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정원에 심었던 시체, 싹이 트기 시작했나요?
2025년 6월 26일부터 7월 12일까지 열린 <The Glass Narrative>에 참여한 징루 마이는 현재 호주 시드니 대학교에서 미술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징루는 유리와 세라믹을 매체로 삼아 시적이고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호주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예술가이다.
그녀는 개인적 경험과 감정을 시각 언어로 전환해 관객의 공감과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이끌어내는 데 집중하는데, 이걸 통해 작품의 역동성과 예술의 폭넓은 가능성을 강조한다. 이로 인해 그녀의 작품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징루를 처음 만난 건 2년쯤 전이다. 시드니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 징루에 대해 듣고 소개를 받았고, 그녀의 유리꽃을 본 순간 꼭 함께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큐레이팅한 전시회 <In Bloom>에서 처음 같이 작업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Harmonie> 전시에서도 함께했는데, 유리꽃은 자칫하면 깨질까 봐 다루기 까다롭기도 했지만, 징루는 배려심이 깊고 공감 능력도 뛰어나서 함께 일하기에 정말 좋은 아티스트라고 느꼈다.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확실히 싫어하는 성격도 나와 조금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징루와 가까워진 계기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벌어진 부당한 정산 문제 때문이었다. 징루의 작품이 판매되었지만 대금이 지급되지 않았고, 갤러리는 거짓말과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나중에 내가 그 일을 알게 되었고.. 징루는 몇 달간 속앓이 하다가 결국 내게 털어놓았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과정에서 갤러리 측은 내가 다른 여자들보다 살이 쪘고, 피부도 하얗지 않고 노랗다며 큐레이터로 어울리지 않는 외모라고 비하했다. 그 말에 징루는 몹시 격분했고, “엘레인, 너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야. 그런 말에 절대 상처받지 마”라며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해주었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더 깊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도 훨씬 돈독해졌다.
한편, 돈으로 피해를 본 다른 호주 작가가 해당 갤러리를 신고하겠다며 강하게 나섰고, 그걸 중간에서 막느라 나는 애를 많이 먹었다. 정말 많은 드라마가 있었지만, 결국 징루는 밀린 대금을 4개월여 만에 받게 되었고, 나는 그동안 너무 미안한 마음에 감히 다시 함께 일하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런데 징루가 먼저 말했다.
“엘레인,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너랑 계속 일하고 싶어. 너는 나를 이해해 주고, 내 작품을 진심으로 알아주는 사람이야.”
그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 징루는 <The Glass Narrative>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다.
징루 마이의 유리꽃 작품 제목은
‘That corpse you planted last year in your garden, has it begun to sprout?’
– 작년에 정원에 심었던 시체, 싹이 트기 시작했나요?
징루의 유리꽃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연약해 보이지만, 동시에 단단한 내구성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투명한 유리 안에 가장 은밀한 기억과 감정을 봉인한 뒤, 그것을 꽃이라는 시각 언어로 풀어내 관객에게 건넸다.
꽃잎이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은 삶의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순간들을 암시하면서도, 동시에 해방과 희망의 빛을 머금고 있다. 관객은 이 투명한 꽃을 통해 상처와 치유, 절망과 갱신이 겹겹이 공존하는 서사를 발견하게 된다.
이 작품의 바탕에는 여성으로서 여성을 사랑했던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사랑을 전하고자 보낸 꽃다발은 아시아 사회의 냉혹한 현실에 부딪혔고, 그 상처는 유리꽃 속에 그대로 굳어졌다.
“내 조국의 시선도, 그녀 가족의 반응도 우리의 유대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징루는 섬세한 유리 공예 기술로 이 꽃들을 만들어냈으며, 사소해 보이지만 소중한 순간들이 시간의 한계를 넘어 영원히 기억될 수 있음을 강하게 전했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녀에게 두려움과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치유의 여정이기도 했다.
유리의 투명성은 꽃 본연의 아름다움을 투영하고, 덧없는 찰나를 붙잡아 관람객을 깊은 사색의 공간으로 이끌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의 이미지는 변화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자유로운 삶 속에 숨어 있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일깨운다.
그녀에게 깊은 영감을 준 T. S. 엘리엇의 『황무지』에 나오는 구절,
“작년에 정원에 심었던 시체, 싹을 틔웠나요?”는 폐허 속에서도 꽃이 피어나는 잔혹한 봄의 역설을 압축하고 있다. 징루는 이 문장을 작품 제목으로 삼아, 외면받은 사랑조차 언젠가는 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유리의 영속성 속에 새겨 넣었다.
징루의 유리꽃은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 존재 가능성의 은유이다.
관객은 투명한 꽃잎을 통해 자기 안에 남아 있는 상처와 희망, 두려움과 용기를 비춰보게 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무뎌진 뿌리를 일깨운다.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아래,
런던 다리 위로 수많은 인파가 흘러갔다.
죽음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파멸시켰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짧고 간헐적인 한숨이 내쉬어졌다.
그리고 각자 발밑을 바라보았다.
언덕을 오르내리며 킹 윌리엄 스트리트를 따라 흘러갔다.
세인트 메리 울노스가 시간을 알리는 곳으로
마지막 9시에 죽은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기서 나는 아는 사람을 보고, 그를 멈춰 세우며 소리쳤다. ‘스테트슨!’
‘밀레의 배에서 나와 함께 있었던 자네!’
‘작년에 정원에 심었던 그 시체가,
싹을 틔웠나? 올해는 꽃을 피울까?’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이 된 구절:
작년에 정원에 심었던 시체, 싹이 트기 시작했나요?
징루 마이의 '작년에 정원에 심었던 시체, 싹이 트기 시작했나요?'는 거절과 침묵으로 가득한 현실 속에서도 사랑과 존재가 다시 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리꽃 앞에 선 당신에게도,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소중한 감정이 있는가?
"나는 아직도 내 감정과 삶에 대해 확신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죽은 땅과 시체에서 꽃이 피리라 믿는다.
이 구절은 황폐함 속에서의 갱신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 징루 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