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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개구리 Oct 03. 2022

이기적인 바람

 하루에 수없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내 안에서는 버스를 탈 때마다 사고가 일어났고 계단을 내려갈 때 굴러떨어졌으며 난간은 항상 부서졌다. 이루어지지 못한 바람이 상상 속에서 일어났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고 죽었다. 대부분 끝은 죽음 그 자체였으나 가끔은 제멋대로인 상상이 나를 그 이후의 세계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숨이 넘어갈 듯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따끔한 고통이 내게 쏟아져 왔다. 그럼에도 나는 절망이라 부르는 희망을 놓을 수 없었다. 혼자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심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무시했다.


  이기심은 무책임을 만들어냈다. 좁아진 시야에는 내가 있는 거울만이 보였고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졌다. 무책임하게 스스로에게 내뱉는 말들도 많아졌다. 한심하다고 욕을 하고, 지키지 못할 다짐을 하고,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시켰다. 그러는 동안 점점 거울 안의 나를 마주하기 싫어졌다. 이기심과 무책임에서 허우적대는 꼴이 한심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기적이었기에 나밖에 볼 수 없었다. 그것이 꼭 벌처럼 느껴졌다.


 이기적인 상태로 거울 앞에 설 때면 나는 과거와 미래의 나와 타인이 됐다. 그렇게 생각해야 그들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었다. 나는 저 높은 곳에 걸려 있어야 할 추억이 왜 아래까지 내려왔냐고 원망했다. 그렇게 실컷 원망했을 때 그 추억은 눈물에 휩쓸려서 왔다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환한 낮 어두컴컴한 방에 언제일지 모르는 시간까지 스스로를 가둔 느낌이 들었다. 밖을 나가면 환할 것이라는 사실과 나가는 방법도 알고 있었지만 망설이다가도 끝내 나갈 마음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 같았다.


 거울에 보이는 건 나 하나였어도 세상에는 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나는 그들과 영향을 주고받았다. 거기에서 내 이기심과 무책임은 잘 드러났다. 누군가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살라고 말했다. 가까운 사람이 죽는 걸 보기 싫은 이기심과 내가 대신 살아줄 것 아닌 무책임 때문이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든 그 사람만 사라진다면 나는 편해질 것 같았다. 매일 이기심과 무책임으로 얼룩진 말을 지니고 살았다. 내가 가진 색이 선명한 날이 없었다.


 무책임과 이기심이 내 안에서 커질 때면 세상은 흐려졌지만 훨씬 편하게 돌아갔다. 어떤 것을 잘못해도 남을 탓하면 됐다. 나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그래도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겉에 보이는 생채기 같은 건 없었지만 피부 밑에 상처가 나서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이기심을 방패로 방어하는 것도 되지 않자 나는 그저 어딘가로 벗어나 편안해지고 싶었다.


 인생을 벗어나는 게 내가 편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다. 그래서 경로를 자꾸 이탈했지만, 되돌아오는 건 다시 탐색한 경로였다. 그 과정을 수차례 겪고 나서야 나는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목적지를 설정한 뒤 인생의 끝으로 향하는 가장 빠르고 편한 길로 향했다. 지친 마음이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고자 한 노력이었다. 한쪽이 가벼워지면 다른 쪽이 기울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런 방법을 선택했다. 누군가는 기울어진 무게를 감당해야 했지만, 내가 아니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아주 많이 헤맸다. 길을 못 찾고 허덕이는 동안 저울이 왔다갔다 참 많이도 기울었다.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분명 땅 한가운데에 있는데 파도가 작정하고 밀려오는 것 같았다. 쉬울 줄 알았던 길은 가장 어려운 길이 됐고, 나는 방향을 찾지 못해 허덕였다.


 아프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없어지고 싶었던 마음에서 비롯한 여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나밖에 볼 수 없었던 시간을 지나 나조차 볼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마음은 상처로 얼룩져서 오래 쓴 팔레트 같아졌던 어느 날들이 스쳐지나간다. 이기심만큼 내 우울과 추악을 인정해주는 감정이 없었다. 이기심은 누구보다 간절히 내가 나이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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