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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강인성 Jun 29. 2021

작은 나사를 위한 위로

나사이며 고귀한 존재인 당신을 위해

 업무 특성상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등기소를 가게 된다. 모든 관공서가 그렇겠지만 등기소 역시 9시부터 6시까지 모든 시간에 사람이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오후 2시쯤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사람이 많은데, 어느 정도냐면 주차장에 들어가는데만 30분이 걸리는 정도이다. 전에 한 번은 점심시간이 끝난 직후인 한시에 방문을 했었는데, 창구 앞에 쳐진 커튼이 채 올라가기도 전에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줄을 선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등기소에 서류 접수 신청을 하고 대기를 할 때면 그 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동물원처럼 설치된 유리벽. 그 안에서 쉼 없이 서류를 넘기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들기는 사람들. 혹시 그들의 표정을 본 적이 있는가? 마스크를 끼고 있어 정확히 볼 순 없지만 그들의 얼굴에선 표정이라 할만한 것을 찾을 수 없다. 아무런 표정 없이 서류를 넘기고, 모니터를 보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들. 그런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하나의 나사가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아주 작고, 정교한 나사 말이다.

 전자제품을 조립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보통 나사는 네 귀퉁이를 고정하기 위해 네 개씩 쓰곤 한다. 그리고 그 네 개의 나사를 모두 푼 후 다시 조립하려고 보면 꼭 하나씩 사라져 있다. 그 나사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 딱히 찾을 필요가 없다. 그냥 사이즈가 같은 나사를 하나 찾아 쓰면 된다. 그렇게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나사 하나는 분명 소파 밑 어딘가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고정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버려져도 상관없는 작은 나사.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어도 전혀 상관없는 저 사람들. 문제는 저 모니터 앞의 무표정한 사람들은 나사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버려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더욱 단단히 고정한다. 어쩌면 공무원은 다른 나사에 비해 꽤나 단단하게 박혀있는 나사 중 하나이니 다행인걸지도 모르겠다.

 슬펐다. 슬프고 안쓰러웠다. 그런 기분이 들어 그들을 그저 바라보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당신. 당신은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임이 틀림없는데, 어찌 작은 나사처럼 거기 박혀 있나요. 나사가 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한 삶은 어떤가요. 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삶은 어떤가요.’

 기다리던 서류가 나온다. 애써 미소를 보이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수많은 사람을 뚫고 등기소 밖으로 나온다. 일이 많다. 얼른 우체국으로 가서 서류를 등기로 넘기고, 사무실로 돌아가서 남은 일을 처리해야 한다. 남은 일을 어떤 순서로 처리할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괴롭힌다. 방금의 애틋한 감정은 온데간데 사라진다.

 차를 탄다. 뜨겁다. 시트의 열기에 엉덩이가 대일 것 만 같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욕과 함께 에어컨을 제일 강하게 튼다. 이제 좀 나가려나 싶었는데 혼잡하기 그지없는 주차장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에선 누군가 나가려 하고 오른쪽에선 누군가 들어오려 한다.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겨우 한 대를 보내고 나가려는데 또 누가 들어온다. 또 다른 욕이 내 입에서 튀어나온다. 이 빌어먹을 등기소엔 어찌 이렇게 짜증만이 가득 하단 말인가.

 기진맥진한 상태로 사무실로 돌아온다. 운전 중 밀려온 졸음에 아직도 정신이 멍하다. 등기소에서 때 온 서류를 과장님에게 넘긴다. 과장님의 눈이 부어 있다. 아마 방금 까지 꾸벅꾸벅 졸다가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깬 모양이다. 과장님 앞자리의 경리는 할 일이 산더미인지 눈도 안 때고 내게 인사한다. 그런 경리에게 미소 지으며 인사하고 손을 닦기 위해 화장실로 간다. 비누로 꼼꼼히 손을 닦은 후 거울을 본다. 작은 나사가 보인다. 남들보다는 조금 느슨하게 조여져 있지만, 나름대로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열심히 매달려 있는 작은 나사. 이 작은 나사가 곧 나이다.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 그 존재가 바로 나이다. 거울 속의 나에게 말을 건다.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로서 너에게 말한다. 그대 작은 나사로서의 삶은 우주 전체의 시간 중 아주 미약한 시간에 불과하니, 버티거라. 미약한 시간 속에서 나사로서 최선의 삶을 살아라’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여. 이건 버티는 게 아니오. 그대 삶의 시간 속에 내 삶의 시간이 함께이거늘. 그러니 그대는 고귀함과 존엄함을 잃지 마시오. 내 삶이 그대와 일치할 수 있도록 스스로 밝게 빛나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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