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없는 일상 이야기
호주 시드니는 추운 겨울이다.
하지만 오늘은 모처럼 햇살이 따뜻해서 스튜디오에 있다가 나와서 혼자 아빠 다리를 하고 햇볕을 쬐기도 했다.
광합성이 필요해.. 햇볕을 쬐니.. 며칠 동안 유독 축축해서 곰팡이가 날 것 같았던 내 마음이 말려지는 느낌이다.
도자기 스튜디오에서 일하다 보면 항상 옷이 흙 때문에 더러워진다.
스튜디오에서 혼자 일할 때는 가장 편하고 더러워져도 부담이 없는 옷을 입고 간다. 언제든, 시간 날 때마다 스튜디오에 가기 위하여 내 차 안에는 항상 편한 옷들이 준비되어 있다.
내가 도자기를 왜 시작했지.... 기억이 안 난다. 언젠가 다시 생각이 나겠지 뭐.
몇 년 전에 사주를 봤는데, 사주 봐주시는 분이 나 때문에 소름 돋았다고 하셨다. 사주는 불이고, 유독 토가 많은데 (정말 많다.. 화개살도 3개) 도자기를 한다고 해서 놀라셨다고 한다. 언젠가 대박 나겠지 뭐..라는 마음으로 종종 시간을 내서 작품을 만들며 살아간다.
스튜디오에 가면 유독 배가 너무 고프다.
그래서 전날 저녁 먹고 남은 음식이나 샐러드를 싸가지고 가고는 한다. 이 날은 집에 있는 자투리 야채를 모아서 쿠스쿠스 샐러드를 만들어보았는데, 레시피를 더 연구해야 할 것 같다.
그것도 귀찮은 날에는 스튜디오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것도 묘미다. 옆 스튜디오 친구 베니가 너무 배고파서 내 불닭 볶음면을 가져갔는데, 내가 분명히 매울 거라고 조심하라고 경고를 줬다.
"나 매운 거 되게 잘 먹어!" 라며 베니는 자신만만했다.
"베니, 한국인들이 먹는 음식의 매운 정도는 너의 상상이상이야. 아무래도 이건 너한테 무리야. 먹지 마, 다른 거 먹자.. 응?" 라며 베니를 말려보았지만.. 베니는 자신은 멕시코 핏줄이라며 매운 거에 대한 자부심을 내게 어필하길래, 나는 어쩔 수 없이 라면을 건네주었다.
그 후에 그 베니는 불닭 볶음면이 너무너무 매워서 먹고 죽을 뻔했다고 한다. 하하...
신난 음악을 들으면서 모바일은 비행기 모드로 해서 방해받지 않았다.
슬립 캐스팅도 직접 만들고.. 물레도 돌리고..
평화로웠던 스튜디오에서의 하루.
학생들에게 기 빨린 지난주에 학교 앞 카페에서 먹은 차완무시.
사이드로 김치가 나왔는데, 노노.. 영 아니었다. 거기다가 사이드로 나온 훈제연어는 차완무시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차완무시 한 수저를 뜰 때마다 입 안에 뜨끈하고 부드러운 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추운 겨울에 좋은 메뉴였다.
현재 호주는 겨울인데, 이 메뉴가 무척 좋았다. 사이드 메뉴들은 빼고.
저 엉망진창인 김치를 보며.. 한숨을 쉬었더랬지.
조만간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생기면.. 프레쉬한 진짜 한국 김치를 직접 담가서 주변에 나눠주고 싶다.
이게 진짜 한국의 맛이라고.
한국인 교수님이 계신 UTS (시드니 공과 대학교)에 갔는데, 교수님께서 감사하게도 내게 점심을 사주셨다.
학교 안에 있는 베트남 식당이었는데, 솔직히 별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먹어본 월남국수는 정말 깔끔 그 자체여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여기 도서관도 공부하기에 너무 좋아 보이고.. 조만간 도서관에 공부하러 가면서 다시 한번 이 식당에 들러봐야겠다.
교수님 뵙기 전에는 엄청 긴장했는데, 서로 취미랑 선호하는 부분이 갚아서 제법 재밌는 대화를 했었다.
결론은.. 조만간 교수님 댁에 가서 같이 고추장을 담기로 했다.
..................... 응?
나는 미술을 전공하고 그쪽 분야에서 일하기 때문에 미술 같은 창작 활동이 내게는 절대로 취미가 될 수 없다. 게다가 이 몇 년 지긋지긋하게 시달리고 많이 배워서인지.. TV에 미술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무조건 채널을 돌려버린다. 데이트를 할 때도 남자가 내게 미술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와, 갑자기 스트레스. 솔직히 개인 생활에서까지 정말 미술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내가 찾은 내 취미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그중에 가장 관심 있는 건 발효 음식.
그래서 직접 집에서 낫또도 만들어서 먹고, 술도 담가서 먹는다. 밤에 자기 전에 요리 만화도 보고.. 발효 음식에 관한 책을 보고..
궁금한 거 있으면 쉬는 날에 실험해 보는 게 내 기쁨이고, 힐링이다.
아, 근데.. 나 왜 지금 싱글이지?
아무래도 남자들이 눈이 삔 것 같다.
그 취미의 부작용으로 난 가전용품에도 관심이 아주 높다. 최근에 호주에서 40% 세일하길래 얼른 집어온 닌자 에어 그릴은 나에게 요즘 기쁨을 준다. 편하게 요리할 수 있어서 좋더라. 세상 참 좋아졌다.
색이 잘 안 나와서 집에 가져와서 색을 다시 입히는 중이다.
학교에서 학생들 데몬스트레이션 용으로 40분 만에 한 작품 치고는 괜찮다고 혼자 생각한다.
한동안 내 작품을 아무것도 완성시키지 못했었다. 사람들의 잣대와 비난이 무서웠다랄까..
그래서 내 내면에서는 아무에게도 말 못 할 심리적인 문제가 좀 생겼었다.
그런 과정 속에 예전의 교수님이었던 데이비드가 나를 학교로 불러주었고.. 데이비드의 수업을 도우며 병아리 같은 프레쉬한 학생들을 만나면서 마음에 많이 힐링이 되었다.
데이비드 왈: "수업 끝나기까지 1시간이 남았구나. 학생들에게 보여주게 지금부터 여기에 꽃을 조각하거라. 시간 충분하지?"
.......... 네?
고민할 시간도 없이 40분 만에 휘리리리릭 무언가를 완성했다. (10분은 안 한다고 우겼었음, 나머지 10분은 병아리들이 옆에 와서 째잘째잘.)
되게 오랜만에 무언가를 짧은 시간 안에 완성했다는 게 좀 충격이었다.
그리고는 마음이 그 이후에 이상하게 좀 괜찮아졌다. 그래서 다시 스튜디오에 가서 내 작품을 진지하게 시작하는 중이다.
교수님께서는 일부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내가 아트워커로 일하는 갤러리에서 하고 있는 전시회. 조만간 이 전시회에 대해서 글을 써봐야겠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큐레이터가 이 전시회를 큐레이팅했다. 난 정말 이 언니 전시회가 유독 좋더라.
우리가 서로 개인적으로 친하거나 가깝게 지내지는 않지만, 일할 때에 그래서 이 언니가 뭘 부탁하거나 하면 이유불문하고 무조건 한다.
왜냐면.. 난 이 큐레이터가 만드는 전시회를 진심 좋아하니까. (아마 이 언니는 절대 모를걸.)
대학원 다닐 때에 이 언니 큐레이팅을 처음 봤는데, 진심 처음으로 마음에 쏙 들었던 전시회였다. 몇 년이 지나서 그 전시회를 보았던 갤러리에서 일하게 되었고.. 현재 많이 배우고 있다. 내가 큐레이팅한 전시회도 앞으로 더 깊어질 수 있기를.
나는 내가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청소를 하든, 회계를 하든, 변호사를 하든, 전기를 하든.. 자기 분야에서 즐겁게 최선을 다하고 전문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 정말 멋있는 것 같다.
주말에 혼자 갤러리에서 일할 때에 엄마가 싸준 김밥을 집어먹으면서.. 갤러리에서 종이 쪼가리 찾아다가 작가들에 대해서 잠시 잠깐 공부를 했다. 왜냐면 갤러리를 방문한 분들이 종종 전시회나 작가에 질문을 하시는데, 꿀 먹은 벙어리일 수는 없잖아.
미리 다 공부는 했지만.. 혹여라도 당황해서 잊어버리지 않도록 나 혼자만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한국어 메모들.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가 최화정 언니의 채널인데, 거기서 나온 시금치 피자를 만들어보았다.
다들 맛있다고 극찬하셨지만.. 내 손맛이 부족한 건가. 나는 그냥 그저 그랬다.
그래도 최화정 언니의 유튜브는 요즘 내 재미 중의 하나이다.
탕호루! 이제야 처음 먹어보았다.
정말 맛있더라, 정말 맛있더라, 정말 맛있더라..
외국 살면서 안 좋은 점 중의 하나는.. 한국에서 유행하는 거 나도 먹고 싶은데, 먹기 힘들다는 것.
그럴 때마다 나는 무슨 죄를 지어서 왜 이 섬나라로 귀양을 왔을까.. 싶었다. 그래도 썩 나쁘지 않은 귀양살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