 나는 2018년 갓세븐의 멤버 뱀뱀이 군대 추첨하러 출국했을 때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태국의 징집 방법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징병제이다. 만 21세가 되면 의무적으로 군 입대를 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독특하다. 일단 징집을 하기 전에 지원자를 먼저 받고, 나머지 인원은 추첨을 통해 군 입대를 결정하는 것.      


추첨은 통 안에 빨간 공과 검은 공을 넣고 돌려서 뽑는 방식인데, 빨간 공이 나오면 1개월 이내에 입대해야 하고 2년 동안 군 생활을 해야 한다. 검은 공이 나오면 면제. 그리고 사전에 자원한 사람은 고졸은 1년, 대졸은 6개월만 군 생활을 하면 된다. (추첨으로 걸린 사람은 학력과 상관없이 무조건 2년이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나는 아주 잠깐 고민한 뒤 대답했다.     


“나라면 자원 입대할 거 같아. 내 인생에 그렇게 큰 불확실성이 있는 게 싫어. 내가 계획한 올해의 할 일들이 있고, 내년의 계획이 있는데 그게 2년 뒤로 미뤄질지 아닐지 모른 채로 있는 시간을 못 견딜 거 같아.”     


내 대답을 들은 남편은 본인도 나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물론 그 이유는 나와 조금 달랐는데, 추첨은 확률이 얼마고 자원은 얼마인데 그럼 어쩌고저쩌고 숫자로 이야기해서 흘려 들었다. (미안, 남편. 나한테 그런 얘기 하지 마 어차피 못 알아듣는다고!) 우리 둘 다 자원을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태국에서는 자원해서 입대하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쩌면 난 면제일지도 몰라’하는 희망에 승부를 거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대다수의 사람과 반대편에 서서 최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게 육아는 ‘네가 아무리 다른 데서 불확실성을 줄여도, 육아 한 방이면 불확실성 최대치가 뭔지 알 수 있지! 크하하!’하고 외치며 나타난 거대한 운명 같다.      


지난여름, 아이와 함께 남편의 막내 고모님 댁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차로 1시간 거리였는데, 갈 때는 카시트에 얌전히 앉아서 책도 읽고 동요도 부르며 평화롭게 갔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려고 다시 차에 탈 때 아이가 갑자기 카시트 타는 걸 극렬히 거부했다.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아까 걔가 맞나 싶었다. 설명하고, 기다리고, 조금 다그쳐도 보았는데 아이는 그저 싫다고 울기만 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 등에 업고 동네를 걸어도 보고, 다시 집으로 올라가 간식으로 달래도 보고...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했는데도 아이는 카시트를 거부했다. 그렇지만 어쩌나, 집에는 와야 하는데. 고모님 댁에서 살 수는 없으니 마지막 방법으로 남편이 힘으로 아이를 억지로 태우고 집으로 겨우 왔다.      


그리고 그 뒤로 아이는 절대 카시트에 타지 않았다. 나중에는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차를 보기만 해도 울며 넘어갔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 등원을 차로 해왔기 때문에 정말 난감했다. 처음엔 며칠 이러다 말겠지 싶어 가정 보육을 했다. 하지만 아이의 승차 거부는 일주일이 넘도록 계속되었고 나는 지쳐갔다. 그래서 한 번은 유모차에 태워 걸어가 봤는데, 찌는 듯 더운 여름에 40분을 파워워킹하니 온몸이 땀으로 젖고 머리를 헝클어지고 어후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도대체 왜 갑자기 이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미칠 것 같았다. 주변에 물어보면 그러다가 어느 날 그냥 탈 거야.”라는 듣고도 믿을 수 없는 대답만 돌아왔다. ‘오늘이 그날일까? 오늘은 탈까, 안 탈까?’ 알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눈뜨면 제일 먼저 하던 ‘오늘은 아이가 카시트에 탈까?’하는 질문에 대답이 NO인 시간이 한 달을 넘어 한 달 반이 되어가던 어느 날. 그러니까 진짜 어느 날!!!! 아이는 자기가 언제 카시트를 거부했냐는 듯 너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차에 탔다. 지난 시간이 꿈이었던 건지, 내 머리 어디가 잘못되어서 지금 환상을 보고 있는 건지 몰라서 기뻐할 수도 없었다. 이번에도 왜 카시트에 갑자기 타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아이가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길고 긴 농담이었던 걸까.      


‘카시트 거부’가 군 입대라고 치면, 나는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1개월의 카시트 거부 보다 내가 선택한 시기의 3개월 카시트 거부를 원하는데 내겐 그런 선택권이 없다. 육아엔 그런 거 1도 없다. 육아는 그야말로 불확실성의 끝판왕이다.      


그러니까 이런 게 힘들다는 거다. 오전과 오후의 아이 행동이 180도 다른 데 왜 그러는지 알 길이 없다는 거. 3시에는 울다가 3시 5분에는 갑자기 웃는데 그 장단에 성심성의껏 춤을 춰야 한다는 거. 이 작은 인간이 나에게 1분 뒤에 무슨 짓(?)을 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데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는 거.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      


그런데 또 이렇게 생각하면 힘들다는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 아이도 나를 선택한 적 없다는 거. 세상에 태어난 것도 엄마가 나인 것도 따지고 보면 내가 정한 거지 우리 아이가 ‘자원’한 건 아니라는 거. 그러니까 나만 힘든 건 아닐 거라고. 힘들면 말 못 하는 애가 더 힘들겠지... 나는 이렇게 글로 써서라도 풀지만 애는 아직 한글도 모르는 걸. 에효 여기까지 쓰고 나니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진다. 카시트 잘 타는 예쁜 내 새끼. 이제 그만 하원하러 가야겠다. 총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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