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하던 드라마가 끝나서 몇일 동안 집에 갔다. 여기서 말하는 집은 독산동에서 보증금에 월세를 매달 내는 집이 아니라 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말한다. 둘 다 집이지만 뭐가 더 집인지는 모르겠다.
영주에는 엄마와 아빠가 살고 있고 고모와 고모부, 내 친구 예진이 등이 살고 있다. 산과 강을 끼고있는 강변아파트. 내 방은 침대 대신에 큰 행거와 잘 안입는 옷들이 잔뜩 걸려 있다. 의자는 없어진지 오래고 책상위에는 다시마와 미역, 아궁이에 나와서 유명해진듯한 대량의 새싹보리 가루와 노니가루, 각종약들이 박스째로 있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있으면 엄마가 밥을 차리면서 날 깨운다. 엄마는 늦잠자는 나를 보며 꽤 나쁜 말들을 쏟아 냈지만 새밥을 지어줬다. 냉동실에 꽁꽁 얼려두었던 두꺼운 갈치를 구워주기도 했고 콩을 삶고 잣을 갈아서 내가 먹고싶다고한 콩국수를 직접 만들어 주었다. 계란후라이 두개와 집에 있는 반찬을 넣어 비빔밥을 해먹자고 하면 아침부터 박나물, 호박볶음 등 각종 나물을 볶아 주었다. 낮잠을 많이 자서 잠이 안오는 새벽에 냉장고 문을 열면 반찬통에 가지런히 수박이 썰어져 있었고 봄에 딴 산딸기로 만든 쨈과 엄마가 발효시킨 요거트가 있었다.
엄마의 건강검진이 끝나고 진작 집에 오려고 했지만 엄마는 소고기를 구워줄테니, 치킨을 시켜줄테니, 부침개를 구워줄테니 내일가라고 했다. 그렇게 몇 일을 더 늦잠을 자고 낮잠을 자고 새벽에 냉장고를 열어 반찬통 속 썰어진 수박을 꺼내먹었다.
엄마는 내게 부적을 주면서 꼭 집에가서 배게 밑에 넣으라고 했다. 그리고 새해에 잊지말고 챙겨오라고 했다. 워낙 잘 잊어먹는 내게 신신당부를 했고 배게를 꼭 잘 배고 자라고 했다. 엄마는 그 부적에 무슨 염원을 담았을까? 내가 내게 바라는 염원과 절대 같을 수 없겠지? 그래서 부적은 엄마의 염원과 나의 염원 그 어떤 염원도 이뤄주지 않는 걸까? 도대체 그 말도 안되는 부적은 얼마를 주고 사는 걸까? 엄마의 불안이 덜어진다면 얼마를 주고 삿든 제 값어치를 하는 것이려나. 나는 가끔 고슴도치같은 말을 내 뱉고 엄마의 눈가를 축축하게 만든다. 나는 아마 죽으면 지옥에 갈지도 모르겠다.
집에 갈 짐을 싸고 있는 내게 아빠가 용돈을 줬다. 낼름 받아서 엄마에게 몰래 줬다. 아빠한테는 비밀이다. 이미 아빠는 나를 배신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엄마는 또 하루만 더 있다가라고 했다. 벌서 다섯 번째다. 나는 서울에와서 자전거도 고쳐야 되고 출근할지 안 할지모르겠지만 준비도 해야하고, 운전면허증도 찾으러 가야하고 치과도 가야한다. 엄마도 내가 가고나면 세용이 아줌마 밥도 사줘야하고 봄이 아줌마 집에 놀러도 가야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하루만 더 있다 가라고 했다. 가방을 챙겨 콜택시를 불렀고 엄마는 복숭아를 깎아주었다.
영주역에서 KTX를 탔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니 어릴 적 역 근처에 살던 기억이 떠올랐다. 잠옷바람으로 역 앞에 사촌언니나 아빠 등을 마중나갔다. 역 앞의 오락실을 동네 아이들만 아는 뒷문으로 들락날락했다. 삼백원을 내고 떡볶이 두개 오뎅하나를 사 먹었다. 기차 안에서 보는 창밖의 풍경은 생소했지만 잊고있던 익숙함이기도 했다. 가까이있는 방풍벽은 빠르게 지나갔지만 멀리있는 풍경은 그것보단 천천히 지나갔다. 소리도 없이 조용했다. 귀가 조금은 먹먹했던거 같다.
집에 왔다. 테라스에 말라죽어가는 바질에게 잔뜩 물을 주었다. 엄마가 싸준 반찬들을 꺼내어 냉장고에 차곡차곡 담았다.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냉동실에 넣어놓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바닥을 닦았다. 가방에서 엄마가 풀질해 준 삼베이불과 세탁해서 개어준 티셔츠를 꺼냈다. 티셔츠에서는 엄마가 해 준 빨래 냄새가 났다. 똑같은 피죤을 쓰고 헹굼에서 멈춰 30분이상 담궈 놓아도 나지 않는 냄새다. 땀이 묻은 옷들과 널부러진 수건들을 세탁기에 넣었다. 목욕을 싹 하고 내가 나에게 생일 선물로 준 바디로션을 발랐다. 꽤 듬뿍 발랐다.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맥주를 마셨다. 너무 시원해서 머리가 깨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