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New Year!
2019년 말, 이민 온 지 3개월이 채 안 되어 모든 신분 문제(영주권, 소셜 카드, 운전면허)가 해결되는 기적을 체험했다. 신분 문제로 수년간 마음 졸이며 미국 땅을 뜨지 못한 친구들도 있는 걸 보면 미국이 우리 가족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고국을 떠나온 남편은 갈고닦은 이력서를 여기저기 열심히 뿌려놓았고, 결과를 기다리며 우리는 따뜻한 남쪽으로 로드 트립을 떠나기로 했다. 애틀란타에 사시는 나의 삼촌댁에서 이틀을 지내기로 하고 시카고에서 내려가면서 하루, 애틀란타에서 올라오며 이틀을 각각 다른 도시에서 묵으며 구경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여행을 가도 되나 고민도 되었지만, 갈까 말까 망설일 때는 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새로운 곳에 옮겨심긴 우리 가족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심리적 계정을 열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하룻 저녁을 지내고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이틀, 올라오면서 테네시주 내쉬빌에서 하루,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하루를 보내고 시카고로 돌아오는 대장정이었다. 아기자기하게 예뻤던 루이빌, 세련된 한인타운이 있는 활기찬 대도시 애틀란타, 컨트리 음악의 본고장답게 볼 것도 많고 힙한 분위기가 좋았던 내쉬빌, 어마어마한 어린이박물관이 인상적이었던 인디애나폴리스까지... 남쪽으로 운전해 내려가면서 날씨가 점점 따뜻해져 티셔츠 바람으로 다녔는데, 다시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기온이 쭉쭉 떨어지더니 인디애나폴리스부터는 눈발까지 날려 다시 발목까지 내려오는 패딩을 꺼내 입었다. 우리가 이민 온 미국 땅이 정말 광대하다고 느꼈고, 워낙 여행을 즐기는 우리는 어서 자리 잡고 틈틈이 미국 곳곳을 누비고 다녀보자며 결의를 다졌다.
2019년 12월 31일 저녁에 대장정을 마치고 시카고로 돌아와 바로 다음날 2020년 새해를 맞았다. 설날에는 아이들 한복을 챙겨 입혀 형님의 부모님 댁에 가서 세배를 했다. 갈비찜, 전, 굴비, 동치미, 떡만둣국 같은 귀한 명절 음식을 시카고 식구들과 함께 나누며 고국에 두고 온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올렸다. 남편의 직장이나 우리의 정착지가 전혀 정해지지 않았던 그때, 희망과 기대 반, 두려움과 걱정 반으로 2020년을 열었다. 불과 1년 전 일인데 까마득한 옛날 같이 느껴지는 건 지금의 삶의 모습이 그때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2020년은 모두에게 참 버거운 한 해였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이민 생활의 모든 면에서 첫 발을 뗀 특별한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남편의 첫 번째 화상 인터뷰, 시카고에서 처음으로 출근해본 작은 사업체, 첫 번째 현장 인터뷰와 취직, 처음 해본 국내 이사와 우리의 첫 보금자리, 메릴랜드 집에서 끓여먹은 첫 라면, 상자를 엎어놓고 먹었던 첫 식사, 첫 차, 첫 출근과 첫 월급, 첫 온라인 예배, 첫 온라인 수업, 처음 만난 이웃들, 첫 축구 경기, 첫 브런치 글, 새로운 곳으로 와서 맞이한 첫 생일들, 첫 펌킨 패치와 애플 피킹, 첫 할로윈, 첫 추수감사절, 첫눈, 첫 크리스마스... 이 모든 게 처음인 데다가 처음 겪어보는 코로나 방식의 생활에도 적응해야 했다.
그러나 직업도 집도 차도 없이 춥고 가난했던 시카고의 겨울을 버텨낸 우리는 경험치만큼 맷집이 제법 세져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보다는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 때문에 불편해진 생활에 불평하기보다는 코로나 덕분에 누리게 된 잔잔한 일상에 감사하며 지냈다. 펄떡펄떡 뛰는 장어 같은 두 아들과 집콕하며 삼시세끼 밥 차려 먹으며 온라인 학습을 매니지 하는 코로나 일상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딱 하루만이라도 휘리릭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적도 있었다. 까딱하다간 미쳐버리겠구나 싶던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작은 계기로 다시 일어서 일상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신기한 은혜였다. 몸도 마음도 지쳐가던 지난여름에는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답답함이 서서히 해소되기 시작했다. 평범하고 지루했던 일상에서 의미와 소재를 건져 올리고 소통하는 기쁨을 누리며 오히려 힘이 나기도 했다.
2020년 봄 이후 내 시계는 멈춰있는 것 같은데, 불과 몇 달 전 사진들만 뒤적여보아도 그간 아이들이 참 많이 자란 것 같다. 입에 음식을 꼭 물고 삼키질 못하던 말라깽이 큰아들은 밥을 두 공기씩 먹어치우며 늘씬한 소년으로 쑥쑥 자라고 있다. 두 돌이 넘도록 두세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엄마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던 둘째는 이제 낮잠도 떼고 밤에 잠들면 아침에 일어나 내려오는 기특한 어린이가 되었다. 형아가 하는 건 무엇이든 자기도 해 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옷도 양말도 신발도 스스로 골라 신고 빨래와 청소도 제법 야무지게 돕는다. 한국 아저씨가 다 되어가던 남편은 어느덧 이곳 직장 생활에 적응하고 미국과 한국 사이에 다리를 놓으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살림이나 요리에 딱히 취미가 없던 나는 미국 이민 1년 남짓 만에 김치도 담그고 갈비찜도 만들고 칠면조와 햄도 굽는 진짜 주부가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로 어디를 갈 수도, 누구를 초대할 수도 없었던 연말연시였지만, 차분하게 정리하며 푹 쉴 수 있어 감사했다. 다음 일정도, 가야 할 곳도, 만날 사람도 없어지고 나니 빨리 가자, 빨리 먹어라, 아이들을 재촉하지 않아도 되어 여유로웠다. 2021년은 2020년과 다르기를, 완전히 새로운 한 해가 되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혹시 그리 아니 될 지라도, 압도당하거나 낙심하거나 주저앉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1년 새해에도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가 코로나 덕분에, 내 삶과 우리 가정의 일상 속에서 잔잔한 은혜와 선물들을 발견하며,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도전하는 시도를 계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