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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이네집 Oct 09. 2020

천국과 지옥 사이 어딘가에서

-‘이게 정말 천국일까’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고향옥 옮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방을 청소하다 발견한 할아버지의 노트에는 재미있는 글과 그림이 가득합니다.      


그림책 '이게 정말 천국일까'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고향옥 역, 주니어김영사>

‘다시 태어나면 되고 싶은 것’이라는 제목 아래에는

-부잣집 고양이

-막내

-예쁜 꽃나무

-동물원의 코알라

-가방 등이 그려져 있고,      


‘천국은 이런 곳’ 제목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할멈이 있다

-화장실에서 멋진 경치가 보인다

-만나는 사랑마다 칭찬해준다

등이 있다.     


‘심술꾸러기 영감이 가는 지옥은 이런 곳’에는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다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뭘 해도 혼난다

-잠자기 전에 슬픈 이야기를 듣는다.

등이 그려졌다.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어딘가 마음 찡해지기도 하는 글과 그림이 이어진다.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방법’에는

-달이 되어

-지나가는 아기가 되어

-목욕탕 의자가 되어

-바람에 빙글빙글 날아다니는 비닐 봉지어 되어

등이 있다.      


할아버지의 공책을 읽으며 아이는 ‘가슴이 마구마구 뛰’고, ‘나도 천국에 가고 싶’어질 정도다. 할아버지가 죽음을 즐거워했을지, 무서워했을지 고민하던 아이는 할아버지처럼 공책을 써 보기로 한다.     

 

‘으음, 나는 천국에서 뭐 할까……

나는 죽은 뒤의 일을 생각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살아 있는 지금 하고 싶은 일들만

자꾸자꾸 떠오르지 뭐예요,’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이렇게 귀엽고 흥미롭게 할 수 있을까? 사는 게 슬퍼질 때, 죽음 앞에 무력해질 때, 팽팽한 삶의 줄다리기에 지쳐갈 때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죽음 앞에선 인간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이가 아닐까. 생을 마친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각난다. 2019년 봄 친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조부모님 네 분이 모두 돌아가셨을 때 태어나고 죽어가는 삶의 속성에 대한 상념에 잡혔었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지만 조부모의 죽음은 이제부터 부모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어떤 신호 같기도 했다. 요스타케 신스케의 ‘이게 정말 천국일까’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노트를 보는 아이는 할아버지의 죽음과 죽음 너머의 세계와 생의 의미에 대해 접근해 가고 있었다.

살아있으려는 지난한 노력이 덧없음과 치열함 사이에서 종횡할 때 가끔은 여기가 바로 지옥이구나 싶지만, 고단한 살아감 속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을 자꾸 끌어올려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야 함을 되새긴다. 여전히 삶은 풀기 어려운 숙제같지만, 답을 찾기 힘들 때마다 이 책을 펼쳐 희미한 미소를 먼저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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