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 요새가 무너져 내린 후, 서울에는 기묘한 평화가 찾아왔다. 뉴스에서는 63 빌딩 기계실 화재와 북악산 지진에 대한 추측성 보도들이 쏟아졌지만, 그 누구도 그 배후에 얽힌 거대한 음모와 초자연적인 사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시민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바쁘게 움직였고, 도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 화려한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하진은 다시 광화문 안전가옥으로 돌아왔다. 몸은 회복되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무거운 납덩이가 얹혀 있는 듯했다. 백면의 본거지를 파괴하고 옥새를 되찾았지만, 어머니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백면이 사라지기 직전 남긴 "끝이 아니다"라는 말은 그녀의 뇌리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었다.
“하아... 어머니.”
하진은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손에는 되찾은 옥새가 들려 있었다. 옥새는 이제 맑은 빛을 내고 있었지만, 그 빛은 차갑고 고요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무슨 생각하십니까?”
윤도진이 다가와 물었다. 그는 부러진 갈비뼈 때문에 한쪽 팔을 깁스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든든한 모습이었다.
“그냥... 너무 조용해서요. 폭풍 전의 고요함 같아서 불안해요.”
“그렇지 않아도 방금 이강우 씨한테 연락이 왔는데,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이강우 씨가요? 어디서요?”
“남산이랍니다. 백면이 처음에 계획했던 남산 대제... 그 흔적을 찾으러 간 모양입니다.”
그때, 안전가옥의 인터폰이 울렸다. 이강우였다.
“아이고, 형사 양반. 문 좀 열어주지?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윤도진이 문을 열어주자, 이강우가 흙투성이가 된 채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낡은 고서적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이게 뭐예요?”
하진이 물었다.
“남산 봉수대 터 밑에서 파낸 거야. 백면 놈들이 숨겨놓은 비밀 장소 같더라고. 거기서 이걸 건졌지.”
이강우는 책을 테이블 위에 던지듯 올려놓았다. 책 표지는 검은색 가죽으로 되어 있었고, 알 수 없는 문양들이 금박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건... ‘흑마도(黑魔圖)’...?”
하진이 책을 펼치며 경악했다.
“아는 책입니까?”
“전설로만 듣던 금서(禁書)예요. 조선 시대에 흑마법을 연구하던 사교 집단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귀신을 부리고, 영혼을 조작하는 사악한 주술들이 적혀 있는 책이죠. 서 씨 가문에서도 이 책의 존재를 경계해 왔어요.”
하진은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 책 안에는 끔찍한 그림들과 주문들이 가득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방법, 악귀를 소환하는 방법, 심지어는 죽은 자를 되살리는 방법까지.
“백면이 이 책을 가지고 있었다는 건... 놈이 단순한 도깨비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놈은 아주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흑마법을 연구하고 준비해 왔어요.”
“그럼 놈의 다음 계획도 이 책 안에 있겠군.”
윤도진이 책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여기, 이 페이지를 좀 봐요.”
윤도진이 가리킨 곳에는 서울의 지도와 함께, 다섯 개의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점들을 잇는 선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건... ‘오방신(五方神)’의 위치예요. 동서남북과 중앙을 지키는 수호신들.”
하진이 설명했다.
“그런데 위치가 좀 이상해요. 동쪽은 동대문, 서쪽은 서대문... 이건 맞는데, 남쪽과 북쪽, 그리고 중앙의 위치가 비틀려 있어요.”
“비틀려 있다니?”
“원래 오방신의 위치는 정해져 있어요. 하지만 이 지도에서는... 남쪽이 남산이 아니라 관악산으로, 북쪽이 북악산이 아니라 도봉산으로 되어 있어요. 그리고 중앙은... 용산이네요.”
“관악산, 도봉산, 용산... 백면이 왜 굳이 위치를 바꾼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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