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마지막으로 업로드한 글이 2021년 3월 15일 자인걸 보니, 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2년 전 내가 써놓은 글을 읽고 있자니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느낌이다. 하루종일 파자마 바람으로 온라인 수업을 듣던 큰아들이 학교에 간다고 만세삼창을 하던 내 모습이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지난 시간 동안 참 많은 것이 변했고, 우리 가족은 뿌리째 옮겨심긴 이곳 미국 메릴랜드 땅에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가고 있다.
이제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는 코로나를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독감이나 심한 감기 정도 걸린 것으로 취급하고, 알아서 격리하고 증상이 없으면 바로 일상으로 돌아온다. 실내든 실외든 마스크를 쓴 사람은 잘 보이지 않지만, 유독 한인교회에서는 50% 이상이 마스크를 쓰는 것 같다. 재택근무를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일터로 돌아가 출퇴근 길은 전처럼 막히지만, 또 출퇴근을 하지 않는 삶의 편리함을 맛본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일부 재택근무 형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영알못이던 큰 아이는 어느덧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고, 올해 8월 중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라는 걸 다들 믿기 어려워할 정도로 모든 면에서 현지 적응을 해버렸다. 아이가 영어를 못해 힘들어할 때 먼저 건너오신 구독자 분들이 말씀해 주신 대로, 어느덧 영어보다는 한국어 유지가 더 큰 이슈가 되고 있다. 형아가 일주일에 이틀씩, 나흘씩 학교를 가고도 한참을 더 집에서 엄마와 붙어 지내던 둘째도 작년에 교회부설 Pre-K에서 1년을 보낸 뒤 공립학교 K학년에 입학했다. 그래서 이번 학년도는 첫째와 둘째가 스쿨버스에 타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첫 해이자 마지막 해가 되었다. 스쿨버스에 아이들을 태워 보내며, 또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맞으며 하루하루가 간다. 분명 내 눈앞에 있는데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 가는 게 신기하고 놀랍고 많이 아쉽다.
또 우리 가족은 하얗고 반짝이는 큰 주방이 있던 집 건너편에 비슷하게 생긴 집을 사서 이사를 왔다. 우리 부부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동네에 들어와 살게 된 것 같았고, 살아볼수록 이 동네에 정착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코로나 시대 제로 금리 덕분에 유동성이 넘치고 투기적으로 부동산을 사들이는 사람들이 이곳에도 생겨났다. 중국인, 인도인들은 올 캐시로 프리미엄을 주고 주변의 괜찮은 집들을 차지하기 시작하고,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올라있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올라버린 가격에 집을 사는 것이 맞는 걸까 하루에도 수십 번을 고민했지만 이런 추세라면 렌트도 같이 올라갈 게 분명했고, 무엇보다 하루빨리 내 집, 내 동네에 정착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 일을 저질렀다. (이 이야기는 브런치북 한 권 거리인데 기회가 된다면 차차 풀어보리...)
아이들 뒤치다꺼리와 네 식구의 삼시세끼, 대륙 사이즈에 맞게 커져버린 살림에 익숙해지느라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제 이런 것들을 매니지 하는데 (가끔 귀찮기는 해도) 큰 어려움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2021년부터 살살 시작하게 된 여러 가지 일들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고, 이민 오기 전부터 한국에서 하던 일들도 다시 연결이 되어 하고 있으며, 한국과 미국에서 새로 시작하게 된 일들도 있다. 예전에 하던 일과 새로운 일들을 합치면 대여섯 가지가 되는데, 큰 카테고리로 보면 글 쓰는 일과 가르치는 일이다.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N잡러'의 시대라는 말을 들었는데 내가 바로 그렇게 살고 있다. (이 이야기도 브런치북 한 권 거리...)
많은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이 우리 집과 이 근처에 다녀가며 교제를 했고, 또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새로 사귀게 되었다. 코로나가 풀리면서 여행과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주변의 여러 곳들을 다니며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작년에는 더 늦기 전(정확하게는 큰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어 만사에 시큰둥해지기 전) 미국에서 캠핑을 시작한다고 부산을 떨기도 했다. 떠나온 친정 같은 시카고에도 다시 가보았고, 떠나온 고향 한국에도 잠시 다녀왔다. 여러 곳들을 다니며 느낀 감정들도 바쁜 일상을 핑계로 정리하지 못한 채 기억 속에서 점점 흐릿해져 가고 있다.
무려 2년 동안 글을 한 편도 발행하지 않았는데도 구독자들이 조금씩 늘어났고, 가끔 진심 어린 따뜻한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감사했다. 그동안 쌓인, 지금도 쌓이고 있는 글감들이 많은데 천천히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얼마 전 한 줄 한 줄 깊이 공감하며 읽었던 김혜남 작가의 베스트셀러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스페셜 에디션 서문에서 이런 시를 읽었다. 나딘 스테어 할머니가 85세에 쓰셨다는 시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일부를 옮겨 적어본다. 내 마음은 늘 이런데. 나는 오늘도 이렇게 살고 있는가?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용감히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느긋하고 유연하게 살리라.
그리고 더 바보처럼 살리라.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더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더 많은 산을 오르고, 더 많은 강을 헤엄치리라.
아이스크림은 더 많이 그리고 콩은 더 조금 먹으리라.
어쩌면 실제로 더 많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거리를 상상하지는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