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13일 일요일 저녁, 나와 아이는 평소와 같이 침대에 함께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다. 자기 전에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가깝게는 방금 읽은 책 이야기부터, 멀게는 지난겨울에 할아버지가 했던 말까지 아이는 쉴 틈 없이 종알댄다. 그런 아이가 처음 20분은 그저 사랑스럽고, 30분 넘어가면 조금 귀찮고, 1시간이 지나기 시작하면 이제 제발 조용히 하고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은 그 모든 시간을 지나 ‘모르겠다. 더는 못 버티겠어. 그냥 잘래. 쟤는 자든지 말든지’하는 상태에 이르러있었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잘란다. 아이가 하는 말에 대꾸도 안 해주고 눈을 감은 채 자는 척...을 하려다가 진짜 잠이 들어가고 있는데 아이가 배 위로 낑낑대며 기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정확히 명치에 팔꿈치를 대고 온 체중을 실어 용을 썼다. 여기서 진짜 리얼하게 자는 척을 해서 애를 재우려면, 배 위가 아니라 머리 위에 올라와 앉아도 모른 척 가만히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복근에 힘을 주고 숨소리가 거칠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고통을 참고 있었다.
그렇게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려는 신음 소리를 붙잡고 버티고 있었더니 잠시 후 아이가 배 위에 철푸덕, 자리를 잡고 엎어졌다. 그리곤 제 입술을 내 귓가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엄마,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하늘이가 사랑하는 거 알아?”
아 이럴 수가.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아이가 첫 문장을 마치고 두 번째 문장을 말하려고 잠시 멈춘 틈에 나와 (나처럼 자는 척하고 있던) 남편은 동시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자는 척 실패. 완전 실패.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이을 두 팔로 꼭 감싸안고 대답했다.
“알지, 알아! 엄마도 하늘이 사랑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 우리를 보며 남편은 눈치 없이 “나는? 별이 변했어...” 이러고 있다. 여보 조용히 좀 해줄래…)
그전에도 아이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많았다. 아이는 말을 시작하고부터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사랑해!’ 또는 ‘사랑해요~’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자신의 감정을 단순히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상대방이 그걸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할 정도로 아이의 마음이 자란 것이다.
처음엔 아이의 성장과 나날이 풍부해지는 어휘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혹시 아이가 대답 없는 나를 보며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나 봐...’하고 생각한 걸까 싶어 자는 척한다는 핑계로 아이를 무시했던 게 미안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는 ‘내가 이 아이가 내게 주는 사랑을 정말 알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는 내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러니까 ‘나의 사랑’에 대해서만 골몰했던 것 같다. 아이와 처음 만난 2년 전부터 오늘까지 나는 내가 아이에게 (사랑을 포함해서) 뭔가를 계속 제공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사랑이 넘치는 엄마’가 된 나의 모습에 도취했던 것도 같다. 그렇게 내가 하는 사랑에만 푹 빠져서 정작 이 아이가 내게 주는 순수하고 조건 없는 사랑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나를 한없이 사랑해주고 있구나.
아이가 건넨 한 마디에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내가 정말 복에 겨운 인간이구나. 세상 누가 나를 이보다 더 사랑해줄 수 있을까. 모든 것에 그저 감사하다.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에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창밖으로 시원한 여름비를 뿌려주고 있는 구름에도, 촉촉하게 젖은 덤불 속 작은 꽃에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다. 나와 아이를 만나게 해준 온 우주의 모든 존재에게 냅다 큰절을 올리고 싶다.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어서. 그렇게 오늘을 살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