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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주의자 그녀,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그를 만나다

서로를 설득할 수 있다 자신했던 오만한 청춘들

by 다움 Mar 06. 2025

우리는 꽤 오래 친구였어요.

친구로서 4년이라는 시간이 쌓였을 때 즈음, 우리의 관계는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재정의되었습니다.

친구로서 우정을 다져온 시간 덕분에 우리는 서로에 대해 꽤나 잘 알고 있었어요.


우리는 서로가 그리는 미래가 다른 것도 알고 있었지요.

그리고 연애를 시작하면서 각자가 그리는 미래에 대해 다시 한번 못부터 탕탕 박고 시작했습니다.

"오빠, 알지? 나는 비혼주의자야."

"그럼 알지, 너도 알고 있지? 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게 인생의 목표야."



원하는 미래가 다른데 어떻게 그걸 알고도 연애를 시작할 수 있었냐구요?

첫 번째 이유는 결혼을 아주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어린 나이였기 때문이에요.

당장 이 사람이 좋은데, 설레는데 한참 멀어 보이는 그 미래가 무슨 걸림돌이 되겠어요 크크


그리고 두 번째 이유도 있었어요.

우리 둘 모두 내가 바라는 미래로 상대를 데려올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기 때문이죠.

지금은 누군가의 생각이란 건 내가 원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아요.

특히 이렇게 가치관과 맞닿아 있는 생각이라면 더욱 나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걸요.

하지만 20대의 우리는 참 오만한 청년들이었어요.

그래서 상대의 생각을 변화시켜 내가 원하는 미래로 결국은 가게 될 거라고 자신만만했습니다.



오만한 두 청년은 함께 시간을 쌓고 마음을 쌓았어요.

연인이 된 첫 해에는 둘 다 대학생이었기에 도서관 데이트를 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어요.

특별한 데이트도 아닌데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산책하고 저녁을 먹는 그 일상이 참 즐거웠네요.


그다음 해에는 먼저 사회인이 된 그 덕분에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여행도, 놀러도 참 많이 다녔습니다.

그리고 또 1년이 흘러 그녀도 사회인이 되었지요.

그의 축하를 받으며 시작한 일은 그녀와 참 잘 맞았어요.

덕분에 그 해의 그녀는 일도, 사랑도 참 안정적이라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그로부터 더 많이 받고 있었던 마음과 시간, 돈을 이제는 그에게 더 많이 주고 싶었어요.

지금껏 그녀를 향한 그의 마음이 그녀의 마음보다 월등히 컸다면 점점 그 크기가 비슷해지는 듯했습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깊어진, 서로를 완전히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4년 차 연인.

5월이 된 어느 날, 그의 표정이 꽤 오랫동안 어두웠어요.

이유를 묻는 그녀에게 그는 지금 맡고 있는 일들이 본인과 너무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그녀는 그가 너무 걱정되었습니다.

평소 '일은 일이지 뭐~'하던 그가, 늘 여유롭고 낙관적인 그가 아주 심각해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결정을 하든 응원해 주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에게 '난 오빠가 하는 결정이면 모두 진심으로 응원해. 지지해.'하고 자주 이야기했어요.


그는 일에 대한 걱정과 엮어서 결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면 결혼할 때 후회할 수도 있겠다는 그런 이야기 말이죠.

비혼주의자인 그녀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 안 맞으면 그만둬.'하고 답했고요.



그렇게 한 달 정도 그의 표정이 계속 어둡던 5월, 그 달 우리는 여행을 앞두고 있었어요.

우리의 3주년 기념으로 광주에 여행을 가기로 했지요.

좀 더 여행의 기분을 내기 위해 특별히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했고요.


공항에 일찍 도착해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의 표정이 계속 어두운 거예요.

여행을 가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그녀는 이야기했어요.

'오빠, 그냥 회사 그만둬! 그렇게까지 힘들면 그만두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는 '아.. 그런 거 아니야. 회사 일 때문 아니야.' 하고 답했고요.

그녀는 '그럼 대체 한 달 내내 이렇게까지 심각하고 어두울 이유가 뭐야?'하고 다그쳤어요.

그는 '여행이 끝나고 이야기할게.' 하고 답을 미루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판도라 그 자체였어요.

안에 들어있는 게 무엇인지 모르더라도, 직감상 열면 안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느껴져도 꼭 그 상자를 열어봐야 하는 그런 사람이었죠.

'그냥 지금 이야기해줘. 나 답답한 거 못 참는 거 알잖아!'



그렇게 판도라 상자는 열렸습니다.

그녀의 귀에 이런 이야기가 들려왔어요.

"사실... 결혼에 대한 고민이야.

당신의 미래에 여전히 결혼이 없다면 우리가 계속 함께하긴 어려울 것 같아.."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녀는 벙쪘습니다. 현실감이 전혀 없었어요.

잠시 벙찐 후에 '와, 이런 걸 청천벽력이라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고요.


나 아니면 절대 안 된다던 해바라기 같은 그, 나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으로 대해주던 사랑 가득했던 그.

그런 그였기에 당연히 그녀가 그리는 미래로 조금씩 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를 평생의 동반자로 선택해 동거라는 형태로 살아가는 그 미래로요.

'그는 나를 놓을 수 없기에 결국 나의 미래로 올 거야' 하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의 그 한 마디로 그녀의 확신은 와장창 깨졌습니다.

그리곤 그녀의 머릿속에는 한 단어로 가득 찼지요.

그 단어는 '이별'


아.. 우리 이렇게 이별하는구나..

그를 잃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그리고 있는 미래는 확고했어요.

그러니 둘에게 다른 결론은 없었죠.

오만한 두 청년이 미루어두었던 숙제가 폭탄처럼 현실로 떨어진 거예요.


그녀는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게 만든 그가 원망스러웠어요.

그리고 우리의 3주년 여행은 갑자기 이별 여행이 되는 듯했습니다.



To be continued..

[Next → :우리의 이별 여행.. 그리고 시간을 가지게 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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