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는 스코티시폴드다. 정확히는 스코티시폴드 하이랜드. 시조 중 페르시안 종이 있어 장모 유전자를 보유한 채 태어났다. 고양이는 장모보다 단모가 우성(優性)이다. 요미는 열성(劣性)인 장모 종이라 털이 자주 뭉친다. 그래서 털이 뭉치기 전에 빗질로 풀어줘야 한다.
요미는 빗질을 싫어한다. 빗질 좋아하는 고양이도 드물겠지만, 그래도 너무 싫어한다. 간식으로 어르고 달래도 빗질할라치면 으르릉 거리기 일쑤다. 특히 허벅지 부근이 잘 뭉치는데 요미가 만지는 걸 싫어하는 부위다. 빗질까지 하려니 매번 도망치기 바쁘다. 뒷다리 빗질은 요미 잘 때 살금살금 해야 한다. 그러다 털이 뭉치면 결국 미용을 한다. 1년에 1번. 작년 여름에 처음 해봤다. 당시 요미는 털이 수부룩했다. 더웠는지 틈만 나면 화장실 타일에 드러누웠다. 뭉친 털도 제거할 겸 와이프가 요미를 숍에 데리고 가서 무마취 미용을 했다. 수면마취보다 무마취가 좋겠지 싶었다. 미용을 하고 온 요미는 모양새가 웃겼다. 맨살이 드러나서 밀가루 반죽 같았다. 와이프에게 말했다. "미용 잘했네." 그런데 와이프 얼굴이 좋지 않았다. "요미가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들었어." 요미가 울다 지쳐 쇼크 올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고 했다.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저랬는데, 요렇게 변신]
이번 늦봄, 요미 털이 또 뭉쳤다. 털도 작년만큼 수부룩해졌다. 여름이 오기 전에 미용해줘야 했다. 이번에는 무마취 출장 미용을 신청했다. 집에서 미용을 하면 요미가 덜 무서워할까 싶어 선택했다. 예약 당일 출장미용사가 집에 방문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녀 둘이었다. 부부라 했다. 너무 젊다 생각했지만 미용 후기가 좋아 불안하지 않았다. 짧게 머리를 친 남자 출장미용사가 요미를 쓰다듬으며 만져보았다. "생각보다 뭉친 부분이 많네요. 요미 예민한 편인가요?" 요미는 많이 예민했다. "네. 지금 미용사님께 으르릉 거리는 것처럼요." 남자 출장미용사가 대수롭지 않아 했다. "겁이 많은 아이들이 그래요. 그럼 준비하고 시작할게요. 간식만 준비해주세요." 출장미용사 부부는 익숙하게 장비를 펼치고 미용을 시작했다. 요미는 클리퍼로 등을 밀 때 낮게 으르릉 댔지만 간식을 주면 반항하지 않았다. 문제는 뭉친 허벅지 부근을 밀면서 생겼다. 요미는 큰 울음을 내며 몸을 비틀었다. 좋게 말해 큰 울음이지, 비명이라 봐도 무방했다. 여자아이가 불에 덴 양 지르는 앙칼지고 께름칙한 비명이었다. 여자 출장미용사는 비명이 세질수록 강하게 요미를 잡아쥐었다. "예민한 아이는 미용 중에 대소변을 보기도 해요." 미용 전에 남자 출장미용사가 넌지시 고했었다. 요미는 이 경우에 해당했다. 요미는 들어본 적 없는 비명을 내며 소변을 지렸다.
고양이 미용은 무마취 미용과 수면마취 미용이 있다. 수면마취 미용은 쉽고 빠르지만, 부작용 우려가 있고 고양이 몸에 무리를 준다. 낮은 확률이지만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거나, 눈을 뜨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 무마취 미용을 하는데, 무마취라고 좋은 게 아니다. 무마취 미용은 고양이가 깨어있는 상태에서 외부인이 털을 다듬는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거대한 외계인이 내게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로 겁박하고 발가벗긴 채 털을 미는 꼴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다. 수의사들도 미용을 꼭 해야 한다면 무마취 미용보다 마취 미용을 권장했다. 하지만 고양이 미용은 하지 않는 게 가장 좋다. 이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요미 보기가 부끄럽다.
[의욕 제로 요미]
출장미용사 손길이 분주했다. 내가 가져다준 키친타월로 소변을 닦고 소독약으로 바닥을 분무하고서 다시 닦았다. 요미 소변은 양이 많지 않았지만 냄새가 고약했다. 남자 출장미용사가 말했다. "이런 경우 있어요. 심한 아이는 변을 보기도 해요." 그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어떻게 할까요, 보호자님?" 계속 미용하겠냐는 물음이었다. 고민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못하겠어요. 죄송합니다. 미용은 이만할게요." 출장미용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주변을 정리했다. 미용을 중간에 그친 요미는 털이 듬성듬성했다. 요미 눈가가 그렁그렁했다. 허벅지에 작은 경련도 일었다.
[찍지 마아!]
출장미용사 부부가 인사를 하고 떠난 자리는 소독약 냄새만 남았다. 요미는 일찌감치 소파 밑으로 숨었다. 미처 털어내지 못한 털들이 요미 위치를 알리듯 소파 밑까지 듬성듬성 이어져 있었다. 요미는 남은 간식도 마다하고 소파 밑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요미 털을 주섬거렸다.
고양이 집사들은 고양이 미용을 직접 보면 자가 미용을 하게 된다. 어쩔 수 없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최대한 빗질을 자주 해주고, 그래도 털이 뭉친다면 그 부위만 자가 미용을 하는 게 옳다. 예쁘지 않고 털도 삐뚜름하겠지만 조금씩 천천히 하면 된다. 우리 요미 아프지 않게 말이다.