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DAY] - 10화

코드네임, 카산드라

by 돌부처

성심자애병원 3층, 죽음의 침묵이 흐르는 복도. 동아리 방의 대형 모니터 속에서, 두 개의 주황색 열원은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뒤를,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검은 구멍’이 유령처럼 따라붙었다. 그 검은 구멍은 단순한 온도 저하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보의 소멸, 엔트로피의 완전한 붕괴였다.


“원장… 악귀야.”


소희의 목소리는 절망에 가까웠다.


“간호사는 전초전에 불과했어. 폭발 소리가… 진짜 주인을 깨운 거야.”


열화상 화면 속에서, 두 개의 주황색 열원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검은 구멍을 피해 위층으로, 더 위층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2층… 3층으로! 그들이 향하는 곳은… 304호실이야!”


유나의 외침은 거의 비명 같았다. 마침내, 두 개의 열원이 304호실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은 드론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지막 피난처인 병실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뒤따라온 거대한 검은 구멍 역시, 304호실의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마치 먹잇감을 구석으로 몬 포식자처럼, 더 이상의 추격이 무의미하다는 듯 여유롭게 대치했다.


이제 ‘글리치 트래커스’는 완벽한 장님이 되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잿빛의 건물 외관과, 3층의 한 지점에서 불길하게 멈춰 선 세 개의 ‘점’뿐이었다. 그 점들은 마치 오래된 저주처럼, 화면 중앙에 낙인처럼 박혀 있었다.


“젠장!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


유나가 절망적으로 외쳤다. 그녀는 키보드를 부서져라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접근 거부 메시지뿐이었다.


“아니.”


정혁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의 시선은 다른 모니터, 40년 된 교환기 시스템에서 흘러나오는 데이터 로그에 고정되어 있었다.


“볼 수는 없지만, ‘들을’ 수는 있어.”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트북 화면에 새로운 로그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었다. 40년간 응축된 원념이 디지털의 형태로 터져 나오는 비명이었다.


[CRITICAL ERROR!] [CRITICAL ERROR!]


[WARD_304] <=> [DIRECTOR_OFFICE]


[DUAL-WAY CONNECTION ESTABLISHED]


[NETWORK INTEGRITY: 0.01%]


“세상에… 두 개의 라인이 강제로 연결됐어.”


정혁이 중얼거렸다.


“40년 동안 닿지 않던 통화가… 지금 연결된 거야. 304호의 환자와 원장실의 원장이, 시공간을 무시하고 서로를 마주 보고 있어.”


그 순간, 소희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단순한 감응이 아니었다. 그녀의 정신이 강제로 그 통화의 교환기가 된 듯했다.


“너무… 너무 많아…!”

“소희야!”


태우가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두 개의 감정이… 아니, 수백 개의 감정이 충돌하고 있어! 304호실의 절규와 원장실의 탐욕이… 병원 전체에 갇혀 있던 모든 원혼들의 고통이… 주사기의 공포, 약물의 혼돈, 버려졌다는 절망, 잊혀졌다는 분노가… 전부… 전부 지금 저 방 안에서 폭발하고 있어!”


그녀의 비명과 동시에, 정혁의 노트북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듯한 노이즈와 함께 마지막 음성 데이터 조각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여러 목소리가 겹쳐진, 지옥의 합창 같았다.


...여긴... 내 병원이야...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나갈 수 없어...


(…살려줘… 아파… 그만…)


원장의 탐욕스러운 목소리 아래로, 수십 년간 잊혀졌던 환자들의 고통이 희미하게 깔려 있었다.




열화상 화면 속, 304호실을 나타내는 지점에서 믿을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검은 구멍이, 마치 물감이 물에 번지듯 방 안으로 스며들 듯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방 안에 있던 두 개의 주황색 열원마저 급격히 빛을 잃어가며 검은 구멍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안 돼…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있어! 저 악귀가… 저 둘을 집어삼키고 있어! 에너지 레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 이대로면 완전히 소멸할 거야!”


유나가 절망적으로 외쳤다. 그녀의 모니터에 표시된 두 사람의 생체 에너지 그래프가 위험 수위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정혁! 뭐라도 해봐! 뭐라도!”


정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는 관찰자였고, 분석가였다. 모니터 너머의 세계에 개입할 힘은 없었다. 코드는 현실을 분석할 수는 있어도,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모든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실패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결단을 내렸다.


“유나, 병원 주변 공장의 드론 제어 시스템, 아직 장악하고 있나?”

“어… 응. 하지만 지금 드론을 움직여봤자…”

“드론을 움직이는 게 아니야. 무기로 만드는 거야.”


정혁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폭풍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분석하지 않았다. 창조하고 있었다. 그는 드론의 제어 코드를 해체하고, 그 안에 담긴 모든 에너지를 단 하나의 명령으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드론의 배터리, 통신 모듈, GPS 수신기… 모든 부품의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린다. 과부하로 터져버리기 직전까지 에너지를 응축시키는 거야. 그리고 그 모든 에너지를 단 하나의 지향성 주파수에 실어서, 304호실을 향해 쏘는 거야.”

“그게… 뭔데?” “디지털 방식의 ‘충격 요법’이야. 저 악귀가 수많은 원혼들의 전자기장 집합체라면, 외부에서 강력한 전파 공격을 가했을 때 아주 잠깐이라도 그 연결이 흐트러질 수 있어. 0.1초라도 좋아. 그 틈을 저 두 사람이 놓치지 않을 거야.”


그것은 도박이었다. 성공 확률은 알 수 없었다. 실패하면 드론을 잃는 것은 물론, 악귀를 더 자극해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자신들의 위치가 발각될지도 몰랐다.


“쏴.”


정혁의 한마디에, 유나는 그의 눈을 보고, 망설임 없이 엔터 키를 눌렀다. 성심자애병원 상공, 소리 없이 떠 있던 드론의 모든 불빛이 꺼졌다. 마치 밤하늘에 작은 구멍이 뚫린 것처럼. 그리고 다음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전파의 창이 드론에서 발사되어 304호실의 외벽을 때렸다.




그 순간, 동아리 방의 모든 것이 멈췄다. 열화상 화면이 새하얗게 변하며 모든 신호가 끊겼다. 드론과의 연결이 완전히 두절된 것이다. 교환기 시스템에서 쏟아지던 데이터 로그 역시 완벽한 침묵에 잠겼다. ‘글리치 트래커스’는 이제 완벽한 암흑 속에 갇혔다. 모니터에는 ‘NO SIGNAL’이라는 차가운 글자만 떠 있었다. 방 안에는 거친 숨소리와 침 넘어가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시간만이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흘러갔다. 1분, 5분, 10분…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정혁은 타들어 가는 입술을 깨물었고, 유나는 부서진 드론의 마지막 로그를 붙잡고 있었다. 태우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고, 소희는 눈을 감은 채 미세한 기척의 변화를 쫓고 있었다.


“끝났어…”


마침내, 소희가 지친 목소리로 속삭였다.


“모든 게… 조용해졌어. 폭풍이… 지나갔어.”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승리인가, 패배인가. 혹은 모두의 소멸인가.


죽었던 센서들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유나의 모니터에 병원 앞 도로의 CCTV 화면이 기적처럼 떠올랐다. 노이즈 낀 흑백 화면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면 속에서, 성심자애병원이 울부짖고 있었다. 건물이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오듯, 창문들이 일제히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산산조각 났다. 드론의 전파 공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에너지가 건물을 통째로 붕괴시키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팀원들은 보았다. 3층의 한 창문에서, 두 개의 인영이 허공으로 몸을 던지는 것을. 자살 행위와도 같은 절망적인 탈출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추락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부드럽게 받쳐주기라도 한 듯, 먼지를 일으키며 너무도 가볍게 땅에 착지했다. 그들을 감싸는 희미하고 푸른 빛의 잔상을, 유나의 영상 보정 프로그램이 찰나에 포착했다.


두 사람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무너지는 병원을 등진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CCTV 화면은 영원한 암흑 속으로 잠겼다. 지옥에서 막 탈출한 생존자들처럼.




모든 것이 끝났다. 동아리 방에는 지독한 허탈감과 안도감이 뒤섞여 있었다. 그들은 세상의 이면을 엿보았고, 보이지 않는 전쟁에 아주 미약하게나마 개입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은 몇 줄의 데이터와 풀리지 않은 거대한 의문뿐이었다. 그들의 개입이 정말로 영향을 미쳤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정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동아리 방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로 다가갔다. 보드에는 ‘Campus Glitch Report’라는, 이제는 너무도 순진하게 느껴지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들의 지적 유희는, 하룻밤 사이에 생존과 죽음의 문제로 변해 있었다. 그는 그 글씨를 지우개로 힘주어 지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프로젝트의 이름을 적었다.


[PROJECT CASSANDRA]


그는 펜을 내려놓고, 지친 얼굴의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혼란이 없었다. 미지의 공포를 마주했던 개발자는 사라지고,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한 리더의 눈빛이 돌아와 있었다.


“우리는 그들과 직접 싸울 수 없어. 우리의 무기는 총이나 방울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볼 수는 있어.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무기야.”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확신이 담겨 있었다.


“광화문의 ‘검은 양복 집단’,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들이 일으키는 모든 ‘글리치’를 예측하고, 그들의 계획을 미리 읽어낸다. 우리는 더 이상 현상을 쫓는 ‘트래커’가 아니야. 다가올 재앙을 예언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비극의 예언자 ‘카산드라’가 되는 거야.”


그는 모니터에 떠 있는 한지운과 윤서화의 흐릿한 사진을 가리켰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낸 정보를, 저 두 사람에게 전달한다. 익명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알릴 필요는 없어. 우리는 그저… 어둠 속에서 그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희미한 등불을 비춰주는 유령이 되는 거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 미쳐버린 세상의 균형을 지키는 거지.”


네 명의 시선이 화이트보드에 적힌 ‘카산드라’라는 이름에 모였다. 그것은 저주받은 예언자의 이름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기꺼이 짊어져야 할 운명의 이름처럼 느껴졌다. 이제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세상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들의 길고 길었던 첫 번째 밤이 끝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모든 것의 진정한 시작이라는 것을. ‘글리치 트래커스’의 진짜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