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제 글에서는 채용공고를 분석하여 현재 기업들에서 프로덕트 매니저에게 요구하고 있는 역량을 살펴보았습니다. 중간에 우스갯소리 처럼 썼지만 프로덕트 매니저는 정말 이것저것 조금씩은 다 잘 할 것을 요구받는 제너럴리스트 직무라는 것이 실제 채용공고에 대한 정량 분석 결과로도 드러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부분이었습니다.
한편 '우대사항'을 살펴보면 전체의 1/4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영역을 볼 수 있었는데, 바로 도메인 지식입니다. 도메인 지식은 특정 '산업'에 대한 이해를 뜻하는 것입니다.
채용공고에서 '자격요건'이란 통상 기본기를 뜻하는 것이고, '우대사항'은 다른 후보와 구분되는 차별화 포인트를 뜻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우대사항으로 도메인 지식을 갖췄는가를 가장 많이 따진다는 것은 그것이 평범한 PM과 성과를 내는 PM을 가르는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라는 추론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도메인 지식이 PM의 레벨을 가르는 역량이 되는 것일까요?
1. 특정 IT 분야는 전문지식을 요구한다.
첫 번째 이유는 다루게 되는 기술들이 전문지식 영역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경우입니다. 가령 요즘 뜨고 있는 AI 프롬프트 서비스나 블록체인 분야 등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LLM, Web3 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면 프로덕트의 방향성 자체에 대해 이해하기까지 러닝 코스트가 들게 되며 무엇보다도 개발자와 협업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런 분야들을 사용하는 코드나 서버 구조 등도 통상적인 웹/앱서비스와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웹/앱 개발환경에 익숙한 PM일지라도 당황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2. 고객의 특성을 잘 이해할 수 있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기업의 메이커들 중에서 누구보다 고객의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객은 세상에서 애인 다음으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존재 같습니다. ㅋㅋ) 도메인 지식이란 말에는 시장 트렌드와 히스토리의 맥락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고객의 '진짜 문제'를 찾아낼 수 있는 통찰력이 함의되어 있습니다. 같은 이커머스라도 패션 이커머스에서 고객이 겪는 문제점과 신선식품 이커머스에서의 문제점은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심지어 같은 고객 페르소나를 설정하더라도 말이지요.
비슷하게, B2B에 대한 이해나 드물게는 B2G 서비스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에서 다루는 고객은 아무래도 B2C 프로덕트의 고객과는 접근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3. 비즈니스적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흔히 IT기업에서 '메이커'라 불리는 집단, 즉 프로덕트 팀에서 PM이 고유 R&R로 가져가게 되는 것은 비즈니스적 판단입니다. 글 초반에 이야기 했듯이 PM은 뭐든 조금씩은 다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개발적으로는 프로덕트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개발환경은 어떠한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프로덕트 기획이 가능합니다. 디자인적으로는 UX, UI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디자이너와 논의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메이커들 안에서 일하며 데이터와 유저플로우에 파묻혀 있다보면 PM의 중요한 본질을 놓치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PM이 회사의 비즈니스와 메이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유일한 직무라는 점입니다. 최근 메이커 팀의 역할이 세분화 되며 TPM, 데이터분석가, UX Writer 등의 직무를 팀에 포함시키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스크럼마스터를 따로 두어 애자일 프로젝트 관리를 하는 기업도 예전부터 있어왔지요. 그러나 고객문제를 정의하는 일과 더불어 전사의 비즈니스 목표와 프로덕트 팀의 목표를 얼라인하는 업무는 PM의 고유 업무로 남아있다고 보여집니다.
회사는 '기똥찬 프로덕트'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결국 회사의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고 프로덕트는 그 수단입니다. 매출을 일으켜 이익을 만들어내든, 좋은 지표를 만들어 투자를 받아오든 현금흐름이 일어나야 회사는 생존할 수 있습니다. 현 단계에서 회사의 수익모델이 어떻게 되는지, 그것이 시장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비즈니스적 마인드는, PM 언어로 표현할 때, '우선순위 정의'에서 반드시 필요한 역량입니다. 왜 지금 이 인적, 물적 리소스를 이 기능에 투입하는지 PM은 무엇보다도 비즈니스적 논증과정을 통해 정당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타트업에서 적은 리소스로 최대한의 결과를 낼 방법을 궁리하다보면 항상 저 스스로의 비즈니스적 판단력이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 마인드는 PM에게 필요한 역량을 논할 때 UX/UI, 개발지식, 데이터분석 등에 비해 잘 부각되지 않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PM으로 직무전환을 한 뒤로 그러한 프로덕트 메이커 환경에 적응하느라 급급했었죠.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게 태산입니다...)
하지만 결국 타인과 차별화 되어 회사에 유의미한 성과를 가져다주는 PM은 비즈니스적 통찰력을 지닌 PM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항상 몸 담고 있는 도메인에 대해 공부하고, 그 외에도 다양한 산업 분야에 대한 트렌드를 확인하며 성장을 멈추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