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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Me Sep 13. 2021

아들의 첫 번째 받아쓰기

 나와 남편은 경쟁이 덜한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시골로 이사와 집을 지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아파트 단지보다는 조금 더 자연 속에서 아이가 크는 것을 바랐기도 했고, 나처럼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타고난 성격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내 학창 시절은 성적표에 적힌 등수가 많은 것을 차지했다. 그래서 내 아이는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나라 교육체계를 피하려면 이민을 가야 하지만 ( 실제 이민을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도 있다), 그렇게까지는 못해도 시골에서 살면, 도시보다는 조금 낮지 않을까 싶었다.


 너무 공부와 경쟁에만 치우친 환경에서 벗어나, 유년시절에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어서 지금까지 아이에게 학습지 한번 시키지 않았고, 문제집 같은 것도 사주지 않았다. 학원도 피아노 학원 다니는 게 전부이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한글을 가르쳐서 보내야 하나 고민을 조금 했는데, 본인한테 물어보니 배우기 싫다고 해서 한글도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아이를 그냥 보냈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이라 그런지 크게 문제 되는 것 없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학기가 되니 받아쓰기 시험을 본다고 선생님께 알림장이 왔다. 한 학기 동안 학교에서 한글을 배워온 것 같기는 한데 얼마나 잘 읽고, 쓰는지 확인해보지는 않았었다. 선생님께서 시험 전에 충분히 연습시키고 본다고 쓰셨길래 무심한 나는 아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문제는 받아쓰기 시험 전날에 벌어졌다. 같은 반 어머니 중에 한 분이 받아쓰기 가지고 있으면 보내달라고 메시지가 온 것이다. '받아쓰기는 내일 본다는데 뭘 보내달라고 하시는 거지?' 하고 생각했는데, 다른 어머니가 받아쓰기 문제를 보내주셨었다. 그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띵해졌다. 선생님은 12주 동안 받아쓰기 시험 볼 내용을 적은 '받아쓰기 급수표'를 코팅해서 아이들 책가방 속에 넣어주고 집에 가져가도록 하였는데, 아들은 그것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한 번도 집으로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다. 첫 아이여서 요즘 받아쓰기가 그렇게 진행되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갑자기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알아서 잘할 거라 아무 생각 없었는데, 시험에 답이 있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때는 8시가 막 지난 시간이었다. 조금 있으면 자러 가야 할 시간인데, 나는 아들을 닦달해 책상에 안히고 받아쓰기를 시켜 보았다. 학교에서 여러 번 써봤다고 했는데, 보고 쓰기만 해 보고 받아써본 적은 없단다. 그래서 많이 틀리진 않았지만 받침 한두 개씩 틀려 완전히 맞게 쓴 문장은 두세 개밖에 없었다. 틀린 곳을 다시 쓰게 하고 세 번 정도 반복했다. 갑자기 엄마 분위기가 바꿔서 그런지 평소 같았으면 하기 싫다고 발랑 뒤집어졌을 텐데 웬일로 시키는 대로 받아쓰기를 했다.


 다음날 아침 먹으면서 한번 더 문제를 보여주고 잘 갔다 오라며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학교 가면서 한번 더 불러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입을 꼬집으면서 참았다. 오후에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까지 실수는 하지 않았을까 많이 틀렸으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하교 후 만난 아이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받침 하나 실수했는데, 선생님 발음을 잘못 들었다며 자기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속으로 얼마나 안도가 되었는지 모른다. 어젯밤부터 아이의 시험 결과를 들을 때까지 마치 수험생의 엄마가 된 것 같은 심정이었다. 아니 받아쓰기가 뭐라고 이런 마음이 드는 거지? 처음이라 그랬던 것 같기는 했지만, 받아쓰기 시험에 내가 이렇게 집착할 줄이야! 그러면서 무슨 경쟁을 안 시키고 공부를 안 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단 말인가!  


 아들이 공부에 뜻이 없다면 그 또한 받아들이리라 생각했었다. 억지로 공부시키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아들을 키우면서 나도 몰랐던 것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들이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마음 말이다. 난 그런 생각 안 한다고 늘 쿨하게 말하고 다녔었는데, 그게 허울뿐인 가식이었음을 이번 기회에 깨달았다.

 

 그 마음은 자식을 위한 마음이 결코 아니다. 어찌 보면 학창 시절 공부를 조금만 더 잘했으면 했었던 내 마음이 고대로 반영된 것도 같다. 나보다 상대적으로 공부를 훨씬 잘했던 남편은 절대 아들의 공부를 언급하지 않는다. 나처럼 열등생이었던 적이 없어 그런 마음이 안 드는 것 같다. 순간 난 너무 창피해졌다. 열등생의 추한 마음을 아들에게 반영해서 결과를 얻고자 했다니 말이다.  

 

 내 자식은 내가 아니다. 그 아이가 받는 성적표는 내 것이 아니다. 그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기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지만 한다. 사람마다 각기 자기가 하는 생각이 다 다르다.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면서 점점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내 아들도 내가 아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 내 생각을 그 아이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


  아들이 커갈수록 내 마음도 같이 성장해 간다. 매일 조금씩 나은 어른이 되어 간다. 아들은 내게 사랑과 기쁨을 줄뿐더러 삶에 대한 깨달음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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