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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인 Aug 31. 2020

38일, 6경기 직관. 아, 더보고 올껄 1

8년 차 토트넘 팬, 소원을 이루다.

휴학을 결심한 2018 12, 지금 아니면 못해볼 일을 생각했다. 가장 먼저 해보고 싶던 여행이라는 단어를 다이어리에 써 내려갔다. 축구종가이자 전 세계 가장 뜨거운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가 열리는 잉글랜드로 떠나기 마음먹었다. 매일 만나 시간을 보내던 동네 친구들은  혼자 가지 말고 우리 같이 가자했다. 혼자가 아닌 셋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2019년 2월, 드디어 런던  9 13, 로마에서 돌아오는 10 22 비행기 티켓을 덜컥 사버렸다. 


8년  토트넘 팬, 소원을 이루다. 


햇수로 8  토트넘 팬인 나는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난 2012-2013 시즌을 기점으로 선수의 팬이 아닌 구단의 팬으로 축구를 즐기고 싶었다.  시기 북런던을 연고로  토트넘 홋스퍼 이끌렸는데, 2012 7 토트넘은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라는 젊고 유망한 감독을 선임했다. 2011-2012 시즌 35라운드 우측면 수비수 카일 워커의 환상적인 프리킥 골에 완벽히 매료되어 그렇게 나는 토트넘 팬 스퍼스 되었다. 

 

'내가 유럽에 간다고?' 런던  비행기를 타고도 믿기지 않았다. 이토록 꿈꾸던 순간이 오다 보니 가만있어도 옅은 미소를 지을 만큼 행복에 빠져버렸다. 여행 둘째 날이던 9 14 토트넘 홋스퍼와 크리스탈 팰리스의 경기를 보기 위해  열차엔 토트넘의 흰색 유니폼으로 가득했다.  속에는 태극기를 들고 있던 우리와  경기마다 경기장을 찾는 현지 팬들로 섞여 있었다. 중간중간 섞인 한국인들에 말을 걸고 싶었지만 여행 초반 영국의 정취를 더 느끼기 위해 말을 섞지 않았다.

▲ 화이트 하트 레인 역 @사리인


열차는 토트넘 이전 구장 이름인 화이트 하트 레인 역에 정차했다. 우리는 우르르 내리는 팬들과 함께 경기장으로 향했다. 역에서 경기장으로 걸어가는 5분 동안 나는 ‘이게 꿈은 아니겠지?’라는 행복한 의심을 해야 했다. 이내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 도착했고 기쁨에 취해 곧바로  샵으로 달려갔다. 그 짧은 순간 동안 이번 시즌 써드 유니폼과 트랙 재킷 등 무려  25만 원어치를 질러버렸다. (이 행동은 여행 막판 나에게 큰 시련을 안겨줬다. 무계획의 소비는 즐겁지만 그만큼 후폭풍도 어마 무시하다.)

 

기쁜 마음으로 경기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시즌 멤버십과 함께 구매한 E-티켓을 제시하며 무난히 들어가나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구단 직원이 뒤에서 가방을 툭툭 건드리며 가방 크기 사이즈 표를 제시하며 내 가방이 너무 크다며 * 드롭에 가서 짐 맡긴 뒤 오라고 말했. 친구들은 곧바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날 기다려줬다. 물론 친구들의 장난 섞인 따가운 눈초리는 내가 감당해야만 했다. 뒤통수가 뜨거워지면서 나는 백드롭을 찾아 헤맸다.


우리나라는 크게 신경  쓰는 반면 이곳은 제한되는 것이 많구나 싶었다. 정작 가방을 맡기러 갔더니 가방 1개당 10파운드(한화  15,000)라는 금액을 내야 했다. 나같이 지갑 얇은 여행자에겐 큰돈이다. 정확히 찾아보지 않은 나를 원망하며 뼈아픈 돈을 지불했다.


* 드롭 : 가방을 맡길  있는 장소로 대부분 컨테이너로 되어있다. 몇몇을 제외한 구단(PSG...)은 대부분 돈을 받는다.

▲ 태극기 프린팅 티셔츠 아저씨와 함께 @사리인

 

이젠 정말 경기장으로 들어갈  있었다. 2차로 티켓을 검사하는 곳은 지난해 완공된  구장답게 마치 지하철 개찰구 같았다. 매우 정갈한 경기장 내부를 잠시 눈에 담아둔  피치가 펼쳐진 게이트를 통과했다. 들어가자마자 태극기가 프린팅 된 티셔츠를 입은 외국인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사람도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바로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는데, 정말 손흥민이 있어 고맙다며 우리에게 감사 표현을 했다. 손흥민이 토트넘 팬들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있는 순간이었다. 이후 경기 재미있게 보라며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자그마한 태극기를 선물로 주었는데, 정말 고맙다며 좋은 경험되길 바란다며 행운을 빌어줬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전부터 외워둔 응원가를 부를 생각으로 가득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던 것이다. 공식 앱에 저장된 예매 티켓을 보여주며  통하지 않은 영어와 손짓으로  자리라고 말했다. 앉아 있던 사람은 똑같이 말하며 티켓을 보여주지만, 암표로 보이는 티켓의 캡처본을 보여주었다. 예상치도 못한 상황을 맞이한  최대한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구단 직원에 상황을 설명했다. 혹시 내가 잘못된  아니겠지 싶었던 나는 직원의 무전기로  상황을 설명하는 목소리에 최대한 귀 기울였다. 직원이 자신의 상사를 불러  문제를 확인한다고 함께  자리로 갔더니  사람은 온데간데없었다. 암표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최근 점점 교묘해진다고 얘기하며 구단 직원은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뒷자리에 계신 노신사분께서 나에게 미안하다며 대신 사과를 건넸다. 같은 스퍼스로 누군가는 사과하는  맞다며 극구 괜찮다고 하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신사의 나라인지 조금이나마 체감할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손흥민을 보러 왔냐고 물어보셨는데,  손흥민이 오기 전부터 토트넘 팬이어서 팀을 보러 왔다고 말씀드리니 웃으시면서 엄지를 추켜올려 주셨다. 어리숙한 영어였지만, 난 어떻게든 급한 마음에 세상 모든 몸짓을 전부 이용했었던 기억이 난다.

▲ 경기전 선수 입장 @사리인

경기 시작 직전 선수단이 입장하는 순간 웅장한 함성이 들릴   올해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맛봤다. 8년 간 내가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눈으로 직접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 이 날 경기에서 손흥민은 전반 10 본인의 시즌 마수걸이 득점을 터트렸다. 나는 함께 소리치는 팬과 동화되어 주변 관중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Nice one Sonny! Nice one Son!’ 외쳤다. 

 

그리고 이어지는 토트넘 응원가를 부르다 터진 상대의 자책골 직후 전반 23    손흥민이 골망을 흔들자 주변 관중들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줬다. 전반 막판 4-0 만드는 에릭 라멜라의 추가골이 터졌고 전반이 마무리되었다. 후반엔 별다른 득점 없이 경기는 4-0으로 끝났다. 


 6만 명이  이날 경기의 분위기와 현장의 위압감은 어디서도 느낄  없었던 기회였다. 황홀감에 덮인 나는 경기와 관련한 것을 찍을 틈도 없이 눈으로만 담아냈다. 경기를 설명하게 된다면 이 글은 정말 축덕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쓰지 않았다. 단 한 문단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행복했다. 지구 반 바퀴 떨어져 늦은 밤, 반쯤 뜬 눈으로 축구를 보던 고등학생은 시간이 지나 내가 직접 땀 흘려 번 돈으로 하나의 계획 위에 '완료'라는 의미의 줄을 그을 수 있었다. 여태 느꼈던 성취감의 최고치였고 정말 즐거웠다. 아마 경기가 졌더라도 좋았을 것이다. 마음에서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행복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때의 감정은 영원히 잊혀질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막 떨릴 정도니 말이다.


경기가 끝난 , 손흥민은 홈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팬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했다.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은 주변에 태극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한국인들이 많았다.  태극기를 가져오지 않았던 우리는 그중 연락이 닿은 어떤 분께 태극기를 선물 받았다. 원래 구매하려 했지만, 경기도 이기고 손흥민이 2골을 넣어 기분 좋으셨던지 그분께서 흔쾌히 선물로 주셨다. 타지에서 느껴서 그런지 더욱 따뜻한 한국인의 정을 느낄  있었다. 고마운 분과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 파노라마 사진 @사리인

앞으로 3주간 남은 경기는 무려 5경기, 여전히 처음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직관을 마무리한 하루였다. 다시 오지 못할 느낌을 가졌지만 꼭 한 번 더 오리라는 마음을 지니고 꼭 했던 일이 있다. 파노라마인데, 6개의 경기장에 빠짐없이 이를 행했다. 


다음 경기는 5일 뒤인 19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타나의 유로파리그 조별 예선이다. 

(가고 싶어도 지금은 못 가는 현재. 빠르게 다녀와서 그런지 조금의 안도감이 드는 지금의 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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