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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Nov 05. 2021

나, 머리에 꽃 달았네?


훌라 수업이 있는 성미산 인근의 건물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고, 다시 버스로 갈아타서 15분을 더 걸어야 했다. 빌라가 가득한 주택가, 간판 없는 빌딩 앞에 도착해 시계를 확인하니 집에서 나온 지 1시간 40분이 지나있었다.

‘이 고생을 해서 여길 온 게 과연 잘한 일일까.. 훌라라니.. 내가? 나 같은 몸치가?’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어린이집에 겨우 보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오긴 왔는데, 막상 코앞에 서고 보니 좀 망설여졌다. 입구에 들어설 용기가 안 나서 주저하고 있는데 젊고 싱그러워 보이는, 누가 봐도 아가씨인 여자 둘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힙하다. 힙해. 이것이 홍대 인근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의 향취인 것인가. 그들의 등장에 더욱 움츠러들었다.

앞서간 여자들 앞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먼저 들어선 그들이 나를 본다. 네 개의 눈동자가 ‘아줌마, 탈 거예요? 말 거예요?’ 하고 묻는 듯하다. 그 눈빛에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 앞에 바짝 붙어 서서 이미 눌러진 3층 버튼을 확인하곤 저들과 내가 함께 춤을 추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했다. 진즉 잘 알고 있는 사이인 사람들 틈에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섞여 드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게 나라는 사실이 벌써부터 피곤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엘리베이터는 충실히 제 몫의 일을 다 해 우리 셋을 3층에 안전히 내려놓았다. 익숙한 그들의 몸짓을 눈치껏 따라 실내화로 갈아 신고 전면 거울로 한 벽이 가득 찬 공간에 들어섰다. 누가 봐도 춤을 추는 공간이었다. 내가 이런 곳에 들어오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기왕 들어온 거 오늘 한 번 듣고 여차하면 그만 나오지 뭐. 환불은 아마 안 되겠지. 아우 몰라 일단 해 보자. 마음을 다잡고 연습실 구석에 가방을 내려놓으니 한 여자가 커다란 히비스커스 꽃처럼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나의 첫 훌라 선생님인 하야티였다. 그의 손에는 꽃목걸이와 머리핀이 들려있었다.

“안녕하세요! 별님 맞으시죠? 환영의 뜻으로 준비했어요. 마음에 드는 레이와 꽃핀을 골라보시겠어요?”

아, 레이구나. 오래전 하와이 여행을 갔을 때 공항에 마중 나온 친구가 목이 걸어줬던 보랏빛 플루메리아 레이가 떠올랐다. 친구는 하와이 사람들에게 레이는 누군가의 목에 팔을 둘러 포옹을 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사랑과 우정, 위로와 감사, 축하와 격려 등 누군가를 위한 마음을 표현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레이라고 말이다. 그날 하루 종일 향기가 코를 찌를 듯 터져 나오는 꽃 목걸이를 두르고 와이키키 해변을 맨발로 달리며 느꼈던 행복이 되살아났다.

지난 추억에 취해 홀린 듯 하얀 플루메리아 꽃으로 만들어진 목걸이와 머리핀을 골라 목에 걸고 머리에 꽂았다. 고개를 들어 둘러보니 그곳에 있는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 오늘을 위해 미리 준비한 보라색 플루메리아 훌라 스커트까지 입으니 (그렇다. 나는 보라색을 좋아하고. 플루메리아도 정말 좋아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꽃 천지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안의 아주 깊숙한 곳에서부터 웃음이 피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기쁨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나 자신을 꾸미지 못하고 지내온 시간이 길어진 탓에, 왼쪽 귀 위에 올라앉은 작은 꽃송이가 새삼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 머리에 꽃 달았네?
이러니까... 예쁘다, 나.

건물 입구에서부터 이유 없이 구겨진 내가 환하게 펴지는 게 느껴졌다. 스스로에게 꽃 한 송이 선물할 여유조차 없이 살아온 시간들이 온전히 느껴졌고, 그런 시간을 끝내고자 용기를 내 이곳을 찾아온 자신이 기특했다.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던 여자들과 내가 아름다운 하나의 꽃목걸이로 연결되는 것 같았다. 마치 하와이 어느 외딴섬의 훌라 댄서라도 된 것처럼 황홀했다.

아직 스텝 하나도 배우지 않았는데, 춤은 시작도 안 했는데, 그렇게 나는 훌라와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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