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불꽃

by 돌부처

[누가... 나의 잠을 깨우는가!]


그 목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생명체가 내뱉는 태고의 포효이자, 지맥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온 분노의 파동이었다. 붉게 물들어 지옥도 같던 남산 타워 상공의 하늘이 마치 종잇장처럼 찢겨나가며, 그 틈 사이로 눈을 멀게 할 만큼 찬란한 황금빛 기둥이 대지를 향해 내려 꽂혔다.


그 빛의 중심에서, 전설 속의 동물 해치(獬豸)가 웅장하고 신성한 위용을 드러냈다. 사자의 갈기처럼 타오르는 화염, 산을 딛고 선 듯한 단단한 기린의 몸, 그리고 이마 정중앙에 돋아난, 거짓과 불의를 꿰뚫는 정의로운 외뿔. 해치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 백면이 뿜어내던 끈적하고 사악한 기운을 단숨에 짓누르며 압도했다.


[해치... 서울의 수호신이라니! 네년이 감히 금기를 깨고 신수를 소환해?!]


백면의 하얀 가면 뒤에서 처음으로 당혹과 공포가 뒤섞인 기색이 역력히 드러났다. 그는 하진이 자신의 생명력을 통째로 불태워야만 가능한 최상위 소환술을, 그것도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감행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해치는 불의를 심판하고 악을 멸하는 정의의 현신이자, 인간의 욕망과 거짓으로 점철된 백면에게는 존재론적인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진짜 해치라고? 광화문 앞에 앉아있던 그 돌덩이?”


이강우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앞의 광경은 그가 겪어온 수많은 초자연적 현상 중에서도 단연코 압도적이었다.


“가문의 선조들이... 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 맺었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계약이에요. 제 피와 생명으로... 그 계약을 다시 깨운 거예요.”


하진은 결계 안에서 비틀거렸다. 소환의 대가는 혹독했다. 생명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시야가 흐려지고, 손끝부터 감각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악하고 교활한 도깨비여. 네놈이 감히 이 땅을 더럽히고, 백성을 능멸하였구나.]


해치가 백면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만으로도 백면이 두르고 있던 검은 방어막에 쩍쩍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닥쳐라! 낡은 시대의 유물 따위가! 이 도시는 이제 나의 것이다! 내 힘은 이미 이 도시의 심장에 뿌리내렸다!]


백면이 악에 받쳐 소리치며 마검을 휘둘렀다. 검은 파동이 수천 개의 화살이 되어 해치를 향해 날아갔다.


[가소롭구나.]


해치가 앞발을 가볍게 내디뎠다.


콰아아앙!


백면의 공격은 해치의 몸에 닿기도 전에 빛의 파동에 부딪혀 허무하게 흩어졌다. 해치는 거대한 입을 벌려, 태양보다 뜨겁고 순수한 성스러운 화염을 토해냈다. 불길은 백면을 덮쳤고, 남산 타워 꼭대기를 하얗게 불태웠다.


[크아아아악!]


백면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의 하얀 도포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여 타들어가고,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하얀 가면에도 검게 그을린 흉측한 균열이 생겼다. 하지만 백면은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남산의 지맥을 통해 끊임없이 검은 기운을 빨아들이며 타들어 간 몸을 재생하고 있었다.


“지금이에요! 엄마를 구해야 해요! 해치님이 놈을 묶어두는 동안!”


하진이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해치를 현세에 붙들어두는 것은 그녀의 생명을 실시간으로 태우는 일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알겠소! 이강우 씨, 엄호해 줘요! 내가 서미령 씨를 데려오겠어!”


윤도진이 서미령이 묶여 있는 십자가 형틀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맡겨만 둬! 쥐새끼 한 마리도 못 지나가게 할 테니까!”


이강우는 몰려드는 잡귀들과 그림자 괴물들이 윤도진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양손에 단검을 쥐고 춤추듯 휘둘렀다. 그의 칼날이 지나간 자리마다 괴물들이 비명과 함께 재가 되어 사라졌다.


윤도진은 형틀에 도착했다. 서미령은 여전히 백면의 주술에 걸려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알 수 없는 주문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서미령 씨! 정신 차리십시오!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윤도진이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녀를 묶고 있는 검은 밧줄은 물리적인 칼로는 끊어지지 않는 주술의 산물이었다. 밧줄 자체가 그녀의 생명력과 연결되어 있어 함부로 끊을 수도 없었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하진이 다급하게 외쳤다.


“형사님! 옥 조각을... 제 옥 조각을 엄마 가슴에 대주세요! 문지기의 힘으로 주술을 풀어야 해요!”


하진은 결계 안에서 자신의 품에 있던 옥 조각을 꺼내 던졌다. 푸른빛을 내뿜는 옥 조각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와 윤도진의 손에 정확히 떨어졌다.


윤도진은 옥 조각을 서미령의 가슴, 심장이 뛰는 곳에 갖다 댔다. 옥 조각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눈부신 빛을 냈다.


“풀려라! 제발!”


파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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