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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Aug 03. 2021

나를 안아주세요. 더 꽉이요!


“엄마 하늘이 좀 봐요.”     

“엄마 하늘이한테 와주세요.”     

“엄마 더 가까이요~”     

“엄마 하늘이 안아주세요.”     

“엄마 더 꽉이요!”     


투명하고 검은 눈동자가 반짝반짝 나를 올려다본다. 작고 말랑한 손으로 내 손을 쥐고 제 곁으로 당긴다. 아아 어떻게 보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더 꽉 안아주지 않을 수 있을까! 앞서 적은 문장은 아이가 부쩍 내게 많이 하는 말 TOP 5 다. 요즘 아이는 꾸밈없고 당당하게 애정을 요구한다. 내 눈길을, 손길을 원하는 자신을 아무것도 거리낄 것 없이 훤히 드러낸다. 


솔직히 처음 아이가 내게 저렇게 말했을 때 내 안에선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꺄아~ 쟤는 부끄럽지도 않나 봐. 저런 말을 어쩌면 저렇게 대놓고 말하지?’     


아니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내가 너무 웃기는 거다. ‘저런 말’은 뭐고, 대놓고 말하지 못할 이유는 또 뭐람.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건데?     


우리는 성인이 되면서 다양한 사회화의 과정을 겪는다. 그중에는 감정 표현의 사회화도 포함된다. 때와 장소, 그리고 상대에 따라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물론 이 기술(?)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세상 모든 것이 그런 것처럼 과하게 적용될 경우에는 부작용이 생긴다. “더 가까이 와서 더 꽉 안아주세요~”하고 말하는 티 없이 맑은 아이를 보며 괜히 본인이 쑥스러워하는 엄마가 되는 거다. 흐음 이건 옳지 않다.      


나는 우리 아이가 감정 표현에 있어서는 타인의 시선에 갇히거나, 스스로 검열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랑을 할 때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스스로를 자유롭게 드러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걸 낯간지러워하지 않는 그런 사람. 특히 집에서만큼은. 가족에게만큼은 더욱 더. 아이는 이미 태어난 모습 그대로 충분히 잘 하고 있으니, 그런 아이의 모습을 지켜주기 위해 변해야할 건 나다.      


마음을 다잡고 미소 띤 얼굴로 남편에게 다가간다.       


“여보 날 좀 봐요. 별이한테 와주세요. 별이 안아주세요. 더 꽉이요!”     


남편의 동공이 흔들린다. 크게 웃으며 내게 와 꼬옥 안아준다. 

머… 먹힌 건가? 후후후 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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